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안정된 땅 위엔 언제나 사람이 살고 있다, <리틀 아멜리> 메일리스 발라데, 리안 조 한 감독

메일리스 발라데, 리안 조 한(왼쪽부터).

- 영화 <리틀 아멜리>는 아멜리 노통브의 자전적 소설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에서 시작되었다. 원작 소설의 어떤 부분에서 영상화의 가능성을 발견했나.

메일리스 발라데 하루는 <캘러미티 제인>을 작업하는데 그때 리안이 말하더라.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을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그전까지 책을 읽어본 적 없던 터라 리안이 바로 내게 선물해줬다. 리안과 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마크 오스본 감독의 <어린왕자> 스토리보드를 작업하던 중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깊다는 공통분모를 발견한 것이다. 우리는 인물들에게 깊이를 부여하고 다가가고 싶어 한다. 어린 관객들을 가볍게 대하고 싶지 않다. 삶의 비극이나 트라우마처럼 어려운 주제라도 그것을 이해할 열쇠를 건네주고 싶다. 그런 점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은 인간 존재의 기초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세상을 처음 바라보는 순간부터 첫 트라우마를 경험할 때까지 유려하게 그려낸다. 철학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의 바이블 같았다. 2~3살의 어린 나이에 아멜리 특유의 독특한 시선이 좋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복잡한 시기까지 이어지는 일화가 흥미로웠다.

리안 조 한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을 처음 읽은 게 19살 때였다. 당시 나는 독서광은 아니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비디오게임 같은 대중문화에 관심이 컸다. 원작을 읽기 전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반딧불이의 묘>를 먼저 보았는데 이 작품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기도 했다. 자신을 신이라고 믿는 어린 아멜리, 아멜리와 유모 니시오와의 깊은 우정,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설정에 깊이 빠져들었다. 뭐랄까.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모든 요소가 한자리에 모인 것 같달까. 제일 처음 영상화된 장면으로 떠올린 부분은 아멜리가 바다를 가르던 장면이다. 원작 소설에서는 예수처럼 물 위를 걷지만, 나는 ‘예수처럼 걷기보다 모세처럼 바다를 가르는 편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아멜리의 눈으로 탄생한 사계절의 색깔들

- <리틀 아멜리>에서 눈에 띄는 큰 특징 중 하나는 생동감 넘치고 아름다운 사계절 표현이다.

메일리스 발라데 영화는 아멜리가 두살과 세살 사이에 겪는 일들을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계절 변화에 특히 신경을 썼다. 미술감독이자 공동 각본가인 에딘 노엘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계절의 구분, 계절이 바뀌는 흐름 그리고 빛의 변화가 작품에 녹아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의 방향이나 구조 역시 계절의 빛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설정했다. 1960년대 말 일본 전통가옥 내부의 빛, 주변 식생과 질감 등을 정확하기 표현하기 위해 방대한 사진 자료를 구했다. 계절은 아멜리가 감정적으로 겪는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이고,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노스탤지어의 중심축이다.

리안 조 한 각각의 계절이 그 시기의 아멜리가 겪는 감정 상태를 최대한 밀접하게 드러내도록 표현하고 싶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가을은 너무나 아름답고 색채가 풍부하지만 당시 아멜리가 겪고 있던 상실감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색감을 더 차분하고 무거운 톤으로 선택했다.

- .사계절 표현에 가장 공들였던 지점은 무엇인가. 기술적으로 가장 도움이 되었던 효과나 테크닉, 프로그램도 궁금하다.

메일리스 발라데 계절과 아멜리의 감정을 연결하는 것이다. 먼저 봄은 움직임이 자유로워지고 자연이 소생하는 시기다. 이때 아멜리는 가장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모든 감정을 최대로 느낀다. 기쁨, 발견, 새로운 만남이 가득한 구간이다. 니시오는 아멜리에게 봄날의 햇살 같은 존재다. 여름은 어린 시절 누구나 기억하는 길고도 뜨거운 시간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부모와의 휴가, 더위, 긴장감, 바닷가, 위험, 긴 자동차 여행, 늦은 일몰. 그리고 처음으로 삶의 의미와 죽음에 대해 질문이 생기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가을은 이상의 붕괴, 도취와 희열의 끝, 해체와 환멸에 가깝다. 이전까지 경험한 모든 것이 뒤집히고 기준점이 흔들리는 계절이다. 겨울은 고요함, 정지,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 시간으로 그렸다. 우리는 <사샤의 북극 대모험> <캘러미티 제인> 등에서 해온 것처럼 색면을 활용한 독특한 렌더링 방식을 활용했다. 이 방식은 인상주의적이라 계절적 풍경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낸 넓은 색면으로 하나의 패턴, 하나의 진동을 만들어내고 분필이나 마른 붓 같은 거친 질감을 더해 결과를 만들어낸다. 윤곽선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터치로 표현하는 방식은 전체적인 인상을 더 현실적으로 만든다. 빛이 인물과 배경을 자연스럽게 오가며 분리되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 특히 영화 속 채색과 컬러스코프가 무척 독특하다. 평소에도 채도가 낮은 색깔을 선택하는 편인가. 이러한 취향과 선호가 <리틀 아멜리>에 어떤 효과를 주었다고 평가하나.

메일리스 발라데 우리 색채 미술팀에 공을 돌리고 싶다. (웃음) 특히 컬러 스크립트를 담당한 두 아티스트, 쥐스틴 티보와 시몽 뒤몽소의 공이 크다. <리틀 아멜리>에서 색채는 아주 중요한 서사적 역할을 한다. 색은 아멜리의 감정과 성장 단계를 감각적으로 보여주고, 그가 세상을 어떻게 인지하는지 알려준다. 영화는 아멜리의 지각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화면 전체가 그의 감정으로부터 영향받는다. 그래서 초반에는 화면이 과다 노출돼 있고 색조도 옅다. 영화는 총 49개의 테마별 시퀀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시퀀스는 고유한 색조와 감정을 지닌다. 가을에 가까워질수록 아멜리가 세상이 자신이 상상한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영화의 색감도 더 현실적인 톤으로 이동한다. 물, 비, 바다의 표현 역시 이 절제된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한 색상을 적게 써서 구현했다.

리안 조 한 <사샤의 북극 대모험>과 <캘러미티 제인>에서는 윤곽선 없이 단색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작업했지만, <리틀 아멜리>에서는 초점과 비초점 효과나 일부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블러를 활용했다. 또한 투명 표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인물 주변의 파스텔 질감을 한층 더 강조했다. 이러한 선택 덕에 컬러스코프 효과가 더욱 두드러졌다. 결과적으로 관객이 아멜리의 시점에서 세상을 보고 인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안정된 땅 위엔 언제나 사람이 살고 있다

- 귀여운 어린이 주인공, 아름다운 사계절, 가족들과의 평화로운 모습. 그러나 <리틀 아멜리>는 오직 행복한 모습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을 둘러싼 어른들의 이면을 보여주고 가사노동에 지쳐버린 부모의 모습도 고스란히 나온다. <리틀 아멜리>는 어떤 형태의 삶의 어둠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나.

메일리스 발라데 아멜리는 어린 시절 아주 순진하게도 자신을 이상화된 자아로 바라본다. 자신을 ‘신’이라고 칭하면서. (웃음) 이후 유모 니시오와 함께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통해 자신이 일본인이라고 느낀다. 이 영화는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 유한성에 대한 이해, 그리고 더 넓게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거운 트라우마로부터 인간은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인간은 정말로 회복이 가능한가’와 같은 질문들이 끊임없이 우리를 따라다녔다. 물론 우리는 그것들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대사와 장면의 강도를 조절하면서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열쇠들을 건네고자 했다. 원작에서 아멜리가 니시오에게 전쟁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할 때 그 묘사는 훨씬 더 음울하다. 아멜리도 더 시각적인 세부 묘사를 요구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영상화 과정에서 이 지점을 그대로 따를 수 없었기에 촛불과 오봉(매년 8월15일에 열리는 일본 최대의 명절) 이야기를 새롭게 창작했다. 이 장면이 상실을 상징적으로 위로하고 가라앉히는 출구가 되어줄 거라 믿었다.

- 아멜리 주변에는 사랑 많은 어른들이 많다. 아멜리를 유일하게 아기 취급하지 않던 할머니 클로드, 아멜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고 나눈 유모 니시오까지. 이 어른들을 어떤 방식으로 묘사하고자 했나. 또 ‘좋은 어른’을 찾는 게 귀해진 세상에서 이들은 어떤 의미를 전할까.

메일리스 발라데 아멜리에게 할머니와 니시오는 구원자 같은 존재다. 두 인물은 인간의 감정적 생존에 필수적인 두 가지, 기쁨과 기억을 상기시키는 아주 중요한 캐릭터들이다. 두 사람 모두 따뜻한 인물이지만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클로드를 ‘샴페인 할머니’라고 불렀다. 세련된 취향을 가진, 조금은 엉뚱한 사람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원작자 아멜리 노통브의 대중적 이미지(큰 모자와 장난기 있는 태도)는 그의 할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 반면 니시오는 어른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넉넉한 것을 준다. 사랑과 존중, 관심과 인내 같은 것들. 니시오 캐릭터는 세대적, 사회적 계급 면에서 집주인 카시마와 대비되도록 설계했다. 이 인물들을 통해 우리는 관객이 ‘더 배려 깊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인도하고 싶었다.

- 어린이도 늘 즐겁지는 않다. 어린이도 갈등을 알아차리고 어른들의 문제를 인지한다. <리틀 아멜리>가 추구한 진정한 어린이다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메일리스 발라데 어린이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해한다. 아멜리는 또래에 비해 놀라울 만큼 성숙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아직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어린 존재들을 대변한다. 그만큼 많은 좌절을 겪기도 한다. 아이들은 감정의 스펀지다. 다정한 설명이 필요하고 어른과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것을 배가된 강도로 느낀다. 소리, 색, 시간, 시선까지. 아이의 순수함이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는 데서 시작해, 결국은 자신도 그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에 가깝다. 세상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 그러나 그 순간들을 살아내야만 그것들이 자신 안에 새겨진다는 것을 어린이들은 조금씩 배워나간다.

리안 조 한 맞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이해한다. 단지 방식이 다를 뿐이다. 우리는 어린이 관객들이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무거운 주제를 피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도 죽음과 같은 심층적인 주제를 이해하고 싶어 하니까. 다만 어른으로서 적합하고 올바른 방법을 찾아야만 할 뿐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깨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각자의 방식으로 우릴 또 놀라게 할 수 있도록 우리는 그 공간을 마련하면 된다.

사진제공 ⓒMaybe Movies-Ikki Fil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