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편집장님. 제 이름이 뭔지 아세요?” 마침내 두려워하던 그 질문이 당도했다. 사람 만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입장에서 늘 외면하고 도망쳤던 질문. 8개월가량 함께 작업하던 이들과 처음으로 회식을 가진 날, 불쑥 질문이 나왔다. 아마 좀처럼 직접 호명을 하지 않는 말투가 이상해 보였던 모양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긴 시간 함께하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로 동료들의 이름을 아직 외우지 못했다. 존경받아 마땅한 어떤 연예인은 스쳐 지나간 스태프의 이름과 처지까지 다 기억하고 챙기는 이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는데, 그에 비할 바는 아니더라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기본이 안되어 있다.
고백과 변명을 섞자면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이름과 얼굴을 매칭하는 것도 시간이 한참 걸리는 편이다(혹여나 나의 무심함과 나태함으로 상처받았을지도 모를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모임이나 행사에서 오랜만에 얼굴을 뵙는 분들과 만날 땐 미묘한 머뭇거림의 1초 안에 상황이 판별된다.
아, 지금 저분도 나처럼 낯은 익는데 이름이 기억 안 나시는구나. 왠지 모를 안심과 민망함이 교차하는 순간은, 이제 인이 박였다. 거창하게 ‘증상’이라고 말할 것까진 없지만 부단하게 노력해보아도 좀처럼 해결이 쉽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짜낸 방법이 굳이 상대를 호명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가는 요령을 부리는 거였는데, 그 편리한 샛길이 세계를 더 좁게 만들었던 것 같다. 자신의 게으름과 무딤을 ‘어쩔 수 없음’으로 포장한 채 몸이 편한 핑계를 대는 사이, 소중한 것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대화를 할 때 마지막까지 입에 올리지 않아야 하는 게 ‘어쩔 수 없지만’이다. 그 말로 시작하는 일은 대체로 어쩔 수 없지 않다. 단지 더이상 알고 싶지 않다는 포기 선언이자 영원히 만나지 못할 평행선의 벽을 쌓는 일에 불과하다. 한동안 이름을 몰라도 ‘누군지는 아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안일하게 도피했던 스스로를 반성한다. 단지 이름을 외우지 않았다는 민망함 때문만은 아니다. 이건 일종의 태도에 대한 문제였다. 기자의 업은 그저 사람을 많이 만나는 데 있지 않다. 정말 중요한 건 눈앞의 상대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다.
글쓰기의 지표로 삼은 격언 중 하나는, 글쟁이는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리는 상상력이 아니라 자신의 글을 읽어줄 독자, 다다를 목적지, 아직은 눈앞에 없는 대화 상대를 그려보아야 한다는 의미다. 달리 말하자면 미지에 대한 호기심이야말로 좋은 질문의 원료다. 그런 의미에서 제대로 된 기자의 업은 아직 정확히 명명할 수 없는 새로운 대상에게 많은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뒤늦은 사족을 하나 덧붙이자면, 미지의 대상에 대한 이름을 짓고, 부르고, 기억하는 일은 항상 상대에 대한 존중과 애정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주는 숏드라마의 생태와 구조를 분석하는 리포트를 마련했다. 겉보기에 친숙해 이미 잘 안다고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속살은 전혀 달랐다. 어떤 형태로 뻗어나갈지 여전히 미지수인 이 새로운 시장과 생태계를 두고 잊고 있던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숏드라마, 너의 이름은 앞으로 어떻게 기억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