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상영이 끝나기도 전에 ‘곧 OTT에 공개된다’는 안내 문구가 붙는 시대다. 관객은 최신작을 조금만 기다리면 집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제작사는 점점 더 빠른 온라인 공개를 전제로 수익 회수 계획을 세운다. 그 결과 극장의 독점 상영 기간은 눈에 띄게 짧아 졌다. 6개월, 2개월, 1개월. 심지어 극장과 동시 공개라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문제는 이 속도의 붕괴가 단순한 관람 방식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10여년간 국내 영화산업은 극장을 시작으로 TVOD(IPTV·디지털케이블), SVOD(OTT)로 이어지는 단계적 유통 구조를 기반으로 작동해왔다. 각 창구는 앞선 창구의 성과를 발판 삼아 가격과 수요를 조정했고, 그사이의 시간은 단순 지연이 아니라 가치의 완충지대였다. 극장 흥행이 입소문을 만들고, 그 화제성이 유료 VOD 구매로 이어지며 다시 구독형 플랫폼으로 확장되는 구조. 홀드백은 그 질서를 가능하게 한 최소한의 장치였다. 그러나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OTT 플랫폼이 급성장했고, 홀드백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완충지대가 사라지자 제작사의 수익 회수 기반은 약화됐고, 투자 위축과 중·저예산 영화 제작 감소, 영화발전기금 축소 등 산업 전반의 악순환이 가속화됐다. 극장의 위기는 단순한 관객수 감소를 넘어 창구 전체의 가격 체계와 위험 분산 구조가 흔들리는 문제로 확장됐다.
지난 2월6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한국 영화산업 선순환 구조 복원을 위한 홀드백 정책 토론회’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한국영화관산업협회와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가 주관한 이날 토론회는 현실에 부합하는 홀드백 정책을 모색하고, 정부·산업· 학계의 의견을 모으기 위한 자리였다. 주최자인 임오경 국회의원(문 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 더불어민주당)은 “홀드백이 고사 위기의 영화산업을 모든 문제에서 구원할 만능 해법은 아니겠으나, 적어도 관객을 다시 극장으로 돌아오게 하는 첫 번째 단추가 될 수 있다”며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발제를 맡은 노철환 인하대학교 교수는 현재 발의된 두건의 법안을 비교하며 논의의 틀을 제시했다. 임오경 의원과 박정하 의원(국민의힘)이 각각 발의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홀드백 적용 기간의 설정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임오경 의원 개정안이 극장 개봉 종료 후 6개월 이후로 명시한 반면, 박정하 의원 개정안은 구체적인 기간을 대통령령에 위임하도록 했다. 노 교수는 “영화산업의 건전한 상생 발전이라는 법안 취지에는 대체로 공감한다”면서도, 일률적 6개월 제한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OTT 서비스를 6개월 이후까지 제한하는 방식은 경쟁 제한 소지가 있고, 중소 규모 영화의 수익 기회나 대작의 자율적 수익 구조를 제약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3~4개월 수준으로의 기간 조정”과 함께 “제작 규모·장르 유형에 따른 예외 규정을 병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한 “영화진흥위원회가 데이터 기반 연구를 선행한 합리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합 토론에서는 산업 각 주체의 절박함과 온도차가 차례로 드러났 다. 먼저 발언에 나선 한국영화감독조합의 김한민 감독은 “한국영화계는 위기가 아니라 ‘식물인간’ 상태”라고 강하게 표현했다. 투자 철회와 재투자 지연의 반복으로 제작사들이 자금 조달 과정에서 협상 주도권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홀드백을 “마지막 심폐소생술”에 비유하며 도입 여부가 아니라 “적용 방식의 문제로 논의가 전환돼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 업계 역시 유통 질서 회복이라는 큰 방향에는 공감했다. 김동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국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콘텐츠 소비가 디지털 중심으로 이동하며 글로벌 OTT 중심의 시장 재편이 가속화됐다”고 진단했다. 유료방송 역시 “가입자 감소와 매출 감소라는 이중 부담을 안고 있으며, 저가 시장 구조가 고착화돼 수익 개선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TVOD까지 과도하게 규제할 경우 “또 다른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며 신중론을 폈다. 플랫폼별 유통 수익이 일정 부분 보장돼야 재투자가 가능하고, 유통 질서가 회복돼야 콘텐츠 제작으로 다시 자금이 순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백대민 한국IPTV방송협회 팀장은 구체적 수치를 제시했다. “2019년 약 4천억원 규모였던 국내 TVOD 시장이 2024년 약 1700억원 규모로 위축됐다”고 밝혔다. 그는 현행 개정 안의 ‘블랙아웃’ 조항이 TVOD까지 일괄 적용될 경우 “콘텐츠 가치의 조기 소멸, 불법 유통 확산, 투자 회수 지연에 따른 제작 위축”이라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동시에 “중소·독립영화에 대한 탄력적 예외 적용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IPTV 업계도 전략 펀드를 조성해 영화 투자에 참여할 계획이다. 극장은 프리미엄 창구, IPTV는 합법적 2차 시장, OTT는 장기 소비층 형성이라는 구조가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산업이 유지된다”는 설명이다. 신한식 한국영화관산업협회 본부장은 홀드백 법제화를 통해 “산업구조를 복원하고 선순환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경직된 규제가 아니라 “유연한 운영과 정부·업계간 협력이 병행돼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균형 있는 정책 설계 의지를 내비쳤다. 김지희 문화 체육관광부 영상콘텐츠산업과 과장은 “극장 관객 감소가 매출과 부가판권 수익의 균형 악화로 이어졌다”고 진단하며, “제작사와 배급사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반영해 산업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토론회에서 확인된 공통 인식은 분명하다. 팬데믹 이후 극장·제작· 유통 구조가 동시에 흔들린 상황에서 홀드백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창구간 균형을 회복하고 투자 선순환을 복원하기 위한 장치라는 점이다. 그러나 설계 방식과 적용 범위, 예외 규정의 설정은 산업의 향방을 좌우할 만큼 민감하다. 속도보다 중요한 건 정교함이다. 홀드백이 또 하나의 제약으로 남을지, 무너진 유통 질서를 복원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지는 이제 세밀한 조율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