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 Shaving
김정훈 | 한국 | 2026년 | 93분 | 경쟁
10.11 BCM 16:20 / 10.14 L6 10:20
3년 전 절필을 선언했던 호러 소설가 수연(노정의)이 신작 집필을 예고한다. 수연은 비로소 “내 이야기를 해보겠다”라며 복귀를 타진하지만, 그가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에 빠졌던 이유를 아는 주변인들은 응원보다 우려를 내비친다. 수연 또한 불안하다. 소설의 결말을 도무지 완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수연의 곁에 연인 신지(카사마츠 쇼)가 연휴를 함께 보내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 이들의 휴가지는 작고한 수연의 아버지(손병호)의 흔적이 남은 작업실이다. 어쩐지 음산한 기운이 남은 이곳에서 신지는 낡은 면도칼에 얼굴이 베인다. 신지는 얼굴의 상처를 기점으로 전혀 다른 성정으로 표변하고, 이는 수연이 지난 3년간 묻어두었던 상처를 건드린다.
미스터리 호러 <면도>는 다양한 층위의 공포를 건드린다. 첫째는 신체 강탈의 공포다. 영화는 내가 의지하던 연인이 외형은 똑같지만 전에 본 적 없는 위협적 영혼으로 나를 대하고 그 미세한 불쾌가 서서히 일상을 잠식해가는 공포를 자세히 그린다. 여기엔 관계의 결정 권자로 군림하려는 독소적 남성성의 여러 양상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여성의 모함 혹은 착각이라고 간주되는 데이트 폭력의 맹점이 달려 나온다. <면도>가 취하는 보디 스내처의 공식은 괴수 호러의 장르적 즐거움과도 결합한다. 면도칼의 감염 이후 신지의 외양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인물화처럼 왜곡되며 뭉개지는데, 한국영화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크리처 디자인이 관객이 기대할 법한 시각적 충격을 알맞게 충족한다. 영화가 인과관계나 물리 법칙과 무관하게 내처 폭주하는 후반 30분은, 왜곡된 시공간에 내면의 파편들을 여러 얼굴로 배치해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자극하는 찰리 카우프먼식 호러와 닮았다. <들개>(2013) 이후 13년 만에 돌아온 김정훈 감독의 신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