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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2호 [인터뷰] 서로 다른 시간에 마주 앉는 일, 개막작 <낮과 밤은 서로에게> 김종관 감독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낮과 밤은 서로에게>는 성대한 만찬의 애피타이저가 되기에 충분하다. 네 개의 조각으로 구성된 이플레이트는 서로 다른 재료를 조합해 짧지만 진한 대화를 맛보게 하는데, 뒤이을 코스를 상상해 보게 한다는 점에서 구미를 당긴다. 레시피는 간단하다. 해와 달처럼 멀어 보이던 남녀가 어느 카페에서 포개지는 순간이 여덟 배우에 의해 네 번 반복된다. 오직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 속에서 삶의 정수를 건져내길 즐기는 김종관 감독의 솜씨다.

- 영화의 영제 <The Table: Day and Night> 와 형식이 전작 <더 테이블>을 연상케 한다.

한 공간에서 두 인물의 대화로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을 여러 형태로 계속해 왔다. 말씀하신 것처럼 <낮과 밤은 서로에게>는 앞선 작품 중에서도 <더 테이블>과 가장 유사한데, 소설처럼 삶의 한순간을 포착함으로써 의미를 얻어내 기를 즐긴다. 인물들 사이의 한 장면을 확대해 들여다보면서 관객이 뒷이야기를 이어가기 바란다. <더 테이블>을 통해 그 가능성을 느꼈고, 좋은 배우들의 퍼포먼스에 힘입어 다시 한번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도전하는 것 자체로 신이 났다.

- 제한된 형식에서 재미를 찾는 편인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명확한 비주얼을 구상 하지는 않는다. 대사에 따른 지문도 많이 넣지 않는다. 모든 걸 원하는 대로 찍을 수 없다는 걸알게 되면서부터 예측을 덜 하고, 환경에 적응 하고자 했다. 현장성을 받아들이며 어색한 흐름을 조절하고, 그림을 잡아가는 쾌감이 크다. 그러다 보면 내 눈앞에서 신기한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발견하곤 한다.

- 네 번의 대화, 네 쌍의 배우를 엮었다. 이야깃거 리를 모은 뒤 어울리는 얼굴을 떠올렸는지, 그 반대였는지 궁금하다.

배우를 염두에 두고 대본을 쓰는 편은 아니다. 그랬다면 배우의 특성을 반영해 대본을 구체화 했을 것이다. 그보다는 배우가 대본 속 캐릭터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지켜보는 게 흥미롭다. 예를 들어 심은경 배우는 내가 예상한 호흡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웹소설 작가 혜진 역을 소화했다. 덕분에 캐릭터가 더 분명해졌다.

- 첫 단편 <한여름 밤의 꿈>에서 유진(김민하)과 현오(주종혁)를 잇는 아이템으로 손목시계를 택한 까닭은.

시계공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그 직업군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이과적인 개념과 말투에서 오는 다정함이 있지 않나. 그 묘미를 살려보고 싶었다. <낮과 밤은 서로에게>라는 제목에서처럼 각각 다른 시간대에 있던 두 남녀를 연결한다는 테마를 제시하기 위해서도 시계라는 소품이 잘 맞을 것 같았다. 낮 장면의 주종혁 배우, 밤 장면의 김민하 배우는 연기적인 성향도 낮과 밤처럼 달랐다. 주종혁 배우가 시계 덕후를 매력적으로 표현했다면, 김민하 배우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화술을 가졌다.

- 두 번째 단편 <아직 나인 사람들>의 상미(한선화)와 영민(장률)은 각각 액션과 리액션 담당으로 구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쪽 모두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캐스팅이 관건이 었을 텐데.

공수가 완벽하게 나뉜 대화인 만큼 에너지를 변화무쌍하게 쏟아낼 수 있는 여자 배우, 그 기운을 섬세하게 받아내 줄 수 있는 남자 배우가 필요했다. 고심 끝에 만난 한선화, 장률 배우는한 편의 연극을 올리는 사람들처럼 여러 번 리허설에 임했다. 한선화 배우는 언젠가 길거리 에서 독특한 노인을 본 내 경험으로부터 캐릭 터를 잡아갔다. 배낭을 멘 채 엄청나게 빠른 걸음으로 종로 한복판을 걷던 노인이 나를 포함한 행인들을 툭툭 치다가 갑자기 담벼락 앞에서 멈춰버리는 걸 본 적이 있다. 작동을 멈춘 기계처럼 말이다. 그 얘기가 한선화 배우에게 힌트가 되어줬다. 장률 배우가 연기한 인물에는 나와 같은 내향인의 성향을 투영했다. 타인을 낯설어하고 겁내다가도 문득 그가 왜 저러는지 이해하게 될 때가 있지 않나. 낮과 밤처럼 다른두 남녀가 부딪히다가 이해에 다다르는 순간을 묘사하고자 했다.

- 세 번째 단편 <이.순.불>에 출연한 심은경, 이희준 배우는 각각 <더 킬러스> <최악의 하루>로 감독과 협업해 본 사이다. 두 배우의 어떤 면을 새로 꺼내보고 싶었나.

삶의 비극은 희극으로, 희극은 비극으로 치환해 보는 걸 좋아한다. 그러면 우스꽝스러운 와중에 곱씹어볼 거리가 생긴다. 웹소설 작가와 영화감독을 통해 그 이야기를 너무 진지하지 않게 푼 에피소드가 <이.순.불>인데, 가만 보면 그 둘에게 모두 비호감의 면모가 있다. 그들이 충돌하다가 누그러지는 재미를 위해 이희준 배우에게서 <최악의 하루> 때 연기한 캐릭터를 변주한 모습을 보고싶었다. 심은경 배우를 캐스팅하기까지는 역발상이 필요했다. 원래 더 나이가 있는 배우를 불러야 하나 싶었는데, 은경 배우의 영리함을 믿어보기로 했다. 은경 배우가 특히 질문이 많았다. 그에게 여러 레퍼런스를 전해주며 디테일을 잡아갔다.

- 마지막 단편 <가을 이야기>의 연인 나경(전소영)과 종수(김동휘)는 등장인물들 중 가장 젊지만, 제일 묵직한 감정을 주고받는다.

앞선 에피소드들과 달리 서로 같은 곳에 존재 하다가 낮과 밤으로 갈라지는 이들의 이야기로 영화를 매듭짓고자 했다. 나루세 미키오의 <흐르다>에서처럼 클래식한 무드가 있는 대화 신을 추구했다. 그 나이에 겪는 무거운 감정을 별것 아니라고 치부하기보다는 그때만 겪을 수 있는 소중한 것으로, 애틋하게 바라봐주고 싶었 다. 전작 <흐린 창문 너머의 누군가>에서 느낀 전소영 배우의 동물적인 감각에 더해 김동휘 배우만의 편안한 톤에 의지하며 찍었다. 촬영하면서 이 두 배우에게 새삼 놀란 기억이 있다.

- 부산국제영화제에 머무는 동안 기대하는 장면이 있다면.

배우들에게 “촬영은 짧게 하지만, 주연을 할 수있다”며 출연을 제안하곤 한다. (웃음) <낮과 밤은 서로에게>에 함께 해 준 배우들이 그 이상의 재미와 의미를 개막식에서 얻어가길 소망 한다. 또한 개막작으로 선정되니 작은 영화를 만들어 온 사람으로서 커다란 응원을 받는 기분이었다. 이 작품으로 관객을 설득해서 내가 창작자로서 지속해 온 시도를 계속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