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여성 영화인들의 저력은 눈부시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한,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배우 양자경부터 청소년의 욕망과 감정을 다룬 <첫세계>의 윤단비 감독, 대규모 시위와 정치적 균열에서 사투하는 <옛날 옛적, 미래에>의 마르게리타 페라리 감독까지 여성 영화인들의 이야기를 이곳에 모았다. “삶을 움직이는 건 대단한게 아니다. 산책하며 햇살 쬐고. 가끔의 와인, 재미있는 친구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하고 특별기획 프로그램 ‘모든 시간 모든 곳의 양자경’을 함께한 그는 직접 선정한 자신의 필모그래피 세 편과 신작 한 편을 선보인다. 부산에 와서도 매일 아침 해운대 바닷가를 산책한다는 그는 다정한 말씨와 삶의 태도로 자신의 궤적을 진솔하게 전해줬다. 인터뷰를 마친 뒤 우리가 헤어지는 순간 그는 나를 둥글게 안아주며 등을 쓸어주었다. 오직 영화제에서 펼쳐질 수있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 특별기획 프로그램 ‘모든 시간 모든 곳의 양자 경’에서는 직접 <검우강호>(2010) <산디와라>(2026)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2022)를 골랐다.
서로 다른 시기의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검 우강호>는 언제나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작품이 다. 정우성 배우와 함께 작업한 것도 좋았지만, 단순한 복수와 액션영화가 아니라 아름답고 시적인 사랑 이야기라는 점이 좋았다. <산디와라>는 무엇보다 션 베이커와 작업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션 베이커 감독과 함께하면서 즉흥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방식을 배웠다. 그는 머릿속에 그림을 철저하게 그려두면서도 현장 에서 생겨나는 것을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변화하고, 상황에 적응하고, 함께 움직인다. 그리고 나의 역사적 승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가족의 의미가 희미해지는 와중에 가족과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어 행복했다. 앞으로는 아시아에서 더 많은 영화를 하고 싶다. 한국에서도 작업하고 싶다.
- 양자경의 삶을 구획해보자면 아시아 액션 스타로 완전히 자리매김한 상태에서 <검우강호>를 만났다. 그런데 여기서 변곡점을 찍는다. 익숙한 액션을 반복하기보다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액션을 시도해서 모든 장면이 어려웠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수 요소더라. 아주 하드 코어한 영화제작 경험이었다. 그때 나는 프로페셔널 해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배웠다. 무언가를 노동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무수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그 준비가 탄탄할 때 내가 원하는 대로, 제대로 일할 수 있다. 내가 일을 잘하고 싶은 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 배우 양자경의 연기는 표정이나 대사로만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을 통해 관객이 감정을 느끼게 한다. 신체적 표현과 내면의 감정을 조화롭게 분출할 수 있는 근원이 궁금하다.
캐릭터를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받아들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어머니와 자식이 결국엔 서로 로부터 분리되어야 하는 것처럼, 내가 특정 캐릭터의 얼굴이 되고 몸이 되지만 이 캐릭터는 그만의 인생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의상을 입고 분장을 마치면 나는 그 사람이 된다. 다른 사람인 척하는 것과 엄연히 다르다. 나는 메서드형 배우는 아니지만 감정적 동굴 안으로 깊이 들어가보려 한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내가 처음 촬영한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순서는 전혀 상관없었다. 캐릭터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겪어 그 순간까지 왔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으니 까. 인물의 역사를 충분히 이해하면 어느 장면을 먼저 찍든 필요한 감정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를 잘 이루려면 우선 나 자신을 내어줘야 한다. 연기를 하면서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건 그 사람의 삶이니 까. 미셸 여의 삶이 아니니까. 캐릭터가 자기 삶을 살도록 허용하면 새로운 게 보인다. 그게 나의 연습 과정이다.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두고 역사적 승리라고 표현했다.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을 두고 ‘안정적인 감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다니엘스 감독과 일하는 건 정말 이상하고 특이하고 행복했다. (웃음) 둘은 정말 하나다. 두사람 사이에는 에고가 없다. 서로의 아이디어를 나누지도 않는다. 똑같이 생각한다. 그렇기에 편안한 관계망 속에서 자유롭게 모험할 수있었다. 영화 속에 이런 대사가 나오지 않나. “어떤 우주에 있든 나는 당신과 함께 있고 싶다”고. 그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 두 감독의 본질이다. 무슨 일이 생기든 언제나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는 것. 영화 바깥으로 확장해보아도 늘 곱씹게 되는 메시지다.
- 신작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도 지금의 양자경과 흥미롭게 겹치는 작품이다. 나이 든 여성이 새로운 도전에 뛰어드는 이야기에서 어떤 공통 분모를 느꼈나.
나이가 들면 많은 사람이 ‘이제 은퇴할 때가 됐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은퇴한다는 게 무엇인가.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인가?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고 세계대회에 나가 챔피언이 될 수 있다고 믿은 한 여성에게 큰 영감을 받았다. 또 하나 좋았던 것은 우정이다. 영화에는 가족의 사랑이 있지만 가장 친한 친구의 사랑도 있다. 가족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지만 친구는 내가 선택한 사람이다. 누군가를 내 사람으로 선택하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친구랑 지내는 건 늘 신나니까. (웃음)
- 영화산업에서 여성들의 나이듦은 기회가 적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양자경은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세계가 더 넓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너무 동의한다. 특히 여성배우들이 그렇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이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정해놓은 상자 안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해왔다. 누군가가 나를 상자 안에 넣거나 내가 스스로 들어가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만 하게 된다.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 왜 상자 안에 있어야 하나? 세상에 할 수 있는 역할이 이렇게 많은데. 결국 도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다. 어떤 것을 보고 ‘너무 어려워. 하고 싶지 않아’라고 할 수도 있고, ‘흥미로운데? 왜 안 해보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계속 후자를 선택하려고 한다. 가끔 어린 세대의 사람들이 “나도 양자경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내게 전한다.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멋진 네가 돼. 나도 했는데 왜 네가 못해?” 여러분도 할 수 있다. 침대 밖으로, 방 밖으로, 집 밖으로 나가라. 그리고 시도하면 된다.
- 앞서 앞으로 아시아에서 더 많은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함께 작업하고 싶은 한국 영화인을 꼽는다면.
와, 그럼 내 말을 꼭 전해달라. (웃음) 한국에는 함께 작업하고 싶은 훌륭한 감독들이 정말 많다. 나는 박찬욱 감독의 유려한 미술을 너무 사랑하고, 봉준호 감독의 역설과 위트도 좋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도 정말 좋아한다. 꼭 전해달라. 꼭.(그 뒤로 양자경 배우는 두번을 더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