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의 시간 표는 여전히 빼곡하다. 닷새간 부산에 체류하는 그의 목표는 하루에 세 편 이상의 초청작을 관람하는 것. 인터뷰 직전에도 <호프>를 보고 왔다. “개봉 직후 서울에서 보려고 몇 번을 시도하다가 이제야 보게 되었다. 경쟁부문에 오른 일본 영화 한 편도 볼 참이다.” 부산에서만 이런 스케줄을 소화하는 건 아니다. 그는 올해 우디네극동영화제, 다낭아시아영화제, 말레이 시아국제영화제 등 6개 이상의 해외 영화제에도 참석했다. 그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를 소개하는 자리도 여러 차례 가졌다.
이 열성 관객 겸 감독은 2026년 한국영화 공로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문화공보부 출신으로서 영화진흥공사 사장, 예술의전당 사장, 문화부 차관을 역임한 김동호 전 이사장은 1996 년 부산국제영화제 초대 집행위원장으로 부임해 2010년까지 자리를 지켰다. 2016년 영화제가 민간 이사장 체제로 전환된 뒤에는 이사장을 맡아 다시 영화제를 이끌었다. 부산국 제영화제의 발자취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자 역사 그 자체가 된 인물이 바로 김동호다.
영화제는 공로상 선정 이유를 밝히며 “출범 초기 상영작에 대한 사전 심의 관행에 맞서 표현의 자유와 독립성을 지켜낸 결단”을 그의 업적으로 강조했다. 당시 상황을 묻자, 김동호 전 이사장은 “영화제가 검열받으면 어떤 감독이나 제작자도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 했다고 돌이켰다. “검열 안 받은 영화가 문제가 된다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주장하며 심의위원들을 설득했다. 그렇게 검열을 피한 게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 요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물론 “영화제를 이끄는 15년간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역시 예산 확보”였다. “1회에 22억원이었던 전체 예산을 120억 원까지 늘려 놓고 은퇴했다”고 증언한 그가 잊지 못하는 또하나의 명장면은 2000년 제5회 영화제 때의 일이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에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긴 <어둠속의 댄서>가 수영요트경기장에서 야외 상영을 하는데 비가 왔다. 4천석 정도가 차는 공간에서, 그 많은 관객이 도중에 퇴장하지 않고 비를 맞으며 영화를 봤다. 그 모습에 감명받았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리도 많다니!”
그들을 계속 영화제로 불러 모으는 것, 나아가 국외로도 네트워크를 확장해 한국 영화를 알리는 것이 김동호 전 이사장의 소명이었다. 그는 어느덧 서른이 넘은 영화제가 그 꿈을 계속 꿀 수 있도록 응원을 보탰다. “부산이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토론토국제영화제, 베니스국제영화제와 겨뤄 경쟁작을 선별하기가 다소 제한적일 수 있겠다고 염려했다. 그럼에도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본다.”
침체한 한국 영화계 전반을 향해서는 공동 제작이라는 돌파구를 제안했다. “대만, 베트남 같은 아시아의 젊은 감독들은 이미 왕성하게 국제적인 협업을 시도하는 중이다. 이는 영화가 진출할 수 있는 지역을 확장하는 일이다. 우리도 그런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한국 신진 감독 중에서는 윤가은, 윤단비 감독을 주목 한다며 덧붙였다. “그들의 작품이 대작과 독립 영화 사이에서 중간 규모의 관객을 동원하는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 아흔의 나이에도 현역의 눈빛을 잃지 않은 ‘영화 청년’ 김동호의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