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조금 망설였다. 영화 주간지에서 넷플릭스 코리아 10주년 특별호를 만든다니. 10년 전만 해도 ‘넷플릭스 영화’라는 말은 묘한 이질감을 풍겼다. 영화는 영화고 드라마는 드라마였다. 무엇보다 영화는 극장에서 만나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지금도 그 믿음을 버릴 생각은 없지만 믿음과 현실을 구분할 필요는 있다. 우리는 지난 10년간 넷플릭스가 무엇을 바꾸었고, 어떻게 바뀌었는지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있던가.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영화는 자신을 다시 정의해왔는데, 어쩌면 너무 가까이 있다는 핑계로 정작 중요한 질문을 건너뛰었던 건 아닐까 싶다.
2016년 한국에 첫발을 들인 지 10년, 돌이켜보니 넷플릭스는 당연하다고 믿었던 관습과 경계를 부숴왔다. 궤적은 변함없지만 지금 달라진 건 스노볼이 굴러가는 속도와 규모다. <킹덤>이 등장했을 땐 ‘영화적 완성도를 갖춘 시리즈’라는 표현이 홍보 문구로 어색하지 않았지만 이젠 오히려 그런 식의 구분이 무색하다. <오징어 게임>은 한국의 놀이를 세계의 언어로 바꿨고,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은 요리하는 손끝을 스포츠 경기만큼 긴박하게 만들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이르면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을 굳이 구분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성공의 크기만큼 질문도 커진다. 이토록 놀라운 작품들이 더 많은 사람에게 도달하는 동안 정작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자리는 얼마나 넓어졌을까.
이번 특별호를 준비하며 가장 마음이 간 것도 결국 사람이었다. 10년간 170편의 작품, 80곳 이상의 제작사, 2만명이 넘는 스태프와 출연진. 규모를 설명하는 숫자들은 훌륭하지만 거기서 이야기를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21명의 창작자를 만났다. 이미 이름이 알려진 감독과 배우도 있지만 기획의 첫 단추를 끼우는 프로듀서, 한 장면의 빛을 조율하는 조명감독, 색과 소리와 움직임을 다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특히 귀를 기울였다. 이들의 말을 읽다 보면 한편의 작품이 얼마나 많은 우연과 고집, 설득과 기다림을 거쳐 태어나는지 새삼 실감할 수 있다. 넷플릭스라는 거대한 이름 하나로 묶어버리기에는 그 안에 너무 많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있다. 어쩌면 그 결을 세세하게 풀어헤치는 것이야말로 잡지가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플랫폼은 작품을 공개하고 순위를 매기지만 잡지는 그 작품을 만든 사람들의 시간을 들여다본다. 순위는 매주 바뀌어도 한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 쏟아부은 시간은 사라지지 않으므로.
나는 여전히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시간이 좋다. 가끔은 영화를 보는 일보다 극장에 가는 일이 더 좋을 때도 있다. 목적지에 도착해 불이 꺼지기를 기다리는 시간부터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자리를 뜨지 않는 시간까지, 그 쓸모없어 보이는 절차들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극장 밖에서 만나는 이야기가 덜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특정한 장소를 향한 충성심으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영화를 사랑하는 대신 어떤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넷플릭스 코리아가 지난 10년간 열어놓은 가능성을 반갑게 바라본다. 익숙한 제작 관습을 넘어 새로운 형식과 규모의 시도가 이어졌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 출발한 이야기들이 세계 곳곳의 관객과 만나는 길도 한층 넓어졌다.
다만 그 질문의 끝에는 언제나 작품과 사람이 있어야 한다. <씨네21> 독자 여러분께 넷플릭스 코리아 1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특별호가 조금은 낯설게 보인다면 오히려 반가운 일이다. 부디 이 시도가 익숙한 자리에 머물지 않겠다는 신호라고 받아들여주시면 좋겠다. 10년 전의 우리는 지금의 풍경을 상상하지 못했다. 앞으로의 10년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이 살아남고 무엇이 사라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그 변화를 누군가의 승리나 패배로 서둘러 정리하고 싶지는 않다. 이야기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리가 극장 안에서나 바깥에서나, 플랫폼에 얽매이지 않고, 시간을 들여 좋은 이야기를 계속 찾아 보는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