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트랑 만디코 감독의 영화는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고집스러운 미학이 공존한다. 2026년 칸영화제 미드나잇스크리닝에서 상영된 신작 <로마 엘라스티카> 역시 그 연장선에 놓인다. 1980년대 초, 이탈리아 로마의 치네치타 스튜디오에서 SF 영화를 촬영하던 배우 에디 마스(마리옹 코티야르)는 뇌종양 진단을 받은 뒤 젊은 날의 분신과 기이한 존재들을 마주하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만디코는 과거의 로마를 사실적인 시대극으로 재현하는 대신 감각적인 색채와 뒤틀린 이미지로 독창적인 세계를 펼쳐낸다. 모든 영화를 필름으로 촬영하고 시각적 스타일을 세밀하게 설계하는 감독이 이번 작품에서는 유적지를 찾고 인공적인 세트를 더해 자신만의 로마를 새롭게 구현했다. 영화의 마법을 믿는 감독은 어떤 상상력으로 스크린을 채웠을까. 베르트랑 만디코와 함께 작품의 출발점부터 고유의 미학을 완성하기까지의 여정을 따라가 보았다.
- 한국 관객을 처음 만난 소감이 궁금하다. 상영후 관객들의 반응이나 질문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었나.
관객들의 집중력이 무척 좋다고 느꼈다. 질문도 명확하고 구체적이어서 놀랐다. 특히 기억에 남는 관객이 한 분 있다. 오늘 영화를 두 번째로 관람했다고 하며 작품에 관해 깊이 있는 분석을 들려주었다. 특히 젊음과 여배우, 죽음에 관한 해석이 인상 깊었다.
- <와일드 보이즈>(2017) <애프터 블루 (더티 파라다이스)>(2021) <그녀는 코난>(2023) 이 우화적 세계를 다뤘다면, <로마 엘라스티카> 는 1980년대 영화 산업이라는 구체적인 시대와 현실을 전면에 내세운다. 새로운 방향의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이전 장편 영화 세 편은 하나의 세트처럼 연결 되는 작품들이었다. 전작들에서 우화와 판타 지를 통해 천국과 지옥이라는 주제를 탐구했는 데, 세 번째 작품을 완성한 뒤에는 새로운 문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980년대 이탈리아는 풍요로운 시기를 지나, 베를루스코니 시대 의 오락성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영화 산업이 쇠퇴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여배우가 죽음을 향하는 흐름이 영화 산업의 쇠퇴와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영화 산업과 여배우 모두 쇠락을 피하려 몸부림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칸영화제 인터뷰에서 배우를 영화 산업의 ‘순교자’에 비유했다. 배우라는 직업에 매혹되면서도 그들이 감내하는 희생에 주목하게 된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린 시절 나의 꿈은 배우였다.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여배우를 동경하면서부터였다. 왜 여배우에 주목했느냐고 묻는다면, 더 큰 위험이 따른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여배우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영화 산업 안에서 고통받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병들어 간다. 예를 들어 톰 크루즈가 비행기 옆을 날아 다니는 장면을 찍을 때, 희생자로 비춰지는 쪽은 여배우였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 주연을 맡은 마리옹 코티야르와 노에미 메를랑의 캐스팅 과정은 어땠나. 두 배우와 작업하면서 특히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도 궁금하다.
두 배우와 함께하게 된 과정은 무척 자연스럽고 수월했다. 노에미 메를랑은 이미 내 영화를 알고 있었고, 마리옹 코티야르에게는 내가 직접 영화를 소개했다. 두 배우 모두 연락이 닿은뒤 곧바로 출연을 승낙했다. 영화의 주제는 다소 심오하지만, 촬영 현장은 내내 밝고 유머러스했다.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나눴고, 서로 시선을 주고받기도 했다. 나는 카메라를 통해 그들의 연기를 바라보고, 배우들은 내가 자신들을 촬영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식이었다.
- 실제 로마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영화 스튜디 오와 인공적인 세트를 활용해 이탈리아 영화의 황금기를 연상시키는 가상의 로마를 구축했다. 색채와 분장, 의상, 세트 등 시각적 요소를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점은 무엇인가.
나는 모든 영화를 필름으로 촬영한다. 색감을 간단하게 조정하는 것 외에는 특수효과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실제 로마를 재현하려 했다면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었을 것이다. 도로의 자동차를 모두 지우고 건물의 외관이나 각종 구조물도 다시 만들어야 했을 테니까. 그래서 프랑스에 남아 있는 유적지 가운데 로마를 연상시키는 공간을 찾아 촬영했다. 실제로 로마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장소들을 활용했다. 로마의 특성을 의식적으로 살려내려 했으며, 그곳의 세트와 공간이 죽은 자들의 세계를 표현 하기를 바랐다. 스타일을 구상하는 데 많은 고민을 기울였다. 촬영은 단 15일 만에 이뤄졌기 때문에 세트와 색채 등 시각적 요소를 사전에 구체적으로 확정해두어야 했다. 예를 들어 특정 색상이 화면에 등장하지 않도록 요청하기도 했다.
- 화면에 등장하지 않도록 특별히 요청한 색상은 무엇인가.
영화의 첫 장면은 미국에서 촬영했는데, 이 부분은 따뜻한 색조와 빨간색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차가운 색조는 전혀 사용하지 않도록 했다. 이후 이탈리아로 배경이 옮겨가면서 피를 제외하고는 빨간색을 사용하지 않았다. 주황색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톤 다운된 노란 색과 초록색, 회색 계열을 활용했다.
- 이탈리아 영화의 역사가 곳곳에 쌓이고 겹쳐진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번 작품을 구상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영화가 있다면.
페데리코 펠리니의 중기 작품으로 <로마> (1972)가 있다. 로마에서 방황하는 배우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과 유사하고, 내레이션도 상당히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작품은 〈아이덴티키트>(1974)다. 앤디 워홀과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출연하며, 로마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