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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험난한 현실과 아름다움을 담는 것, <디거>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과장된 설정을 강한 에너지로 밀어붙이는 연출자다. 복수심에 가득 찬 19세기 사냥꾼(<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환청을 듣는 한물간 배우(<버드맨>)가 그러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창조한 캐릭터는 탐욕스러운 석유 재벌 ‘디거’ 록웰(톰 크루즈)이다. 갈등의 범위는 전지구적 재난 수준으로 넓어졌으나 이냐리투 감독 특유의 신경증적인 주인공 남성은 왠지 낯익다. 개인 사정으로 내한 일정을 취소하기 전 9월 말 월드프리미어로 런던에 체류 중이던 이냐리투 감독과 화상으로 만났다.

디거의 무리한 석유 시추로 거대한 빙하가 떨어져나가자 컴슨 대통령 이하 정부 관료들이 상황실에 모였다. 흰 종이를 든 인물이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다.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 매우 독특한 오프닝 시퀀스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두운 밤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보이던 것에 다가가면 깊은 바다 속 공기 방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블랙 스크린에 자연의 소리를 들려주며 아침처럼 보이게 한다는 아이디어였는데 참 마음에 들었다. 스크린으로 본 이미지는 하늘이 아닌 물속이고, 공기 방울은 사실 메탄가스란 점이 드러난다. 언급했듯 모든 건 지각의 문제다. 우리가 무얼 보고 싶어 하느냐에 따라 많은 게 변한다. 북극의 영구동토층이 녹을 때 보통 발생하는 메탄가스는 가연성이 매우 높다. 스크린을 메운 메탄가스 방울은 아름다우면서도 재치 있는 메타포 같지만, 실은 그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동시에 드러낸다.

- 2018년부터 톰 크루즈와 <디거>에 관해 논의해왔다. 영화가 공개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는.

흥미롭게도 <디거>가 다루는 메타적인 상황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극 중 등장인물들끼리 많은 질문을 주고받잖나. 그처럼 우리에게도 질문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중간중간 녹아 있는 유머, 그리고 스토리텔링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해 관객이 의문을 품는 화법을 선택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디거>는 스토리텔링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예술은 우리 스스로가 무력하게 느껴질지라도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진리를 말한다. 스토리텔링이란 파편화된 세상에서 우리가 연대하고 스스로를 향해 웃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다. 이 모든 게 쉽지 않은 이야기여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 <버드맨>을 통해 고독하면서도 신경증적인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신작 <디거>의 디거(톰 크루즈) 역시 비슷한 유형의 캐릭터다. 당신은 왜 이처럼 불안하고 신경질적인 인물에 매혹되는가.

성공, 권력, 탐욕이 가장 오래된 남성 서사의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성들의 이야기는 탐욕, 권력, 책임, 맹목, 무지, 에고, 고독을 주로 다뤄왔다. 이 요소들은 우리가 지금 통과하고 있는 시대를 잘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베이비부머 세대다. 그리고 우리 세대가 역사상 최악의 세대라고 본다. 최근 몇년간 우리 세대, 그리고 남성들이 눈먼 채로 많은 일을 저질렀다. 나는 사람들이 그를 똑똑히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디거>는 이런 세태를 정확히 바라보고 웃을 수 있도록 젊은 세대에게 보내는 러브 레터다.

- 톰 크루즈는 할리우드의 상징이고, 잔드라 휠러는 유럽 예술영화의 히로인이다. 이렇게 빨리 두 배우의 투숏을 볼 수 있을지 몰랐다.

두 배우의 호흡이 그저 놀랍고 놀라웠다. 2017년 칸영화제에서 잔드라를 처음 만났고 우린 그때부터 함께 일하길 바라왔다. 다행히 잔드라도 톰도 이 서사를 좋아했고 함께할 좋은 기회가 성사됐다. 서로 너무 끈끈해서 세트장이 늘 깔깔대는 소리로 가득했다. 특히 리허설을 많이 진행하는데, 두 사람도 함께 연기하는 순간을 무척 즐겼다. 두 배우가 다 불같달까. 두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이나 접근 방식이 자신의 캐릭터들처럼 판이하게 달라서 더 좋았다.

- 이 영화의 장르를 블랙코미디라고 정의해왔다. <디거>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블랙코미디 신을 소개한다면.

장면장면에서 많이 웃었지만 컴슨 대통령(존 굿맨)의 방에서 벌어지는 일을 촬영할 때 정말 많이 웃었다.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장면이지만, 매일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떠올리게 한다. 모든 게 과장돼 있고, 소란스러우며 발작적인 데다 신경증적이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런 식이지 않나. 그 장면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끔찍하게 우스운지 새삼 깨닫게 해준다.

- 영화감독으로서 세상이 그처럼 변한 까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SNS의 영향일까.

현실의 파편화된 내러티브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공통의 현실을 공유하지 않는다. 각자 손안의 프레임을 통해 현실을 바라본다. 그리고 소셜미디어는 복잡하고 모순적이고 모호한 구석을 보여주지 않은 채 파편화된 현실을 제공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프레임 속에 많은 레이어가 등장한다. 관객을 그 시공간의 한복판에 두고 싶었다. 크게 웃은 다음 지금의 세상이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직시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 비스타비전이 준 자유와 제약은 무엇이었나.

비스타비전 네거티브가 35mm필름보다 2배는 크다. 네거티브필름이 클수록 해상도가 높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네거티브필름이 크다는 건 그 안에 담길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많다는 뜻이다. 나는 영화 <디거>가 피사계 심도가 아주 깊은 회화처럼 보이길 바랐다. 전경, 중경, 후경 모두 포커스를 또렷하게 맞추기 위해 세부적인 요소 하나하나에 많은 빛을 비춰야 했다. 왜 광각렌즈를 사용해 인물들이 놓인 맥락을 그토록 숨김없이 드러냈는지 말하자면, 관객이 어디를 봐야 할지 강제로 지목당하는 대신 영화 속을 거닐게 하기 위해서였다. 인물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회화 속에서 길을 잃어보는 거다. 비스타비전의 심도를 나와 에마누엘 루베스키 촬영감독이 정말 사랑했고, 우리는 그 뛰어난 완성도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모든 걸 쥐어짜듯 다 담아냈다. 제약에 관해 말하자면, 비스타비전의 가장 큰 난제는 카메라가 너무 시끄럽다는 점이다. 카메라의 소음을 하나하나 다 걷어내고 적절한 믹싱과 정돈된 사운드를 얻는 데 정확히 1년이 걸렸다. 지독하게 고통스럽고 험난한 작업이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현실이란 그런 게 아닐까. 험난함과 아름다움, 두 가지를 모두 품은 것이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