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국내의 대중음악계를 결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말이 있다면 바로 ‘하드코어’일 것이다. 그 중심에는 4년 만에 돌아온 서태지와 지난 6월에 있었던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의 내한공연이 있다. 특히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은 밴드의 절정기에 공연을 가져 국내 하드코어 팬들의 큰 관심을 끌었는데, 10월에 이들은 또 하나의 뉴스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바로 밴드의 주축이었던 보컬리스트 잭 데 라 로샤(Zack de la Rocha)의 밴드 탈퇴 소식이 그것이다. 이어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12월에 우리 앞에 한장의 음반을 던져주었다.릭 루빈이 프로듀스를 맡은 라는 이름의 이 음반은 12곡의 수록곡을 커버곡으로 채우고 있다. 마르크스를 다시 불러오고 체 게바라 유행을 이끌어낸, 그래서 항상 ‘정치의 문제’가 따라다니는 밴드지만 사운드는 정통 록의 어법을 충실히 지키는 그들이라 커버 앨범 기획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그
마르크스 퇴장, 롤링스톤스 등장
-
몇번을 죽고 다시 태어난대도결국 진정한 사랑은 단 한번뿐이라고 합니다.대부분의 사람은,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는 심장을 지녔기 때문이라죠.인생의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대도,그 아래는 끝이 아닐 거라고 당신이 말했습니다.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당신을 사랑합니다…(인우의 편지 중에서)비오는 날, 자신의 우산 속으로 뛰어든 한 여자만을 사랑하게 된 남자. 그리고 이별과 재회.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는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든지 동일한 사랑을 하는 ‘솔 메이트’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80년대 초 대학 캠퍼스를 무대로 이뤄지는 인우(이병헌)와 태희(이은주)의 사랑은 군에 입대하는 인우를 만나러 오다 교통사고로 죽은 태희로 인해 끝이 나는 듯 보이지만, 여기서 영화는 2000년대로 번지점프(?)를 하며, 상상을 초월한 사랑이 시작된다. 이부분은 영화사쪽에서 극도의 보안을 유지할 정도로 반전의 강도가 대
내겐 하나뿐인 당신
-
영화읽기/ 프랑스영화 이야기제목:부제: 장 르누아르 (2)발문:발문:임재철/ 영화평론가·<필름 컬쳐> 주간중년의 회사원인 모리스 르그랑(미셀 시몽)은 집에서는 공처가이고 회사에서는 무능한데다 별로 특징도 없는 인물이다. 그의 유일한 낙은 일요일에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다. 거리에서 만난 룰루라는 젊은 여인에게 끌리면서 열정의 노예가 된 그는 자신의 사회적 배경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살인이라는 죄를 저지르고 만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그의 죄를 룰루의 포주이자 연인인 데데가 짊어지게 되고 르그랑은 대신에 부르주아적 삶에서 벗어나 거리의 부랑자가 된다.이러한 내용을 가진 르누아르의 <암캐>는 스트로하임, 더 나아가서는 에밀 졸라에게 원형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는 현실의 냉혹한 관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사회적으로 선과 악이라는 구분이 있을 수 있겠지만 자세히 관찰했을 때 우리의 흥미를 끌지 않는 인물은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그는 주연격인 세명의 인물들을
영화읽기/프랑스영화
-
“누구의 인생에든 의혹은 있는 거란다. 무엇을 찾든간에.”(<와이드 어웨이크> 중에서)
19991년 11월, 뉴욕대 학생이던 나이트 샤말란은 대학 내의 한 암실에서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르는 자신의 졸업작품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22살이 될 그는 어둠 속에 앉아 피로와 공허감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뉴욕대학 영화과의 유일한 인도인 학생이었다. 또한 자신이 그토록 보고 싶어하는 가족들이 있는 필라델피아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받을 학위가 현실세계에서는 아무 쓸모도 없다는 것 역시 직감하고 있었다. 4년 전, 의사였던 부모의 권유를 마다하고 샤말란은 필라델피아 의과대학의 전액 장학생 자리를 거절했던 터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이 아직 이루어 놓은 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꼈다. 그날 저녁, 나이트 샤말란은 자리에 앉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고 오랫동안 느끼고 있었던, 이방인으로 미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관한 시나리오를 쓰기로 결
<식스 센스>의 쌍생아
-
-
TTL - 제작연도 2000년 광고주 SK텔레콤 제품명 TTL 대행사 TBWA, 화이트 제작사 픽스필름(박준원 감독)
드라마 -제작연도 2000년 광고주 한통프리텔 제품명 드라마 대행사 웰콤 제작사 유레카(김규환 감독)
2000년의 끝자락, 소비자의 시선을 강렬하게 붙잡고 있는 두 광고가 있다. 이동통신브랜드인 TTL CF와 드라마 CF. 최근 두 광고가 나란히 전파를 타는 걸 보았는데 제법 흥미로웠다. 솔직히 머리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예뻐서 참 좋겠다’였다. 정말이지 광고는 사람의 외형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마술사 같은 매체임에 분명하다.
TTL 광고의 임은경은 마치 ‘작은 이영애’ 같고 또 드라마 광고의 이영애는 ‘큰 임은경’ 같다. 두 사람은 웬만한 얼굴형과 얼굴 크기로는 소화하지 못할, 그러나 정말 흉내내고 싶은 커트형 머리 모양을 비슷하게 취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더욱 재미있는 사항은 나이 차가 족히 열살은 나는 이들 두 사람이 각기 세대별 욕망을 대변하
1823-2030, 세대별 욕망 대변하는 닮은꼴 모델들
-
“수쥬강을 가만히 지켜보다보면, 강은 당신에게 낯선 표정의 사람들을 보여줄 것이다. 그들의 삶과 그들의 고통, 운이 좋다면 그들의 사랑까지….” 중국 상하이의 동서를 가르는 수쥬강, 그곳엔 인어가 산다. 비디오 기사인 나는 ‘Happy’라는 술집에서 ‘인어쇼’를 하는 메메이(주신)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메메이는 수쥬강에 떠도는 인어의 전설을 이야기한다. 전설 속의 오토바이 배달부 마르다는 그의 연인 무단을 배신하게 되었고 무단은 그 충격으로 “인어가 되어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수쥬강에 몸을 던진다. 그날 이후 마르다는 무단을 찾아 헤맨다. 메메이는 나에게 “내가 만약 너를 떠난다면 마르다처럼 나를 찾을 거야?”하고 습관처럼 묻는다. 어느 날 나와 메메이를 마르다가 찾아온다. 그리고 메메이를 향해 외친다. “무단, 날 용서해줘.
전설의 무단은 메메이일까? 나의 사랑이 혹 전설은 아닐까? 시종일관 ‘나’의 눈을 대신하는 비디오 렌즈를 통해 러우예 감독은 현실에서
인어가 되어 돌아올게요
-
한해의 마지막인 12월도 어느새 반을 넘긴 지난 12월15일 금요일 밤. 매서운 추위를 무릅쓰고 일단의 무리들이 인적 끊긴 심야의 다운타운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자정을 재촉하는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이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이스트빌리지 남단의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 실험영화의 산실로 오랜 세월 동안 대안적 영상 문화의 창구 역할을 해온 이곳 앤솔로지에서 뉴욕 개봉을 앞둔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Nowhere To Hide)의 특별 시사회가 이루어졌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시작한 이날 행사는 주말의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보조석과 통로까지 가득 메운 <인정사정…>의 ‘숭배자’들로 인해 시종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이 됐다. 밖에서는 상당수의 관객이 표를 구하지 못해 그냥 돌아갔다는 후문이다.
관객의 환호를 받으며 등장한 이명세 감독은 “유서 깊은 앤솔로지 극장에서 이렇게 시사회를 가지게 돼 기쁘다”며 간단히 인사의 말을 전했고, 곧이어 열렬한
이명세 감독에게 듣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뉴욕 개봉기
-
1895년 12월28일, 프랑스 파리에 있는그랑 카페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대중에게 영화를 상영했다. 세계영화사에서는 이날을 ‘영화 탄생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얘기다. 그런데 뤼미에르 형제는 ‘왜?’ 영화를 상영했으며, 그들이 상영한 영화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뤼미에르 형제는 돈을 벌기 위해영화를 상영했다. 그들은 1프랑의 입장료를 받고 영화를 보여주었고, 그들이 보여준 영상은 ‘멀리서 달려오는 기관차를 찍은 것’이었다. 기차를 본 적이 전무한 혹은 거의 없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돈이 아깝지 않은 스펙타클한 영상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 영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기대하는 첫 번째는 ‘볼거리’다. 스토리나 테마는 그 다음의 문제다.
이런 취향 때문인지 내가 가장 즐겨보는 영화는 ‘액션영화’다. 중학교 시절 이후로 ‘
볼거리, 이 정도는 되야지! <매트릭스>
-
박하사탕과 춤을, JSA와 축배를!
2000년 한국영화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영진위가 12월3일까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은 32.9%. 제작편수는 56편. 급격한 신장세를 보인 지난해 점유율 35.8%에는 못 미치지만 ‘<쉬리> 같은 영화가 또 나오겠어’ 하는 우려를 잠재울 수치다. 올해의 1등공신은 <쉬리>의 흥행기록을 바짝 뒤쫓고 있는 <공동경비구역 JSA>. 아직 냉전적 사고가 뿌리깊은 한반도에서 이 영화는 대중적 재미와 사회적 의미를 동시에 낚은 보기드문 예로 남게 됐다.
<춘향뎐>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처음 입성하고 <섬>이 베니스영화제에 나가고 <쉬리>가 일본에서 흥행하는 등 2000년은 한국영화의 해외진출에 청신호를 밝힌 해로도 기록될 전망이다.
<씨네21>은 양적, 질적 성장을 보인 올해 한국영화계를 정리하며 <씨네21>에 기고하는 영화평론가와 기
2000년 한국영화 결산 [1]
-
감독도 등수가 있나…
내가 1등을 했다는 이야기인데, 감독의 등수라는 게 어디 있겠나… 면구스러울 따름이다. 벌써 <박하사탕>을 개봉한 지 1년이 됐다. 상도 많이 타겠다고? 그것들은 내게 상이라기보다 트로피다. 그건 많다. 시간이 참 속절없이 빠르다. 영화를 만든 동기도 어떤 의미에서는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는데, 나 자신도 시간을 헛되게 보내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라는 것은 이를테면 거울이다. 현실에서 일탈하기 위한 만화경 같은 영화가 있는 반면에 우리 삶이나 사회를 반영하는 영화가 있다. 내게 영화는 후자의 의미다. 드러나는 것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도 비추는 그런 영화. <박하사탕>이 얼마나 투명한 거울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과 우리의 내면을 비춰보고 싶었다. 또 나는 우리가 순수함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삶에 있어 순수함이란 뭐냐. 아주 소박하게 얘기하자면 수줍음 같은 것이라고
2000년 한국영화 결산 [2] - 올해의 감독
-
80년 광주, 20년 만의 귀환
1. <박하사탕>
“내게 최고라는 느낌을 준 영화는 <박하사탕>뿐이었다. 사탕을 깨물수록 입안엔 피가 흥건히 고였다. 그 쓰라림 덕분에 홍등가의 불을 지피던 80년대 한국영화의 부끄러움을 잊을 수 있었다.”(박평식) 1월1일 개봉, 새 밀레니엄의 시작을 알린 <박하사탕>은 상징적이게도 덧나고 흉져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20년 전 광주의 상흔을 직시하는 영화였다.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절규로 시작된 과거로의 여행은 한국사회를 만들어온 흉측한 집단무의식의 정체를 고발한다. 타락한 도시에 관한 누아르 <초록물고기>로 데뷔한 이창동 감독은 두 번째 영화에서 아픔이 잉태된 근원으로 망설임 없이 다가섰고, 80년대의 자식 세대가 짊어질 부채감을 상기시켰다. 이런 시도가 처음은 아니지만 <박하사탕>처럼 우아하고 섬세한 표현이 등장한 건 전례에 없다. “문학과 영화와 역사, 이 세변의 꼭지점이 이뤄내는
2000년 한국영화 결산 [3] - 올해의 한국영화 베스트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