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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중의 “러브, 씨네!”] 꿈꾸던 세계를 발견하는 일, 첫사랑

첫사랑을 떠올리면 우리는 대개 한 사람을 기억한다. 그 사람의 얼굴, 목소리, 함께 걷던 계절, 끝내 전하지 못했던 말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문득 다른 생각이 든다. 우리가 끝내 잊지 못하는 것은 정말 한 사람이었을까. 나는 첫사랑을 조금 다르게 정의해보고 싶다. 첫사랑이란 그 사람을 통해 자신이 꿈꾸던 세계를 발견하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한 사람을 사랑했다기보다, 그 사람과 함께라면 가능할 것이라 믿었던 삶을 먼저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 다정한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다정함이 존재하는 세계를. 안전한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삶을. 한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라면 가능할 것 같았던 미래를. 그래서 첫사랑은 사람에 대한 기억이라기보다, 내가 가장 원했던 세계를 발견했던 기억에 가깝다.

첫사랑을 다룬 영화는 많다. 그 가운데 내가 마음속에 오랫동안 품고 있는 작품은 <4월 이야기>와 <건축학개론>이다. 두 작품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이유는 서로 다른 시간에서 첫사랑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4월 이야기>는 첫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의 내면을 담고 있고, <건축학개론>은 그 사랑이 지나간 뒤에도 우리에게 무엇이 남는지를 담고 있다. 두 영화는 우리가 처음 어떤 세계를 꿈꾸게 되었는지를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4월 이야기>(1999)

<4월 이야기>

<4월 이야기>에는 특별한 사건이 없다. 주인공 우즈키는 홋카이도 시절부터 야마자키 선배를 짝사랑해왔다. 그 마음은 그녀를 도쿄의 무사시노 대학으로 이끈다. 그리고 영화는 우즈키가 도쿄라는 낯선 공간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따라간다. 영화는 우즈키가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 처음부터 말해주지 않는다. 낯선 도시에 스며드는 시간을 따라가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그 선택의 이유를 조용히 드러낸다.

그사이 우즈키의 상상이 먼저 야마자키를 그린다. 뭉게구름이 떠 있는 푸른 하늘에, 햇살처럼 떠오른 그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 그 장면은 마치 우즈키가 오래 품어온 이상이 형상을 얻는 순간처럼 보인다. 첫사랑은 그렇게 한 사람을 통해 내 안에 오래 꿈꾸어온 이상 세계를 발견하는 일이다. 첫사랑은 함께한 시간보다 혼자 품었던 시간이 더 길고, 이루어진 사랑보다 마음속에서 자라난 사랑이 더 크기 때문이다. 벚꽃이 흩날리는 4월의 도쿄는 우즈키의 내면과 정확히 조응한다. 그렇게 설렘과 낯섦은 조금씩 첫사랑이 된다.

사랑은 세계를 바꾸지 않는다. 다만 내가 세계를 바라보는 감각을 바꾸어놓는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이러한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연출을 놓치지 않는다. 영화의 절정은 비에 젖은 우즈키를 위해 야마자키 선배가 우산을 펼쳐 보이는 장면이다. 그 다정함은 거창한 고백도, 극적인 사건도 아니다. 그런데도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우즈키가 오래 품어온 마음이 처음으로 응답받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영화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침묵으로 연기해야 한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것이 일어나고 있어야 한다면. 상대가 건네는 작은 움직임 하나가 내가 준비한 모든 감정보다 더 큰 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첫사랑도 아마 그렇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준비해서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라, 준비할 수 없었기에 먼저 흔들리게 되었던 감정. 그 흔들림은 내가 꿈꾸던 세계를 발견하는 순간에 축포가 된다. 그래서 <4월 이야기>는 첫사랑을 자신이 꿈꾸던 세계를 발견하는 순간으로 기록한 영화다.

<건축학개론>(2012)

<건축학개론>

<4월 이야기>가 그 세계를 처음 발견하는 순간을 담고 있다면, <건축학개론>은 그 세계가 기억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우리가 사랑했던 세계를 어떤 의미로 남겨둘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에 가깝다. 서연은 실패한 결혼 끝에 제주도에 집을 짓고 싶다며 승민을 찾아온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단지 새로운 집이 아니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절의 집. 안식할 수 있었던 공간. 아직 아무것도 잃지 않았던 시간. 그리고 가장 순수했던 세계. 서연에게 집은 바로 그 세계의 형태다.

승민 곁에는 약혼자가 있다. 그럼에도 그는 서연의 집을 끝까지 짓는다. 1995년의 승민은 서연 앞에서 늘 어설펐다.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했고, 진심을 오해했으며, 결국 그녀를 위해 상상했던 무엇도 완성하지 못한 채 끝났다. 17년이 지나 그는 건축가가 되었다. 서연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때 끝내 완성하지 못했던 자신의 첫사랑, 다시 말해 그 시절 가장 순수하게 믿었던 세계를 비로소 완성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내어주는 것.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사랑 안에서 꿈꾸었던 세계만큼은 끝내 현실에 남겨두는 것.

두 사람은 같은 집을 바라보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품고 있다. 서연은 잃어버린 세계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하고, 승민은 끝내 완성하지 못했던 세계를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 그 다른 마음은 비로소 하나의 집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마침내 집은 완성된다. 하지만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은 떠나고 계절은 지나간다. 그럼에도 그때 처음 만났던 세계는 오래도록 우리 안에 남는다.

두 영화는 첫사랑이라는 감정을 이해하는 서로 다른 두개의 방식이다. 하나는 꿈꾸던 세계를 처음 발견하는 순간을, 다른 하나는 그 세계를 어떤 의미로 기억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영화는 첫사랑을 잊지 않는다. 사랑했던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우리가 처음 어떤 세계를 꿈꾸게 되었는지를 기억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첫사랑은 내가 꿈꾸던 세계를 사랑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조금 다른 사랑도 배우게 될 것이다. 마지막 사랑은 내가 꿈꾸지 않았던 세계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