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비극은 언제나 거대한 악인의 손에서 시작될까? <노트르 살뤼>는 이 질문을 평범한 공무원의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1940년 독일에 패배한 프랑스. 공학자 출신의 앙리 (스완 아를로)는 프랑스 재건을 주장하는 정치적 선언문 <노트르 살뤼>를 집필하고, 비시 정권의 행정조직에 들어간다. 국가에 봉사하며 사회에서 인정받기를 바라는 사이 그는 자신의 처리하는 서류와 행정적 결정들이 유대인 박해와 강제이송을 뒷받침하는데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노트르 살뤼>는 전쟁과 폭력의 민낯을 특정한 악인이나 독재자의 얼굴로 국한하지 않고 평범한 사무실 책상에서, 행정적 문서와 서류들 사이에서 포착해낸다. 한국을 찾은 에마뉘엘 마르 감독과 그의 오랜 창작 동료이자 드라마투르그(극적 구성 및 서사 자문)인 쥘리 르쿠스트르를 만났다. 역사를 재현하는 영화에 윤리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새로이 비출 수 있었다.
역사는 서류 위에서 움직인다
<노트르 살뤼>는 비시 정권의 행정조직에서 일하는 공무원의 일상을 따라간다. 사무실에 출근하고, 상사와 동료의 눈치를 살피고, 서류를 처리하는 남자. 그는 거대한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지도자도, 직접 무기를 드는 군인도 아니다. 그러나 그가 수행하는 사소한 업무는 유대인 박해와 강제이송이라는 참혹한 현실에 연결된다. <노트르 살뤼>가 주목하는 것은 악행의 결과만큼이나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평범한 노동의 과정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기획의 시작은 에마뉘엘 마르 감독의 증조부가 남긴 편지에서 시작되었다. "증조부의 편지에서 놀라웠던 건 거대한 역사가 일상의 아주 작은 결정들 끝에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역사를 생각할 때 영웅이나 전투, 정치적 사건을 떠올린다. 하지만 개인의 삶에 역사가 어떻게 침투하는지는 잘 보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기억은 주로 레지스탕스의 저항을 중심으로 이야기되어왔다. 반면 나치에 협력했던 이들의 역사는 가족 내부에서도 쉽게 입에 올리지 못하는 금기다. 그렇기에 이 침묵을 깨는 건 두려움보다 해방에 가까웠다."(에마뉘엘 마르) 쥘리 르쿠스트르에게도 역사적 사료이자 편지는 특별한 재료다. “역사책이나 기록 보관소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사적인 삶의 증언이었다. 그 친밀한 기록이 가진 힘을 영화 전체에서 잃지 않으려 했다."
당신에게도 간접적 책임이 있다
에마뉘엘 마르 감독이 이 영화에서 탐구하고 싶었던 개념은 ‘간접적 책임’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일에 전적으로 책임지지는 않지만, 두 번째 단계의 책임을 지는 위치에 놓일 수는 있다. 공무원이라는 존재가 흥미로웠던 것도 그래서다. 사무실에서는 서류와 사소한 결정을 통해 폭력과 범죄가 이루어진다.” 에마뉘엘 감독은 관료조직의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미국 시트콤 <오피스>를 참고했다. "우리는 범죄 자가 무섭고 흉악하게 생겼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의 범죄자는 우리가 기대하는 모습과 다르다. 유럽의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범죄 역시 괴물이 아니라 실제 인간들이 저질렀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에마뉘엘 마르)
쥘리 르쿠스트르는 이를 '악의 평범성'과 연결한다. 배우를 캐스팅할 때부터 얼굴에 악이 새겨진 듯한 인물을 찾지 않았다. "중요한건 개인 안에 악이 존재하느냐보다 행정조직이 어떻게 사람들을 거대한 기계의 부품으로 만드 는가였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조차 잊게 되기 때문이다."(쥘리 르쿠스트르)
각본상을 받은 '즉흥영화'
두 사람의 협업 방식도 이 영화의 형식과 맞닿아 있다. 이전 작품 <제로 퍽스 기븐> (2021)에서 공동연출과 공동각본을 맡았던두 사람은 이번에는 역할을 달리했다. 에마뉘엘 마르가 연출을, 쥘리 르쿠스트르는 인물의 연속성과 전체적인 극적 구조를 살피는 극작 작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여기 두 창작자가 사랑하는 즉흥성이 빚어낸 재미있는 비하인드가 있다. <노트르 살뤼>는 올해 제79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는데 사실 촬영 내내 각본이란 게 거의 기능하지 않았기에 기분 좋게, 혹은 엉뚱하게도 웃음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 다. "어떤 면에서는 아이러니했다. 우리는 즉흥 연출을 선호한다. 시나리오를 쓰기는 하지만 대부분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그 대본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현장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다큐멘터리처럼 작업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처음에 수상하고 나서 너무 놀랐다. 글쓰기보다 영화적 언어를 인정해준 상이라고 생각했다."(에마뉘엘 마르)
거절할 수 있는 용기
<노트르 살뤼>는 194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지만 영화의 질문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왜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켜야 할까. 왜 그렇게 쉽게 권리를 권위주의적 지도 자에게 넘겨주려 할까. 그 결과는 일상에 나타 난다. 특히 시대의 패배자라고 느끼는 사람들의 감정은 쉽게 정치적으로 이용된다."(에마뉘엘 마르) 쥘리 르쿠스트르는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더욱 일상의 언어로 옮긴다. "우리는 언제 마지막으로 내가 지금 하는 일에 정말 동의하 는지 물었을까. 거절한다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닌 건 아니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앙리는 거절하지 않는다. 거절하지 않는 삶이란 모순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쥘리 르쿠스트르)
영화 속 부부관계 역시 이 문제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에마뉘엘 감독은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약속의 실패를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환멸과 나란히 놓는다. "사랑이 식어가는 부부처럼 시민들 역시 오랫동안 믿어온 민주주의에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실망이 곧 포기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노트르 살뤼>가 오래된 가족의 편지를 오늘날 관객 앞에 다시 펼쳐 보이는 이유다."(에마뉘엘 마르) 거대한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어쩌면 영웅적인 결단보다 매일의 작은 선택, 그리고 어느 순간 마침내 입 밖으로 내는 한마디의 거절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