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은 부재를 틈타 존재한다. 산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기 때문이다. ‘귀신 들린 집’을 다룬다는 설명보다 귀신 자체가 된 카메라로 찍었다는 소개가 더 적합할 영화 <프레젠스>는 그런 혼의 시점에서 보는 가족 이야기다. 영락없는 호러 무비의 개요 같지만,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들은 공포영화라는 말을 들으면 피가 낭자한 고어물을 떠올리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제작진은 이 영화가 ‘유령 이야기’(ghost story)라 불리는 걸 선호한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부모라면, 이 영화는 완벽한 공포영화가 될 것이다.” 이런 경고를 시작으로, 그와 화상 대화를 나눴다. 40년 가까이 규모와 장르를 횡단해온 필름 메이커는 지금 신작 준비로 영국 런던에 머무는 중이다.
- 미국 LA 자택에서 기이한 현상을 겪은 후 영화 <프레젠스>를 구상했다고 들었다. 각본은 <키미>(2022), <블랙 백>(2025)을 함께한 데이비드 켑이 썼는데, 어떻게 협업했나.
내가 먼저 시나리오의 첫 6~7쪽을 썼다. 거기엔 빈집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에 관한 묘사와 부동산중개인이 남편, 아내, 아들, 딸로 이뤄진 가족을 그 집으로 데려가는 장면만 있었다. 초고를 건네며 데이비드에게 말했다. “여기 이런 설정이 있고, 가족에게 어떤 사건이 벌어질 텐데, 그게 뭔지는 나도 모르겠다.” 데이비드는 자신이 무얼 해야 할지 정확히 알겠다더라. 시선의 주인에 대한 나만의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데이비드의 제안이 훨씬 더 놀라웠다. 덕분에 책이나 연극이 아닌 영화라는 형식만으로 구현할 수 있는 텍스트로 작업에 돌입할 수 있었다.
- 4인 가족의 관계망도 초기 설정에 포함돼 있었나. 엄마와 아들, 아빠와 딸 사이의 감정적 유대는 끈끈한 데 반해 부부, 남매끼리는 그리 잘 통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 또한 데이비드가 애착을 갖고 구축한 관계망이다. 그가 부모로서 여러 자녀를 키워봤기에 이런 현실적인 소통 문제를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마음에 든 건 이 영화가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이야기는 너무 많다. 특히 이런 장르에서 아버지가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걸 자주 보기 어렵다. 하지만 <프레젠스>의 크리스(크리스 설리번)는 다르다. ‘좋은 아버지’ 캐릭터는 극적이지도, 흥미롭지도 않다는 믿음은 사실이 아니다.
- 가족이 사는 공간은 어떤 모습이기를 바랐나.
인물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2층 이상인 집이 필요했다. 80여분간 관객의 시선을 붙잡을 만한 인테리어도 갖춰야 했다. 로케이션 헌팅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그런 집을 찾았는데, 교통량이 많은 도로를 마주하고 있다는 게 그곳의 유일한 단점이었다. 사운드 믹싱 기사가 고생하리라 예상했지만, 그 집이 가장 조건에 맞아 어쩔 수 없었다. (웃음)
- 직접 카메라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고됐을 텐데.
계단은 아름다웠지만, 가차 없더라! 층계를 오르내릴 때마다 카메라가 어딜 향해야 하는지 내 근육이 기억할 수 있도록 리허설을 반복했다. 찍고 나면 전체 테이크를 돌려보며 촬영이 제대로 되었는지도 꼭 확인했다. 앵글이 때로는 너무 높고, 때로는 너무 낮아서 재밌으면서도 까다로웠다. 내가 계단에서 넘어지기라도 했다면 정말 큰 문제가 벌어졌을 것이다.
- 유령 시점에서 영화를 찍기 위해 구사한 촬영 전략도 궁금하다.
소니 A9 Ⅲ 카메라를 썼다. 리그 등 액세서리까지 합치면 5.4kg 정도다. 그 자체로는 무겁지 않을지 몰라도 7, 8분간 계속 들고 있으면 팔이 떨린다. 떨림을 방지하고자 카메라를 잡은 채로 조금씩 움직여가며 찍는 전략을 유지했다. 더군다나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존재’ 그 자체의 역할을 한다. 오퍼레이터가 기존처럼 캐릭터들의 동선을 예측해가며 이동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배우들은 준비를 철저히 해서 실수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카메라를 들 때면 배우의 동선을 예측하려는 나의 본능 때문에 촬영을 다시 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럴 때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 실수예요”라고 말하곤 했다. (웃음)
- 유령이 속력을 올려가면서 집 안을 배회해 어지러운 오프닝 시퀀스에 서정적인 피아노곡이 흐르게 한 까닭은.
관객이 처음부터 슬픔을 감지하길 바랐다. 한 존재가 집 안에 홀로 남겨졌고, 밖으로 나갈 수 없으며, 무언가를 간절히 찾고 있다는 걸 감각적으로 최대한 빨리 전달하고 싶었다. 작곡가에게도 “영화가 시작한 지 30초 만에 버려진 존재가 느끼는 우울을 관객도 느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화면과 음악이 만나 그 느낌이 선명해졌다고 본다. 그 후 모든 전개는 오직 유령이 무얼 바라보는지, 어디에 머무르는지에 따라 관객에게 전달된다. 유령이 내리는 시각적 선택에 따라 관객이 그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일이 즐거웠다.
- 결국 유령의 정체가 밝혀지지만, 갈등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비극이 강화된다는 측면에서 잔인한 결말인데.
제대로 된 반전을 제시해 관객이 지금까지 본 모든 걸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좋아한다. <프레젠스>의 반전은 가슴 아프다. 아무도 유령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하다가 한순간 영화가 희생에 관한 초자연적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무척 슬픈 결말이지만, 관객은 ‘존재’의 정체와 동기를 알게 되는 동시에 그의 다정하고도 영웅적인 면 또한 알아차릴 수 있다. 다만 그 대가로 한 가족이 무너졌다. 나조차 인물들이 이 결말을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 여러모로 폐소공포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관람 환경이 중요한 작품이다. 관객이 극장과 집에서 다른 종류의 불안을 겪을 법하다.
영화제에서 상영 후 질의응답 시간에 한 관객이 말하길, 영화가 진행될수록 폐소공포가 심해졌다더라. 영화에 시점 전환이 없으니 관객이 시선을 돌릴 틈도 없다. 관객이 안도할 수 있는 장면이 안 나오는 셈이다. 이 접근법이 통할 거라는 보장은 전혀 없었지만, 대안도 없었다. 그게 영화를 찍는 동안 가장 두려운 점이었는데, 관객들이 폐소공포를 느끼며 반응해준 게 정말 다행이다. 그들은 이 영화가 왜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이해하고 따라와준 것이다. 그리고 요즘 감독들은 자기 작품이 극장에서 개봉하더라도 머지않아 많은 관객이 집에서 그걸 볼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안다. 나도 그 부분에 열려 있다. 어떤 면에서 <프레젠스>는 집에서 볼 때 더 무서울 수도 있다. 누군가는 10분, 15분 만에 시청을 포기할 수도 있고. 영화 속 집에 갇힌 것처럼 괴로웠을 관객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