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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5호 [인터뷰] 먼지처럼 세상을 떠도는 자들, <더스트> 차이밍량 감독 인터뷰

“여래란 어디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며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여래라 하는 것이다.” <더스트>의 시작을 여는 이 문장은 영화가 가진 반복과 단절의 리듬을 떠올리게 만든다. 장소가 변하고 낮과 밤이 변할 때. 어딘가를 바라보는 익명의 시선과 천천히 걷는 승려(이강생)의 몸이 겹쳐질 때. 마치 눈을 깜빡이듯이 컷이 전환되면 어느 순간 영화는 티끌같이 부유하는 인간 공동체가 꾸는 꿈처럼 느껴진다. 2024년 <무소주>로 행자 연작의 열 번째 작품을 공개한 차이밍량은그 뒤를 잇는 열한 번째 작품 <더스트>로 또다른 영역에 발을 디딘다. 변화무쌍한 자연의 흩날림과 인파로 가득한 도시의 풍경에서 꿋꿋이 자신의 길을 내딛는 이강생 배우의 걸음은 천천히, 그리고 강렬하게 관객의 마음에 가닿는다.

- <더스트>는 행자 연작 중 유독 꿈에 대한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집으로>(2025)의 마지막에 텅 빈 침대를 담은 장면이 나오는데, 이 영화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당신에게 꿈과 영화라는 것은 어떤 관계에 있나.

나는 내 영화를 통해 현실의 이미지를 환영처럼 표현해 왔다. 행자 연작은 특히 그렇다. 이강생 배우가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걷는 장면들은 현실의 풍경을 초현실적으로 변모시킨다. 그의 느린 걸음은 시간을 상징하기도 한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이 현실의 시간으로 들어오게 되면 두 개의 다른 시간이 겹치게 된다. 그과정에서 영화가 꿈의 감각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 여타 행자 연작들과 다르게 이강생의 걸음 사이에 익명적인 타인의 얼굴이 적극적으로 등장한다. 그 사람들의 모습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두 가지다. 하나는 컵에 담긴 물을 마시는 몸짓이고 다른 하나는 담배를 태우는 몸짓이다.

말한 것처럼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사람을 강조하려 했다. 사실 모든 사람은 살아 가면서 여러 문제와 삶의 피로감을 느끼고 나는 그 모습이 다들 비슷한 형태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Dust’라는 제목이 말하듯, 그들을 먼지처럼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존재로 표현하고 싶었다. 나는 영화에서 물 마시는 장면을 보고 만드는 일을 매우 좋아한다. 사람은 마치 식물처럼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이 있어야만 살 수 있고 물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기도 한다. 극 중 담배를 태우는 여성은 우리 영화의 스태프다. 평소에 담배를 즐겨 피우는 사람인데 그 모습을 늘 재밌게 지켜봤다. 멍한 눈으로 담배를 태우는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시간을 응시하고 있다고 느꼈다. 담배를 태우는 모습에서 한 사람이 겪어온 모든 세월의 흔적들이 드러나는 인상을 받는다.

- 그 두 몸짓이 가진 공통점 중 하나는 몇 분 남짓한 특정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시간은 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통상 적인 영화에서는 스토리텔링, 구조 등 많은 것들을 다뤄야 하지만, 내 작품은 시간이라는 요소에 매우 집중한다. 시간을 두고 바라봐야만 명확하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 라이브클럽 장면에서 행자와 주변인들의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그 라이브클럽은 영화의 촬영지인 스페인에서 우연히 발견한 장소다. 행자 연작 속의 승려가 세상 어디든 다 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곳도 한번 지나가 보면 어떻겠냐는 이강생 배우의 의견에 촬영을 결정했다. 그 안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춤추는 사람들은 승려와 큰 대비를 이룬다. 그 두 부류 모두 먼지처럼 흔들리는 존재 이지만, 광란의 상태에 놓인 사람들과 그 사이를 조용히 지나가는 사람은 서로 다른 인간 군상으로 다가온다.

- 이전의 행자 연작에서 집중해서 볼 수 있던 것은 이강생의 몸과 자세, 걸음거리 같은 것들이 었다. 근데 <더스트>의 라이브클럽 장면을 볼때, 무엇보다 그의 얼굴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춤추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그의 얼굴에는 이전 에는 볼 수 없던 낯선 표정이 드리우는 것 같다.

기존 행자 연작의 이강생과 <더스트>의 이강생이 다르다고 느끼진 않는다. 같은 속도와 같은 느낌, 같은 자세로 계속해서 걷고 있고 지나가는 장소만 다를 뿐이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그 장소들의 상태다. 그가 지나가는 해변, 라이 브클럽 등의 배경은 굉장히 강렬하고 역동적인 인상을 준다. 반면, 이강생은 그 장소를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속도로 지나간다.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느림과 부드러움을 통해 역동적인 공간을 스쳐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 그의 얼굴과 역동적인 풍경을 보고 승려가 지닌 고독감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이강생은 그 자체로 고독한 사람이다. 한편, 개인적으로는 시간이야말로 고독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지만 시간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시간에 주목하지 않고 각자가 자신의 속도로 자신이 원하는 걸 추구하는 과정에서 시간이라는 존재를 잊게 된다. 이강생의 걸음 같은 느림을 통해서만 시간을 뚜렷하게 볼수 있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맹목적으로 달려 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달려가는 것이다.

- 승려와 아농이 만나는 마지막 장면은 그동안 느꼈던 고독이 해소되는 듯한 순간이었다.

아홉 번째 행자 영화 <곳>(2022)을 찍을 때부터 아농 배우를 초청해 작업을 하게 됐다. 특별한 인물로 묘사하진 않았고 그저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데 관객 한 분을 통해 그 아농의 존재를 인상 깊게 인지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때부터 행자 연작에 아농 배우를 출연시키게 되었다. <더스트>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농은 정상인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고 다른 속도로 다가오는 이강생과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마주친다. 이 만남을 통해 승려가 멀고도 가까운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편, 아농의 존재는 스크린을 통해 승려를 보게 되는 관객의 위치와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