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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그 안에 내가 모르는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의 가계부>

성승택 감독이 장롱 속에서 발견한 건 어머니의 가계부였다. 차곡차곡 쌓으면 탑이 될 만큼 많은 양이었다. 콩나물 10원어치, 고기 100원…. 호기심에 한권씩 들춰보다 1972년 9월3일 메모에 눈길이 갔다. “괜한 일로 마음이 괴롭구나. 왜 여자로 태어났을까. 원망스럽구나.” “어머니를 한번도 여자로 생각한 적 없었던” 그에게 충격을 안긴 문장이었다. 48년치 가계부에 자신이 몰랐던 어머니의 모습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발견의 시간을 아들은 카메라에 담기로 한다. 당연하게도 <어머니의 가계부>는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한 사람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어머니가 처음 가계부를 쓴 1969년을 삼선개헌과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 있던 해로 보듯, 영화는 한국 현대사와 세계의 주요 사건까지 아우르며 개인의 삶을 넓은 시야에서 조명한다. 수년간의 작업을 거친 성승택 감독에게 윤종생이라는 1941년생 여성은 어떤 사람으로 남았을까. 이미 차기작 제작에 돌입한 그에게 잠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청했다.

- 어머니의 안부부터 물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지내시나. 영화에서는 어머니가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면서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다.

진행을 막을 수 없는 병이지만 괜찮으시다. 옆에서 아버지가 잘돌봐주고 계신다.

- 여전히 부모님과 전주 집에서 살고 있나. 성승택 감독이 전주대학교 영화방송학과 교수가 되면서 전주로 터전을 옮겼고, 부모님이 이 집으로 이사 왔다.

그렇다. 여전히 세 식구가 전주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 복지사의 도움은 받나. 복지사가 방문해 생활을 도와주는 정부 지원을 어머니가 극구 반대하다가 영화 말미에 승낙하는 장면이 있다.

다행히 그 이후로 복지사가 평일에 하루 3시간씩 방문해 이것저것 봐주신다.

- 어머니의 기억과 국가의 대소사, 해외 이슈를 함께 다루다 보니 교육자료로 쓰면 좋겠다 싶었다. 예컨대 1970년을 다룰 때는 남편이 직장을 그만뒀다는 가계부 기록, 혼분식 장려 운동으로 쌀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는 어머니의 증언, 국제적인 인플레이션을 다룬 뉴스 화면을 함께 보여준다. 구상 단계에서부터 이렇게 영역을 넓게 잡았나.

단순한 지출 기록을 넘어 가족사와 한국 현대사, 세계의 흐름까지 짚으며 전체를 조망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사건을 다루려고 했다. 하지만 애초에 염두에 둔 90분 내외의 러닝타임을 초과할 것같았고, 이야기가 혼잡해질 우려도 있어 굵직한 사건들로만 추렸다. ‘이때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면서 자료 조사하는 과정이 재밌었다.

- 영화를 본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영화가 준 정보를 모아 어머니의 삶을 거처 중심으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1940년 진주에서 육남매의 장녀로 태어나 21살에 서울로 이사했고, 흑석동과 이태원을 거쳐 삼청동에서 30년간 사시다 전주로 오셨다.

진주에서 가장 부잣집 딸이셨던 어머니가 옆 마을의 가장 똑똑한 청년인 아버지와 결혼해 서울로 오셨다. 미군부대에서 일한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많이 다니셨다. 파주, 오산, 평택에도 계셨고, 1985년에 2950만원을 주고 산 삼청동 한옥에서 오래 사시다가 아들이 사는 전주 아파트로 오시게 된 거다.

- 영화에서 간략히 소개된 어머니의 가계부를 발견한 그날 밤에 대해 자세히 들려준다면.

장롱에서 ‘이게 뭐지’ 하며 가계부들을 꺼냈다. 먼저 내가 태어난 해의 가계부를 찾아 내 생일에 무엇이 적혔는지 봤다. 아무래도 그게 제일 궁금하니까. 1972년 3월1일 지출 항목에는 미역 400원, 돼지고기 150원, 기저귀로 쓸 천 등이 적혀 있었다. 누가 봐도 아이가 태어난 집의 하루였다. 다음 장으로 넘기니내 이름을 2500원 주고 지으셨더라. 각종 아기 약도 사셨고, ‘택이가 밤에 아파서 고생했다’ 같은 일기 아닌 일기도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글 아래에 그 문장이 있었다.

- ‘괜한 일로 마음이 괴롭구나. 왜 여자로 태어났을까. 원망스럽구나’라는 글귀를 읽으며 “내가 모르던 어머니의 모습”을 느꼈고, 그 감정이 카메라를 들게 한 계기가 됐다고.

아들들 대부분이 그럴 텐데, 어머니도 여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엄마는 그냥 엄마인 거다. 귀염을 떨며 집안 분위기를 화목하게 하는 막내아들답게 어머니와 사이가 좋았음에도 모자 관계는 모녀 사이만큼 가까울 수 없는 것 같다. 철 들 무렵인 10살쯤부터 내게 어머니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분란 많은 집안의 큰며느리로서 싫은 소리 한번 안 하고, 누가 돈이 없다고 하면 없는 살림에도 돈을 쥐여주면서 온갖 집안일을 해결하셨다. 한번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분이 이제는 치매로 우울감을 느끼고 무기력한 모습을 내비치신다. 그 어떤 모습에서도 여자인 적이 없던 어머니가 그 글귀 안에서는 여인으로 존재했다. 내게는 충격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었다. 그 뒤로도 일 때문에 떨어져 사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 삶에 대한 의문과 걱정 등어머니의 속마음을 가계부 곳곳에서 발견했다. 나를 당황하게 하고 무언가를 깨닫게 한 이 기록들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충격을 준 글귀를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어머니에게 직접 묻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어머니가 답변을 머뭇거리는 모습까지만 담겼다. 답하지 않은 건가, 아니면 의도적으로 답변을 넣지 않은 건가.

실제로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조금 더 묻긴 했는데 다른 이야기로 돌리시더라. 그래서 그렇게밖에 넣을 수가 없었다. 여전히 어머니는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도, 힘들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작업하면서 어머니의 그런 면을 더 확실하게 알게 돼 답변을 밀어붙이지 않았다.

- 엔딩크레딧에 ‘가계부 채록’ 파트가 있다. 채록이 본격적인 제작의 첫 단계였나.

그렇다. 우선 종이 기록을 디지털화해야 무엇이든 시작할 수있으니까. 가르치는 학생 중 이 작업에 관심 있어 하는 학생들을 고용해 일일이 타자로 옮겼다. 다행히 가계부는 시간순이니 타임라인을 따로 정리할 필요는 없었다. 전체 내용을 훑으면서내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들을 골라냈다. 그렇게 추리니 얼추 뼈대가 나왔다. 채록본 작업은 5일밖에 안 걸렸고 어려울 것도 없었다. 문제는 가진 게 텍스트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걸로는 보여줘야 하는 매체인 영화를 만들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진짜 고민이 시작됐다.

- 텍스트만으로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고민은 어떻게 풀었나.

내가 가진 게 또 뭐가 있나 둘러보니 수십권의 가계부가 있었다. 해마다 표지 디자인이 다르니 그걸 활용하기도 하고, 촬영 각도를 달리하기도 했다. 가계부를 띠처럼 늘어놓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시간이 흐르고, 반대로 이동하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식의 장치도 만들었다. 최대한 다양한 그림을 만들려고 했다.

- 어머니가 다닌 당시 국민학교 등 어머니에게 중요한 장소를 부모님과 직접 찾아간 것도 해결 방법 중 하나였겠다.

방문을 미리 계획한 건 아니었다. 부모님이 바깥바람을 쐬야 하니까 평소 여길 가볼까, 저길 가볼까 제안하는 편인데, 그러다 영화에 쓸 만한 곳에 가게 되면 카메라를 들고 갔다. 살다 보면옛 장소를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영화에서 빠진 장면 중에 외할아버지 묘소에 간 장면이 있다. 그날 내려오면서 어머니가 “우리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봐서 너무 즐거웠다”고 하시더라. 묘소를 오가는 부분이 너무 길어서 뺐는데, 그 말이 가슴을 쳤다.

- 영화 마지막에 어머니가 “힘든 것도 없었고, 재밌었다”고 말하는 대사도 곡절 많은 삶을 겪어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처럼 들려 감흥이 컸다.

나도 좋아하는 대사다. “엄마, 사는 게 어땠나?”라는 내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어머니가 왜 그토록 꾸준히 기록하셨을까 고민한 적이 있다. 생각하다 보니 팔만대장경을 만든 사람들의 마음까지 이해되더라. 몽골군이 침입한 상황에서 목판에 글자를 새긴 건 그 행위에 의지해 버텨보려 한 게 아니었을까. 가계부를 1년쯤 쓰셨을 때 어머니는 이미 아셨을 거다. 우리집 자금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말이다. 그런데도 47년을 꼬박 쓰신 건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일이 삶의 원동력이 되어준 게 아닐까 싶다. 가계부가 불안한 삶 속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추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고.

- 왜 가계부를 쓰셨는지 직접 묻지는 않았나.

물었는데 “넌 영화 찍어서 뭐하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경상도 할머니는 절대 속얘기를 안 한다. (웃음)

- <어머니의 가계부> 작업에 5~6년이 걸렸다. 지금은 차기작에 들어갔다고. 어떤 내용인가.

음반기획사 동아기획에 관한 방대한 음악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다. 꿈이 없던 중학생 시절 내게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를 음악으로 전해준 들국화, 김현식 같은 우상들의 이야기와 한국 공연 문화 전반을 다루게 될 것 같다. 작업할수록 영화인으로서 나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에 관심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가 늘 궁금하다. 앞으로도 이 궁금증을 따라가는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

가계부를 영화로 만드는 법

사진제공 성승택 감독

성승택 감독은 가계부가 주인공인 영화의 시각적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팝업북을 활용했다. “가족사진과 직접 촬영한 사진 등을 오려 입체적으로 배치한 뒤 접사렌즈로 하나하나 촬영하고, 이를 모션그래픽 작업을 통해 3D로 구현했다.” 그의 기억 속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의 모습도 이처럼 특별한 방식으로 영화에 담겼다. “내가 20대 초반이던 여름, 학원비를 내러 오신 어머니와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었다. 외식이란 게 거의 없던 시대니까 어색하게 먹고 각자 헤어졌는데, 햇살을 받으며 가로수가 쫙 뻗은 충정로를 걸어가던 어머니의 뒷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