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에 슬픈 소식들이 실려온다. 어떤 우연은 지나치게 정교해서 누군가 써놓은 이야기 같다. 최불암과 패트릭 스튜어트, 한번도 같은 작품에 출연한 적 없는 두 배우가 하루 사이에 나란히 세상을 떠났다. 한 사람은 1959년 한국에서 연극 <햄릿>으로, 다른한 사람은 같은 해 영국 브리스톨의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했고 1967년에는 나란히 텔레비전에 처음 얼굴을 비췄다. 사는 곳도 쓰는 말도 달랐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수사반장>의 박 반장과 <전원일기>의 김 회장, <스타트렉>의 피카드 함장과 <엑스맨>의 자비에 교수는 시절을 초월하는 캐릭터들이다. 이제 두 사람의 시대가 황혼 너머로 저물었지만 화면 속 반장은 여전히 범인을 쫓고, 함장은 여전히 다음 항로를 고민한다. 화면에 불이 들어올 때마다 거기엔 우리가 오래 믿고 기대어온 어른의 얼굴이 있다.
두 배우의 부고를 듣고 문득 두편의 영화가 뇌리를 스쳤다. 먼저 <시네마 천국>(1988)의 마지막 장면.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토토는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을 돌리니 오래전 검열로 잘려 나간 키스 장면들이 하나둘 이어진다. 이미 세상을 떠난 알프레도의 마지막 선물 속에서 서로 다른 영화 속 연인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때마다 영화는 토토의 천국이 되어 우리 곁에서 함께 울고 웃는다. 이윽고내 머릿속에서 <시네마 천국>의 화면 위로 <바빌론>(2022) 속 한 대사가 오버랩된다. 유성영화가 밀려오며 한물간 스타가 된잭(브래드 피트)에게 칼럼니스트 엘리노어(진 스마트)는 냉정하게 말한다. 당신의 시대는 끝났다고. 이어 덧붙이는 질투 어린 찬사의 말. “50년 후 태어난 아이는 화면에 깜박이는 당신의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될 거야. 그 아이가 첫숨을 쉬기 전에 이미 당신이 마지막 숨을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당신을 친구처럼 안다고 느낄 거야. 당신의 시대는 끝났지만 당신은 천사와 유령과 함께 영원을 누리게 될 거야.”
이별은 관계의 끝일까. 예전에는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했다.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고 새로운 기억을 만들 수 없다면 관계도 거기서 멈춘다고 여겼다. 나이가 들수록, 아니 영화를 볼수록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떠난 사람과의 관계는 남겨진 사람 안에서 계속 자란다. 그가 했던 말의 뜻을 뒤늦게 알아차리기도 하고, 무심히 지나쳤던 표정을 새삼 발견할 수도 있다. 키스 장면을 이어 붙인 필름 앞에서 토토가 그랬듯이, 선망과 애잔함이 섞인 엘리노어의 목소리가 알려주었듯이, 사람은 떠나도 그가 남긴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영상매체는 지나간 시간을 넣어두는 기록의 상자가 아니라 다음 만남을 위해 열어두는 기억의 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그 화면을 다시 틀 때마다, 우리는 현재가 되어 다시 만난다.
그러고 보니 이번호 특집도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다. 극영화가 배우의 얼굴을 남긴다면 다큐멘터리는 실제 사람의 목소리와 싸움을 남긴다. 이일하 감독의 <호루몽>은 일본 우익 방송의 가짜뉴스에 맞서 싸워 이긴 재일 코리안 3세 신숙옥과 그 집안 세 세대 여성의 기억을 따라간다. 김일란 감독의 <에디 앨리스: 테이크>는 두 트랜스 여성 에디와 앨리스가 저마다의 속도로 자기 삶을 건너가는 시간을 기록했다. 때마침 1989년 여름 서울 대흥동의방 한칸에서 시작한 한국 첫 여성주의 영화 집단, 변영주와 김소영 감독 등이 함께했던 바리터를 기억하는 전시도 열린다. 1990년 그들이 만든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가 30여년 만에 젊은 감독들의 신작과 나란히 스크린에 걸릴 예정이다. 영화가 된 만남, 기록이 된 외침들을 마주하기 위해 오늘도 어딘가 스크린에 불이 켜진다. 그 아련한 불빛을 지면 위에 살포시 비추어 독자 여러분께 띄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