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예술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삶의 여러 요소보다 예술을 우선한 적이 없습니다… 예술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예술을 통해 연결된 덕분에 나는 동료들과 같은 자리에 서서, 나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술은 사람들의 기쁨과 고통을 담아냄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매개체입니다.”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명사들의 통찰은 그 자체로도 빛나지만 어느 날 문득 내게 와닿아 의미가 되는, 연결의 순간이 있다. 요즘 연이어 터지는 사건, 사고를 마주하며 심란함에 빠져들 때, 잊고 있던 알베르 카뮈의 말이 희미한 손전등처럼 길을 비춘다.
‘어느 날 문득’이란 말을 참 좋아한다. 인생은 가까이서 볼 땐 우연의 연속이지만 긴 호흡으로 되돌아보면 그 모든 우연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을 필연 속에 있다. 뜬금없이 알베르 카뮈의 말이 떠올랐던 건 최근 연이어 만난 영화들 덕분이기도 하다. 미야케 쇼 감독의 <여행과 나날>은 현미경처럼 밀착해 있던 일상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을 여행이란 거리두기를 통해 새삼 환기시킨다. 슬럼프에 빠진 작가가 여행의 나날을 회상하는 이 영화는 우연 같은 필연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아무 의미 없어 보였던 어떤 순간들이 시간의 축복을 받아, 먼 훗날 되돌아볼 때 영화로운 장면들로 피어난다. 그 연결의 순간을 목격한다는 건 실로 경이롭다.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고, 지워졌던 기억들이 연결되어 ‘오늘’이라는 점으로 수렴되는 기쁨.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의 점으로 표현된 예술은 모든 것, 모든 순간, 모든 존재와 이어질 준비를 마친다. 알베르 카뮈가 말했던 ‘연결’을 실감한다.
어느 날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연결되지 않는 영화가 없다. 올해 9월 <트론: 아레스>로 <씨네21> 커버 인터뷰를 했던 그레타 리 배우는 “영화는 모두의 것이고, 모두와 연결될 수 있다는 진리를 <패스트 라이브즈>가 일깨워줬다”고 고백했다. 나는 이 경험이 <트론: 아레스>에도 해당할 것이라 믿는다. <트론: 아레스>는 디지털 세계에 속한 존재와 물리 세계에 속한 존재가 만나 서로를 감화시켜나가는 이야기다. 사전적으로 ‘좋은 영향을 받아 생각이나 감정이 바람직하게 변화함’을 뜻하는 감화는, 가르침이 강조되는 교화(敎化)나 동일한 상태가 중요한 동화(同化)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감화에는 ‘너를 기다려주는 시간’이 포함된다. 우연 같은 뜻밖의 연결 후 상대가 스스로 변화할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는 시선. 너를 한 사람의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겠다는 다짐의 온도 속에서 필연의 의지를 느낀다.
겨울과 연말, 마음이 쓸쓸해진 탓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부쩍 감화될 만한 영화들이 늘었다. 내내 흐뭇한 아빠 미소를 지으며 <주토피아 2>를 봤다가, <사운드 오브 폴링>을 보며 고요한 쓸쓸함 속으로 침잠한 뒤 <슈퍼 해피 포에버>를 보며 은근한 위안을 받았다. 그렇게 각각의 예술들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외부로부터 내부까지 우리를 어떻게 연결시킬지 지도를 그려본다. 앙상한 연결 속에는 여전히 빈칸이 가득하다. 2024년 12월3일에서 꼬박 1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민주주의가 비상계엄을 극복한 지난 1년을 영화라는 매체는 어떻게 기록했을지 궁금해졌다. 앞으로 쌓여갈 기억을 위해 지난 1년의 궤적을 정리해보았다. 타자에서 공통체로, 어제에서 내일로, 우리는 영화를 통해 연결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