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오후 6시가 되면 어김없이 퇴근하는 의사가 있다. 병원의 관행에 순응하지 않고, 상사의 지시에도 좀처럼 고개를 숙이지 않는 계수정(김지원)이다. 장희숙(이정은) 의사용역소개소에 소속된 그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이다. 회진, 회식, 교수 논문 돕기, 의무적 야근, 친목도모까지 의료 업무와 관련 없는 것은 완강히 선을 긋는다. 그다음으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것이다. “실패도 하지 않습니다.” 망설임 없는 판단과 결정, 섬세하고 빠른 술기. 계수정의 수술 실력은 신의 경지에 올라 있다. 따라서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이하 <닥터X>)는 병원 내 권력의 부조리를 폭로하고 천재 의사가 이를 응징하는 일종의 히어로물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사이다형’ 쾌락으로만 에피소드를 구성하지 않는다. 의료수가와 리베이트, 의료인력 부족, 제약회사와 의료계 사이에 굳어진 관행까지. 드라마 속에서 병원은 생과 사가 교차하는 전쟁터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직종과 고용관계가 얽인 거대한 ‘노동 현장’으로서 조명된다. 지금까지 의학 드라마에서 의사의 헌신과 수술의 성공이 전면에 놓이는 동안 그 공간을 유지하는 수많은 노동은 배경으로 생략돼왔다. 따라서 <닥터X>가 구현하는 저항이란 피라미드 꼭대기에 선 사람들을 끌어내리는 일만이 아니라 위계 자체가 설정한 시야를 바꾸는 일이다.
의료 드라마에서 병원은 오랫동안 의사들의 세계였다. 그 안에서 가장 약한 사람으로 호명되는 이들은 대개 인턴과 레지던트다. 이들은 선배의 권위와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며 성장하고, 마침내 더 나은 의사가 되는 것으로 자신의 고난을 보상받는다. 그러나 이들의 서사는 병원의 위계를 비판하면서도그 위계의 바깥으로 좀처럼 나가지 않는다. 인턴은 언젠가 전문의가 되고, 레지던트는 자신을 억압했던 자리로 이동할 가능성을 지닌다. 이들의 고통은 대체로 전문직 내부의 세대교체라는 전망 속에서 해석된다. 반면 병원을 청소하고 시설을 유지하며 때로는 체불된 임금을 받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그러한 상승의 서사가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들은 병원이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지만 병원을 대표하는 얼굴이 되지는 못한다. 병원의 노동을 다루면서도 드라마가 오직 의사의 노동만을 바라보는 순간, 병원이라는 공간을 구성하는 불평등은 전문직 내부의 갈등으로 축소된다. 그리고 여기, 계수정은 바로 그 얼굴 없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20년 넘게 대학병원에 수술장갑을 납품해온 노인, 임금 체불로 시위하는 노동자의 어린 조카, 병원 청소 노동자, 제약회사 영업사원. 좀처럼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이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심지어 계수정은 용역 청소부의 더딘 움직임을 관찰하고서 그가 쓰러질 가능성을 예감한다. 퇴근 시간이 초과하는 것을 1초도 참지 않는 그지만 용역 청소부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그가 출근한 시간은 오전 6시30분이었다. 수정은 가운을 벗은 채(그래서 환자들도 그가 의사인지 헷갈려할 정도다) 환자의 병실을 찾고, 그들의 안녕 뒤편에 놓인 진짜 사정을 읽는다. 이는 단순히 약자에게 친절한 의사의 미담과는 다르다. 병원의 질서를 유지하는 노동과 병원의 명예를 독점하는 노동이 어떻게 다른 가치를 부여받는지 노골적인 현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따뜻하고 훈훈한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세계관의 의사들도 함께 일하는 이들을 극진히 생각한다. 급식 아주머니를 대신해 급식 노동을 하는 이익준(조정석), 간호사들의 커피를 늘 챙기는 안정원(유연석), 간호사들에게 유명 도넛 가게를 같이 놀러 가자고 말하는 신입 의사들까지. 주조연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의사들은 다정하다. 하지만 이 넉넉한 온기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갈망할 뿐 진짜 현실에 드리운 문제들을 가리킬 수는 없다. 병원이란 거대 세계가 품은 구조적 불평등은 개인의 인품에서 비롯한 문제로 치환되고, 그 안에서 발생한 갈등은 더 따뜻한 사람이 봉합할 만한 문제로 축소된다. 그런 면에서 계수정이 불편할지언정 자꾸만 건드리고 들쑤시는 의료 문제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가 마주하는 날것 그대로의 현실이다.
문제는 드라마 밖이다. <닥터X> 방영 이후 작품이 의료진을 묘사하는 방식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진 것이다. 한 현직 정형외과 의사는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에 “회진을 불필요한 잡무처럼 묘사하고, 의료진을 무능한 악역으로 단순화한다. 극적 과장은 이해하지만 의료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있다”며 ‘<닥터X>의 의료 현실 왜곡 및 의료인 묘사에 관한 심의 요청’을 신청했다. 드라마로 인해 의료진을 무능하고 비윤리적 집단으로 일반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낸 칼럼이나 오피니언도 곳곳에 게재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의학적 고증의 정확성을 요구하는 일과 특정 직업군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작품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이미 사회적 중대 사안으로 가시화된 오랜 비판을 의료인 전체에 대한 ‘모욕’으로 해석해버리는 순간, 작품이 겨냥한 제도적 문제는 다시 직업적 명예의 문제로 축소된다. 병원 안에서 누구의 노동이 존중받고 누구의 고통이 외면되는지 묻는 질문에 의료계에서 가장 큰 발언권을 가진 이들의 항의가 응답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무엇보다 <닥터X>가 선사하는 통쾌함에는 결정적인 결핍이 있다. 우리네 현실에는 계수정이 없다. 드라마에서는 단 한명의 의사가 관행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조직에 균열이 생기지만, 현실에서 환자와 노동자를 대신해 싸워줄 초인적인 의사를 기대할 수없다. 화면이 꺼지는 순간 우리에게 남는 것은 계수정이 구해낸 세계가 아니라 그가 문제 삼았던 세계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건, 자신의 직업적 명예를 실추시키지 말라고 아득바득 달려드는 스승(醫師)의 얼굴들.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김 사부(<낭만닥터 김사부>), 최도영(<하얀 거탑>), 박시온(<굿 닥터>), 백강혁(<중증외상센터>), 그리고 계수정을 찬사하는 건 대중이 그저 순진무구하게 미디어 속 다정한 의사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도식화된 병원의 위계와 질서 속에서 자신의 존엄을 최소한이나마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대중의 골 깊은 경험과 상처를 읽지 못한다면 <닥터X>로 헐겁게 드러나버린 대중과 의료진의 간극은 영원히 좁힐 수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