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는 ‘올해의 아시아영화 인상’ 수상자로 양자경을 선정하고 특별기획 프로그램 ‘모든 시간 모든 곳의 양자경’을 마련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홍콩영화의 부흥기부터 할리우드까지 활동 영역을 확장해온 배우의 궤적을 돌아보는 자리지만, 일반적인 회고전과는 결이 다르다. 상영작은 네 편. 양자경이 직접 고른 <검우강호>(2010),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산디와라>(2026)에 신작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 (2026)을 더했다. 필모그래피를 망라하기보다 서로 다른 시기와 장르를 가로지르는 네 작품을 통해 ‘지금의 양자경’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그 시작점에는 아시아 액션스타로서의 양자경이 있다. <검우강호>에서 그는 직접 몸을 움직이는 무협영화의 주역으로 존재한다. 이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는 수많은 가능성의 자아를 오가는 에블린을 연기하며 아시아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두 작품 사이에는 홍콩에서 출발해 할리우드로 활동 영역을 넓혀온 배우의 시간이 놓여 있다. 하지만 특별전은 그 성공을 과거형으로 박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눈여겨볼 것은 현재를 보여주는 두 작품이다. 션 베이커의 단편 <산디와라>에서 양자경은 푸드 유튜버, 셰프, 가수, 평론가, 웨이트리스 등 다섯 역할을 혼자 연기한다. 양자경이 자신의 대표작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식과 동시대 감독을 만나 또 다른 얼굴을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에서는 매직큐브를 배우며 삶을 다시 풀어나가는 노년의 여성을 연기한다. 검을 쥔 액션스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이 듦과 새로운 도전이라는 주제를 품은 역할로 이동한다.
따라서 네 편의 배치는 양자경의 ‘대표작’을 나열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검우강호>가 무협 액션스타 양자경의 원숙한 면모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세계적 배우로 확장된 순간을 보여준다면, <산디와라>와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은 그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 현재진행형의 배우를 보여준다. 특히 앞의 세 작품을 양자경 자신이 골랐다는 점은 이 기획의 방향을 더욱 분명하게 한다. 영화제가 대표작을 선별한 것이 아니라, 배우가 자신의 시간을 직접 되돌아보고 현재의 작업까지 함께 제시한 셈이다.
올해 양자경을 만나는 시점도 의미가 있다. 부산영화제와 양자경의 인연은 2002년 부산 프로모션 플랜(PPP)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출연작을 통해 부산영화제와 꾸준히 인연을 이어온 양자경은 올해 15년 만에 다시 부산영화제를 찾는다. 홍콩영화의 스타였던 배우가 할리우드에서 오스카를 손에 쥔 뒤 다시 아시아 영화제의 무대로 돌아온다. 다시 말해 특별기획 프로그램 ‘모든 시간 모든 곳의 양자경’은 과거의 영광을 기념하는 회고전이라기보다, 아시아에서 출발한 한 배우가 어떻게 경계를 넘어왔고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는 선명한 지도에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