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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ITUARY] 영화 같은 삶, 삶이라는 영화, 한국영화의 산맥, 안성기(1952~2026)

배우 안성기가 향년 74살로 지난 1월5일 영면에 들었다. 투병 중에도 종종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기에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온 이별로 느껴진다. 고인은 언젠가부터 한국영화의 페르소나로 불렸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당연한 헌사였다. 그는 영화 제작자였던 부친 안화영씨와 친분이 있던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만 5살이었다. 마지막 작품이 된 <노량: 죽음의 바다>까지 포함하면 고인은 69년 동안 17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게다가 알려진 대로, 그는 TV드라마가 아닌 오직 영화 현장만을 고집하던 영화인이었다. 일생을 영화에 바친 그는, 말 그대로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물론 영화는 단지 그의 삶을 수식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는다. 배우 안성기에게 영화와 삶은 동의어에 가까운 것이었으리라.

한글을 깨우치기 전, 고인을 나의 아버지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외모가 꽤나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출근을 한다고 집을 나섰던 아버지의 얼굴이 신문에 크게 인쇄되어 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남부군>의 포스터였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도 ‘온몸에 흙도 묻어 있고, 이렇게 힘들게 돈을 벌어오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자랑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착각으로 판명되었지만, 그저 헛된 오해는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 영화의 기원은 증기를 내뿜는 기차가 아니라, 한 배우의 얼굴이 되었다. 훗날 나는 그가 국민 배우 안성기라는 것, 그리고 당시 그는 코리안 뉴웨이브의 최전선에 있었던 젊은 예술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인이 맡았던 숱한 배역들을 떠올려보면, 우리 모두에게 안성기라는 배우는 다양한 형태의 상(像)으로 머릿속에 맺힌 영화적 존재임이 분명하다. 나에겐 아버지였고 누군가에겐 친구였으며, 때로는 친숙한 이웃 아저씨였다가 엄숙한 국가가 되기도 했다. <바람불어 좋은 날>로 제19회 대종상영화제의 신인상을 받았던 그는 40여년 후인 2022년 같은 영화제에서 공로상을 수상한다. 광범위한 그의 필모그래피와 활동 시기를 되짚어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한 배우의 삶의 궤적과 한국영화사의 흔적을 동시에 감각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칠수와 만수>에서 만수가 바라보던 메마른 서울의 풍경과 <부러진 화살>의 김경호가 밟고 섰던 사법제도의 냉혹함, <라디오 스타>의 최곤(박중훈)과 박민수(안성기)가 재현한 잃어버린 시절의 향수 등 열거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고인은 한국영화사와 한국현대사라는 거대한 산맥을 묵묵히 거니는 예술가이자 수행자였다. 이제는 아득해져버린 한국영화 천만 관객의 시대를 열어젖힌 <실미도>에서 잊을 수 없는 연기로 각인된 고인은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배역의 크기와 상관없이 스크린에서 관객과 만났다. 그가 재현한 캐릭터들은 종종 애잔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지만, 그의 연기에서 발현되는 것은 초라함이 아니라 위풍당당함이었다. 배우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은 노화가 아니라 삶의 거친 풍파를 떳떳하게 견뎌낸 숭고함이 스며든 풍경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연기와 영화를 실제처럼 여기며 ‘국민 배우 안성기’라는 칭호를 붙였다. 그가 영화를 사랑한 만큼 관객들 역시 한국영화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그를 필요로 했다. 한국영화의 부흥기와 황금기를 회상할 때면 늘 언급되던 배우, 한국영화의 침체기와 위기를 반등시키기 위해서도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배우가 안성기였다. 실제로 고인은 정지영 감독과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인식과 제도의 개선을 주창하기도 하였다. 김기영, 한형모, 이장호, 박광수, 임권택, 배창호, 이명세, 강우석, 이준익. 분명 그의 삶을 상기하려 했는데도, 그와 호흡을 맞췄던 감독들의 이름들을 호명하다보면 또다시 한국영화의 결정적 장면들이 떠오른다. 반복하건대 그에게 있어 삶과 영화는 분리될 수 없는 동체였다.

2009년 1월 <월간 샘터>와의 인터뷰에서, 고인은 “배우에겐 나태함도, 끝도 있을 수 없다. 관객이 찾지 않으면 사라질 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부고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를 애도하는 중이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업로드되는 배우의 클로즈업 사진과 짧은 영상인데, 신기하게도 여기에는 중복되는 이미지들이 거의 없다. 최고작으로 꼽는 작품들도 제각각이다. 그가 출연한 170여편 영화 속 장면들이 차별 없이 고루 재생되고 있다. 고인의 말을 빌려와보자면, 관객들은 여전히 각자의 기억과 머릿속 스크린에서 ‘배우 안성기’를 기록하고 찾고 있다. 물론 착각이겠지만, 계속해서 그를 찾는다면 배우 안성기는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란 스크린의 환영을 믿어도 되는, 말하자면 착각이 용인되는 리얼리티의 예술이 아니었던가. 그를 사랑했던 관객들의 머릿속에서, 셀 수 없을 만큼의 회고전이 시작된 것 같다. 그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과 진중한 애도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안성기 배우를 되돌아보는 시간은 1541호 특집기사를 통해 이어질 예정이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