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볼 수 없는 불꽃놀이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특별기획 프로그램 ‘일본 애니메이션 특별전: 광기의 걸작, 전율의 기대작 12+1’의 상영작 <파리스 그린이 밝는 날에>는 이 질문에 너무도 황홀한 이미지의 애니메이션으로 답한다. 일본화를 그리던 시노미야 요시토시 감독은 동양화의 미학과 수공예 애니메이팅을 결합해 상상으로만 탐할 수 있던 불꽃놀이를 구현했다. 작품은 어느 시골 마을에서 330년간 전통을 이어 온 불꽃 장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마을 재개발로 인해 불꽃 공장이 사라질 위기, 후계자 케이타로는형 센타로, 어릴 적부터 함께 불꽃을 만든 카오루와 함께 환상의 불꽃 ‘슈하리’를 완성하려 한다. 전설의 불꽃 ‘슈하리’를 완성할 열쇠는 이제 사용되지 않는 독성 안료 ‘파리스 그린’(화록청)이다. 상실과 나아감의 감각, 우주의 기하학적 구도가 이 순간의 불꽃놀이에 응축되어 새겨진다.
- 왜 파리스 그린이라는 색을 작품의 중핵으로 삼았나.
대학교 때 미술 강의에서 파리스 그린이 이제는 쓰이지 않는 안료라고 들은 적 있다. 독성 있는 비소가 들어가 있어서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았는데, 작품을 준비하며 불꽃 장인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하나로쿠쇼'(花緑青)라는 색채 용어를 듣게 됐다. 회화에 쓰이는 파리스 그린과 같은 재료임을 깨달았다. 에도시대쯤 까지는 파리스 그린을 썼지만, 회화와 마찬가지로 이제 사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화가로서내 작업과 불꽃 장인들의 일이 매우 밀접했던 것이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오며 동양화의 맥을 계승한 일본화에서 ‘녹’과 ‘청’이라는 색은 아주 상징적이다. 여러 자연의 색을 표현할 수 있고, 그 둘이 합쳐진 색은 더욱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 공장이 사라지고 마지막 불꽃을 쏘아 올리려는 이 이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 볼 수 없고, 시각 자료조차 남아 있지 않은 이불꽃을 구현하는 과정은 어땠나.
현실의 불꽃놀이가 지닌 소리와 박력, 형태는 영상물을 통해 절대 똑같이 구현할 수 없다. 이점이 외려 강점이 됐다. 아무도 본 적 없는 색인 만큼 더 적극적으로 허구성과 창의성을 가미하고, 더 회화적이며 영화적인 불꽃을 그리는 일이 가능했다. 불꽃 장인들이 현실적으로 불가 능하다고 말한 형태와 색채를 가감 없이 작품에 녹여낼 수 있었다.
- 슈하리 불꽃의 어떤 지점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나.
불꽃놀이엔 몇 가지의 화학 작용과 반응이 발생한다. 하나는 공기가 없어도 빛을 내며 펑 터지는 염색 반응(炎色反應)이고, 또 하나는 불꽃이 아래로 긴 빛의 궤적을 남기는 비산(飛散) 현상이다. 작중 케이타로가 말한 대로, ‘국화형 불꽃’ 형태로 터지고 불꽃이 떨어진다면 그 비산 현상의 색은 통상 노란색이다. 하지만 이것을 파리스 그린의 색깔로 그려 비현실적인 순간을 만들었다. 이러한 비약과 허구의 힘, 시적 허용을 애니메이션 속에서 어느 정도로 조율할지 깊이 고민했다.
- 황홀한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순간, 그것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표정과 행동은 생각보다 덤덤한 것이 흥미로웠다.
몹시 중요한 대목이다. 엔터테인먼트란 본질적으로 그런 것이다. 우리가 창작하는 것과 우리의 직업이 생활 필수품은 아니다. 세상사의 난제를 해결해 줄 수도 없고, 어떻게 보면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그저 남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일 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불꽃을 실제로 만들거나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에겐 이 일이 세상의 전부이다. 이렇게 세계가 구성된다는 그 균형 감각을 드러내고 싶었다. 물론 자명한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결과물을 봐줘야만 비로소 예술과 엔터테인먼트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든 창작물이 유용할지 폐기될 지는 오로지 보는 이들의 해석에 달려있다. 많은 사람의 반응을 그리되 과하지 않게 표현한 이유다.
- 젊은 나이의 케이타로, 카오루, 센타로 세 명이 주축인데, 청춘 하면 으레 떠오르는 연애 요소가 직설적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시골과 도시를 배경으로 할 때 가능한 세 가지 삶의 방식을 묘사했다. 고향에 남되 변화를 받아들이고 취직하거나, 고향의 본래 모습을 포기하지 못한 채 집에 남거나, 대도시로 떠나 다른 삶을 사는 갈림길이 있는 것이다. 각본 초기 에는 연애 요소가 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조금의 뉘앙스만 살리게 됐다. ‘보이 미츠 걸’ (소년이 소녀를 만나 새로운 삶에 들어서고, 커다란 변화를 겪는 일본 서브컬처의 서사 작법중 하나. <천공의 성 라퓨타> <너의 이름은.> 등이 대표적-편집자.) 구조가 여전히 많긴 하지만, 요즘엔 그러한 통념을 살짝 빗겨나가는 것도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 맞다. 청춘의 소년, 소녀가 등장하나 흔히 말하는 세카이계(セカイ系, 소년과 소녀의 만남이 세계의 운명과 직결되는 서사 유형. 마찬가지로 <너의 이름은.>이 대표적-편집자.)의 성향으로 전환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만남이 세계를 구원하기보단 세계의 일면으로 포착되는 것이다.
완전히 비슷한 마음이다. 유럽 영화제에선 잘알아주지 못했던 대목이다. 화려한 불꽃놀이를 보며 흥미를 지니는 사람이 있고, 심드렁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세카이계 풍의 기적에 몰두하지 않는 이야기도 있음을 환기하고 싶었다.
- 세계와 우주라는 말이 마음에 맴돈다. 케이타로는 불꽃에서 우주를 본다. 케이타로의 집 구조 역시 우주 같다. 창호지와 미닫이문 등을 통해 방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으나, 어디가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알 수 없을 정도의 미로다.
장지문, 문틀과 창틀, 창호지 문 같은 장치에 예전부터 관심이 컸다. 일본 가옥의 전통적인 창틀은 굉장히 단순한 '이치마쓰'(바둑판무늬) 모양임에도 수학적으로는 우주의 모양새를 떠올리게 한다. 동양 미술과 문화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