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진 감독은 2020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내언니전지현과 나>를 통해 지금껏 영화로 만나긴 힘들었던 게임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다루었고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감독이 온라인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일랜시아>의 오래된 유저로 직접 등장해 하나의 게임이 누군가의 세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례를 적극적으로 보여준 덕에, 2000년대 무렵 PC 온라인게임에 문화적 향수를 느끼던 동시대의 관객들은 유년 시절의 그리운 추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박윤진 감독은 12월29일 OTT 플랫폼에 공개될 <세이브 더 게임>3부작으로 다시금 게임의 세계를 파헤쳤고, 그 범위와 규모는 대한민국의 게임사 전반으로 한층 넓어졌다. 1부 <세이브 더 게임>은 패키지 게임을 중심으로 한 국내 1세대 게임산업의 태동기를, 2부 <온 더 라인>은 2000년대 한국 온라인게임의 전성기를, 3부 <굿게임(GG), 한국의 게이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제목 그대로 국내 프로게이머와 게이머들의 성향을 탐구하고 기록한 결과물이다. 한번이라도 게임의 즐거움을 느꼈던 이라면 이 이야기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 국내 게임 역사의 주요한 축이라 할 수 있는 넥슨재단이 제공한 작품이다.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넥슨 게임 <일랜시아>의 운영적 문제를 파고든 작품이었음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재회인데, 제작 배경은 어땠나.
넥슨과의 협업은 사실 우연이다. 영화 제작사에서 다큐멘터리 작가를 모집하기에 입사했고, 마침 담당하게 된 프로젝트가 지금의 <세이브 더 게임>이었다. 일을 진행하다 보니 연출까지 맡게 됐는데, 처음엔 ‘넥슨의 30주년을 기념해 국내 게임 30년사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라는 딱 한장짜리 기획안이 전부였기에 고민이 됐다. 솔직히 기대가 안되지 않나. 넥슨이 직접 만드는 게임 다큐멘터리라니. (웃음) 넥슨이 국내 게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긴 하지만, 작품이 특정 기업의 홍보 영상처럼 비치지 않기를 바랐다. 다행히 넥슨측에서도 이런 방향성에 동의해주었고, 이왕이면 한국의 게임 역사 전체를 제대로 다뤄보자는 목표가 생겼다.
- 1부 <세이브 더 게임>은 국내에 컴퓨터가 막 보급되던 1980~90년대, 가내수공업으로 게임을 만들던 1세대 개발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시점에 먼저 주목한 이유는.
국내 게임산업의 역사를 조사하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필로 코딩하며 게임을 만들었다는 개발자들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남아 있었지만, 막상 잘 정리된 인터뷰나 자료는 드물었다. 이후 긴장된 마음으로 1세대 개발자들을 찾아뵀는데, 다들 너무 젊으셨다. (웃음) 자료 조사 땐 역사책에 나오는 분들로만 생각했는데 다들 그시절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SNS는커녕 개인 연락처도 없던 시절, 이들은 인터넷 검색도 없이 독학으로 게임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다른 개발자들과 교류할 수도 없었다. 대신 이들은 게임 잡지에 간간이 나오는 다른 게임들의 출시 소식을 보고 ‘아, 나만 이러고 있는 게 아니구나’를 느끼며 서로간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너무 감동적이었다. 연출자로서는 여러 영화적 형식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론 이들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잘 담아야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 전작이 완전한 게임 유저의 시선에서 펼쳐진 이야기라면 <세이브 더 게임>3부작은 앞서 말했듯 게임 개발자들이 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이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느꼈는지.
1세대 개발자들에겐 개발자라는 느낌을 잘 받지 못했다. (웃음) 이들이 PC통신의 게임 제작 동호회에 쓴 글이나 기록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직업인이라기보다는 스터디하는 학생들 같다는 인상이 강했다. 자신들도 개발자라는 호칭보다는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게임을 만든 유저로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 이후 온라인 시대를 이끈 2부 <온 더 라인>의 주역들에겐 아무래도 산업적인 질문을 많이 건네다 보니 좀더 개발자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다만 개발자와 유저를 완전히 나누긴 힘들었다. 예를 들어 게임 <마비노기>로 유명한 김동건 개발자도 인터뷰 때는 그저 게임을 좋아한 한명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생으로 돌아가더라. 이런 장면들이 너무 좋았고, 꼭 기록하고 싶었다.
- 작품을 보고 나니 동시대 젊은 개발자들은 어떤 성향을 지니고 있는지 궁금해지더라.
이 기획을 시작하고 나서 매년 <G-STAR>(국제 게임 전시회)에 갔다. 인디 게임 부스에서 학생들이나 인디 게임을 개발하는 분들을 만나고 인터뷰도 진행했다. <세이브 더 게임>기획엔 맞지 않아서 작품에 포함시키지는 않았다. 젊은 개발자들이 ‘정말 똑똑하다’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어린 학생들이 만든 이력서 검토 게임이 기억에 남는다. 플레이어가 사람들의 스펙을 보고 합격이나 불합격 도장을 찍는 방식인데, 지금 같은 취업난에서 우리가 사람을 뽑는 기준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었다고 하더라. 얼른 이런 인재들의 게임이 세상에 나오길 바란다.
- 2부 <온 더 라인>의 방향성이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하다. 연출자 본인이 직접 경험한 세대의 이야기인 만큼 어떤 정서를 표현할 것인지가 중요했을 것 같다.
기존에 밝혀진 사실적인 이야기들과 차별점을 두고 싶었다. 그 시대에 우리나라가 온라인게임으로 게임 강국이 됐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 않나. 게임 시장의 그래프가 수직상승하고 판교 게임 단지가 확 펼쳐지는, 흔한 그림은 원하지 않았다. 대신 그 시절에 한번이라도 온라인게임을 즐긴 사람들이 당시 좋았던 시절을 곱씹어보면서 게임이 우리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다.
- 게임이 감독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우선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게임, 특히 RPG 게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게임에서 배운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인간관계부터 경제관념,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나의 목표를 이룬다는 성취감까지, 현실에서 접하기 힘든 여러 경험을 게임 덕분에 하게 됐다. 세상을 보는 눈이 생겼다. 게임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을 배운다는 것이 예전에나 있던 낭만이라고 여기는 시선도 있지만, 요즘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정서나 목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최근엔 게임 <마비노기 모바일>을 열심히 하는 중인데, 길드에서 만난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친구들이 많다. 길드원끼리 자주 만나고 서로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게임 세계에서 사람들이 주고받는 감수성은 같다고 느낀다. <세이브 더 게임>을 만들며 곳간에 쌓아둔 게임 관련 자료들, 특히 1세대 개발자들의 이야기가 아직 너무 많이 남아 있다. 서비스를 종료한 게임들의 뒷얘기도 다뤄보고 싶고,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어떤 형식으로든 더 이어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