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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6호 [스페셜]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 <메트로폴리스> 린타로 감독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되짚을 때 린타로라는 이름은 빼놓기 어렵다. <우주해적 캡틴 하록>(1978) <은하철도 999>(1979) <메트로폴리스>(2001) 등을 연출하며 일본 애니메이션의 표현 영역을 넓혀온 그는 언제나 움직이는 이미지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원작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기면서도 실사영화의 몽타주와 카메라 문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최근에는 무성영화의 표현 방식으로 돌아가 영화의 원점을 탐색하고 있다. 반세기 넘게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온 린타로 감독은 오늘날 일본 애니메이션의 세계적 부흥을 어떻게 바라볼까. 시리즈와 인기 원작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산업,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줄어드는 실험의 기회, 인공지능이 창작에 미치는 영향까지.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린타로 감독은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도 끊임없이 창작자의 태도로 돌아왔다. 자신에게 주어진 오랜 시간을 한 곳에 그러모아본 자만이 할 수 있는 말들이 여기에 있다.

- 이번 마스터클래스에서 린타로 감독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살아 있는 역사로 소개됐다. 지난 작업을 돌아볼 때 일본 애니메이션의 방향을 바꾼 중요한 선택이 있었다고 생각하나.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방향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생각으로 작업하지는 않았다. 다만 당시에는 없었던 새로운 영상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1960~70년대에는 지금처럼 영상이 넘쳐나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새로운 표현에 도전하기가 오히려 쉬웠다. 지금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갖 영상이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나의 시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웃음) 그렇다고 특별한 표현 방식을 만들려고 의식했던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구상하다 보면 그에 어울리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것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겼을 뿐이다. 관객도 영화를 볼 때 인상적인 이미지를 하나씩 풀어보면 좋겠다. 각각의 이미지가 이야기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방법이다.

- 스트리밍을 통해 시리즈를 감상한 뒤 후속 이야기를 극장에서 만나는 관람 방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은 극장판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오늘날의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나.

이런게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팬의 입장에서는 다음 이야기를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볼 수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영화 문화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시간에도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관객은 기다림 끝에 얻는 즐거움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는 것 같다. 너무 많은게 빠르게 흘러가다 보면 감상이나 문화가 아니라 소비로 전락할 수 있다. 천천히 곱씹어야만 제대로 다가오는 메시지와 디테일들이 분명있다. 콘텐츠의 소비 속도와 기다림의 가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 과거 셀 애니메이션과 백라이트를 활용한 다채 로운 표현처럼 린타로 감독은 애니메이션의 시각적 가능성을 확장하는 실험을 이어왔다. 오늘날 제작 환경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됐고,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도 한층 체계화 됐다.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표현은 다양 해졌지만 오히려 새로운 형식에 도전하는 시도는 줄어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실험하고 도전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다. 결국 애니메이터와 창작자의 실험하려는 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오히려 디지털 시대에는 그런 표현을 구현할 수 없다고 미리 단정하기 때문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게 아닐까. 처음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도 실제로 해보면 가능한 경우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시도하기도 전에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물론 제작 환경의 문제도 있다. 일본과 한국의 TV 애니메이션은 모두 정해진 예산과 촉박한 일정에 맞춰 제작해야 한다. 이미 체계화된 시스템 안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새로운 표현을 실험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제약이 있다고 해서 실험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시도하지 않는 것과 정말로 할 수 없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 새로운 표현을 실험하기 어려워졌다는 우려와 별개로, 일본 애니메이션은 세계적인 부흥기를 맞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올해 진행된 제79회 칸영화제에서는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와 크런치롤이 ‘영화, 스토리텔링, 그리고 글로벌 애니메이션의 부상’이라는 주제로 포럼을 열기도 했다.

세계 애니메이션을 둘러봐도 일본처럼 독특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곳은 드물다. 일본에는 만화를 원작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온 고유한 흐름이 있다. 그 과정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발전했다. 물론 오리지널 스토리를 바탕으로 작품이 계속 만들어지지만, 오늘날의 애니메이션 산업은 경제적 논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게 당연해졌다. 이미 흥행한 작품을 다시 만드는 편이 오리지널 작품보다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기 쉽기 때문이다. 물론 시장경제는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창작자의 정신과 문화적 가치 사이에 균형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 균형이 맞지 않는다. 인기작을 리메 이크하거나 재개봉하는 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것만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는 없다. 새로운 것을 만들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 지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게 바로 AI다. AI는 평균적인 결과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답변을 제안하기 때문에 리메이크를 추천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환경이 지속되면 위험을 감수하는 오리지널 작품이 탄생하기 어려워 진다. 설령 새로운 작품이 나오더라도 흥행하지 못할 수 있고, 그제야 우리는 흥행과 예술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질문하게 될 것이다. AI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이것은 애니메이션 산업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다. 사회적 차원에서도 다양한 시도와 저항이 필요하다.

- <우주해적 캡틴 하록>을 통해 마쓰모토 레이지와 인연을 맺은 이후 극장판 <은하철도 999> 와 <안녕, 은하철도 999>를 함께 작업했다. 새롭게 제작되는 <은하철도 999>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나.

마쓰모토 레이지와는 <우주해적 캡틴 하록> TV 시리즈를 통해 처음 만났고 이후 오랫동안 가까운 사이로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롭게 만드는 <은하철도 999>에도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 제작을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다. 지금 말하면 프로듀서가 레드카드를 꺼낼 것이다. (웃음)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순한 속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혀 새로운 <은하철도 999>가 탄생할 것이다.

- <꿈 속의 지로키치>(2014)에서는 무성영화의 표현 방식을 활용했다. 오랜 시간 새로운 영상 언어를 탐구해온 감독이 다시 영화의 초기 형식으로 돌아간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를 공부하면서 영화의 원점은 무성영화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성영화를 굉장히 많이 봤다. 당시 감독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에는 지금까지도 통용되는 표현이 많다. <네즈미코조 지로키치> 역시 무성영화에 대한 존경에서 출발했고, 야마나카 사다오 감독에게 경의를 표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요즘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무성영화를 찾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무성영화에는 영화의 영혼이 담겨 있다. 그 작품들을 더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