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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ITUARY] 함장에 앉은 황제, 배우 패트릭 스튜어트(1940~2026)

사진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SF 팬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피카드 함장과 자비에 교수, <스타트렉>과 <엑스맨> 시리즈의 배우 패트릭 스튜어트가 세상을 떠났 다. 향년 86살. 지난 10월28일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그의 임종을 지켜본 유족은 공식 성명을 통해 알츠하이머병과 루이소체치매를 앓았던 스튜어트의 투병 생활을 “짧고 가슴 아픈 여정”이었다고 표현했다.

스튜어트는 대중의 기억 속에서 20세기 SF를 대표하는 <스타트렉> 시리즈의 지혜 로운 장뤼크 피카드 함장이자, <엑스맨> 프랜차이즈의 자애로운 프로페서X, 찰스 자비에 교수로 40년 이상을 자리했다. 그러한 경력 때문인지 그는 종종 자신이 로런스 올리비에상을 두 차례나 수상하고 토니상, 에미상,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올랐던 셰익스피어 연극계의 유망주였다는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했다. 한번은 <스타트렉> 시리즈의 상징적인 배우 윌리엄 샤트너가 만든 다큐멘터리 <캡틴스>(2011) 에 출연해서는 아주 진지한 태도로, “만약 오늘밤 내 삶이 멈춘다면, 나는 <스타트렉>의 배우로 알려질 것이다. 나는 셰익스피어 연극의 맥베스도, 리어왕도 아닌, 피카드로 남을 것이다. 나에겐 그 사실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라고 말한 적도 있을 정도다. 배우 인생을 뒤바 꾸게 해준 캐릭터 피카드 함장을 향한 스튜어트의 애정은 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패트릭 스튜어트의 연기 인생을 반추할때 반드시 거론되어야 할 동료들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열렬한 찬사를 더했다. 20년 넘는 세월을 같은 시리즈에서 동고동락한 <엑스맨>의 울버린, 휴 잭맨은 “무대와 스크린의 거장, 엄청난 친구이자 사람. 나는 그에게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다. 평생토록 당신을 그리워할 것”이라며 그를 추모했고, 마블 스튜디오 역시 공식 성명을 통해 “탁월한 우아함, 지성, 인간애로 찰스 자비에 교수를 생생하게 살려”낸 배우이자, “독보적인 재능을 가진 너그러운 협력자, 진정한 신사”라며 그의 열정 가득했던 삶을 기렸다. 스튜어트의 삶에서 특히 빼놓을 수없는 동료 배우인 이언 매켈런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덕분에 의지할 수 있고, 감탄할 수 있으며, 내 경우에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라며 스튜어트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패트릭 스튜어트와 이언 매켈런은 오랫 동안 영화와 연극무대를 누빈 동료 사이였다. 매켈런은 젊은 시절의 스튜어트가 황당무계한 SF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연극계를 떠나 할리우드로 향하겠다고 했을 때, 그 선택을 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매켈런은 훗날 스튜어트의 강력한 추천으로 <엑스맨> 시리즈의 매그니토, 에릭 렌셔를 연기하며 영화에서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두 배우는 현실에서의 관계와는 정반대로 대척점에 선 매그니토와 자비에 교수를 각각 연기하면서 수십년에 걸친 진짜 우정을 영화 역사에 새겨넣었다. 매켈런은 또한, 2013년 스튜어트가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릴 때주례를 서기도 했다. 스튜어트는 “솔직히,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내 아내도 그를 사랑하고 있으니 괜찮다”라는 농담으로 둘 사이의 끈끈한 우정을 대중에게 과시하듯 알리기도 했다. 뮤턴트와 인간의 상생 관계를 바라보는 정치적 입장이 첨예하게 나뉘던 두 캐릭터의 존재감은 여전히 <엑스맨> 프랜차이즈의 거대한 기둥으로 회자되고 있다.

셰익스피어에서 스페이스 오페라까지

패트릭 스튜어트는 어두운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1940년 영국 요크셔 미어필드에서 군인 아버지와 직조 공장 노동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유년 시절 기억은 폭력적인 아버지와 학대받는 어머니의 아픈 모습으로 가득했다. 그가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연기였다.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단원이 되면서 본격적인 연극배우의 길로 들어선 그는, 삼십대가 되면서 할리우드로 진출했다. 사실 그때만 하더라도 업계에서는 그를 그저 셰익스피어 연극 출신의 무명 배우 정도로만 평가하는 수준이었다. <BBC>의 TV시리즈에 주로 출연 하거나, 몇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얼굴을 알렸지만 대중에게 각인된 캐릭터는 별로 없었다. 그나마 지금까지 회자되는 건 그가 조연으로 출연한 존 부어먼의 <엑스칼리버>(1981) 속 레오데그란스 왕, 데이비드 린치의 <듄>(1984) 속거니 할렉, 토브 후퍼의 SF 호러 <라이프 포스>(1985)의 암스트롱 박사 정도였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그가 배우들을 상대로 셰익스피어 연극 강의를 하는 모습을 우연히 본 캐스팅 디렉터가 <스타트렉> 시리즈의 원작자 진 로든베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튜디오를 강하게 설득했다. 그는 오리지널 시리즈의 부활을 알리는 <스타트렉: 넥스트 제너레이션>(1987~94)의 총 7개 시즌과 4편의 스핀오프 극장판 <스타트렉7 넥서스 트랙> (1994), <스타트렉8 퍼스트 콘택트>(1996), <스타트렉9 최후의 반격>(1998), <스타트렉 10 네메시스>(2002)에서 피카드 함장을 연기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촉망 받는 연극배우에서 할리우드 SF 시리즈의 주인공이 된 것에 대해 훗날 이렇게 말한 적 있다.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왕, 황제, 왕자, 비극적 영웅들을 연기하며 보낸 세월은 엔터프라이즈호의 함장석에 앉기 위한 준비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이야 배우들이 블루스크린 앞에서 코스튬을 입고 연기하는 게 익숙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우주인’ 연기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스튜어트의 피카드 함장은 침착함과 놀라운 리더십을 발휘하는 캐릭터로 관객에게 각인되었다. 극 중 대사인 “돌입하라”(Engage!), “그렇게 하라”(Make it so)는 단숨에 유행어가 되었다.

피카드 함장의 성공 이후 그는 <엑스맨> 시리즈를 통해 또다시 파격적인 도전에 성공했다. 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지구상의 모든 콘텐 츠를 통틀어도 찰스 자비에 교수만큼 인간을 사랑하고 평화와 공존을 노래한 캐릭터는 없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비전이 믿음직스러워 출연을 결정했다는 <엑스맨>(2000)에서 그가 처음 등장해 뱉는 대사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말이었다. 60년 넘는 배우 경력을 마무리하는 그의 유작은 올겨울 개봉할 <어벤져스: 둠스데이>가 될 예정이다. 패트릭 스튜어트는 21세기 영화산업의 흐름을 바꿔놓은 주역들, 어벤져스와 엑스맨의 세계관이 통합되는 것을 기어이 마지막으로 목도하고 멀티버스 너머로 떠난 배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