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1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가 1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극장가에 활기가 도는 것은 맞지만 영화계의 불안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2024년 <서울의 봄> <파묘> <범죄도시4>로 이어진 천만 영화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영화산업의 반등이 일어나지 않았던 전례 때문이다. 2025년엔 천만 영화가 아예 나오지 않았다. 이에 <왕사남>의 흥행이 국내 영화·극장 산업에 미칠 영향이 무엇일지 전망했다.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다. 극장가의 흥행 양극화 현상, 상업영화의 제작비 규모와 투자 흐름, 극장 관객의 성향이다.
<왕사남>이 극장을 살릴 수 있을까. 과거의 기록과 최근의 양상은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소수의 거대 흥행작이 나오며 비슷한 양상을 만들었던 2024년 상반기를 돌아보자. <파묘><범죄도시4>가 천만 관객을 넘었으나 2024년 극장 매출액과 전체 관객수는 오히려 2023년보다 소폭 하락했었다. 이어서 2025년엔 2009년 이후(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제외) 한국영화 총매출액 최저치를 기록했다. 더군다나 팬데믹 기간의 창고 영화도 바닥났다. 상업영화 개봉작 편수가 2024년 30~40편에서 이제 20편 내외로 줄어든 상태다. 9개월 넘게 남은 올해 극장가의 성적을 긍정적으로 예견할 수 없는 이유다.
<파묘> <범죄도시4>가 극장에 걸렸던 2024년 상반기, 두 천만 영화를 제외하면 200만 관객을 넘긴 한국영화가 없었다. 흥행 쏠림 현상의 심화가 증명됐고, 꾸준히 제기되는 소위 스크린독과점 논란도 피할 수 없었다. <범죄도시4>는 82%라는 역대 최고 일일 상영점유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 <왕사남>의 최고 일일 상영점유율은 56.6%로 기존의 천만 영화들보다 높은 수준은 아니다. <파묘>가 56%, <서울의 봄>이 61.1%였다. <왕사남>과 <파묘>의 배급사인 쇼박스가 자사 계열의 멀티플렉스를 운영하지 않고 있기에 60% 정도의 상한선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단독 선두 외 개봉 초반의 성적이 좋지 않은 작품들은 관객이 몰리는 주말 스크린을 확보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선두 주자와 후발대들 사이 상영점유율의 격차는 주중보다 주말에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월4일 개봉한 <왕사남>의 개봉 7주차 주말 상영점유율은 36.6%였다. 2월11일 개봉한 <휴민트>와 <넘버원>의 동기간 상영점유율은 32.4%, 8.0%였다. 2주 뒤, 9주차 주말 상영점유율은 <왕사남> 54.5%, <휴민트> 11.5%, <넘버원> 1.6%로 점차 더 크게 벌어졌다.
극장가의 흥행 양극화 현상은 상업영화 투자·제작 판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 따르면 2025년 개봉작 중 순제작비 30억원 이상 상업영화 31편의 평균 총제작비는 104억6천만원이었다. 이중 30편의 추정 수익률은 -33.13%였는데, 순제작비 100억~150억원으로 만들어진 영화 4편만이 수익률 33.69%를 기록했다. <왕사남>의 순제작비는 105억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예년의 수익률 공식이 들어맞았다.
이에 관해 창업투자사 출신의 영화 제작자 A씨는 상업영화의 전략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고 설명했다. 업계가 “반드시 1등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대규모 프로젝트, 아니면 제작비를 낮추고 OTT나 IPTV 유통까지 고려하는 중저예산 프로젝트” 중 하나를 양분해 택해야 한다는 의미다. 거칠게 나누자면 역대 한국영화 최대 제작비로 만들어지는 <호프>(7월 개봉예정)와 맞서는 쪽, 혹은 100억원 안팎의 중저예산 영화로 시장이 구분된다는 것이다. <왕사남>을 비롯해 2025년 연말 개봉 후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총제작비 50억원 안쪽의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만약에 우리>가 후자의 경우다.
인기 있는 영화의 상영점유율이 높아지는 것이 시장 논리상 당연하다는 말도 있으나, 거꾸로 보면 높은 상영점유율이 관객을 끌어모은다는 말도 이치에 맞는다. 2월27일 영진위가 발표한 ‘영화콘텐츠 소비트렌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관객의 극장 선택 시 고려 요인 중 가장 높았던 것은 ‘원하는 영화 상영 여부’(77.6%)와 ‘원하는 상영시간대’(73.6%)였다. 또한 영화 관람 유형 중 즉흥적 관람의 비율이 39.8%로 계획적 관람(38.3%)보다 조금 높았다. 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극장에 가기도 하지만, 극장에서 틀어주는 영화를 보게 되는 비중도 크다는 이야기다. 특정 영화의 흥행 추이가 수요에 맞춘 공급뿐 아니라, 공급에 따른 수요의 변화에도 큰 영향을 주고받는 셈이다.
관객이 영화를 인지하고 선택하는 주요인도 <왕사남>흥행의 맥락과 연결된다. 극장 관람할 영화의 정보를 얻는 경로 중 1위(1+2순위 기준)는 ‘유튜브 및 영상물’(48.9%)이었다. 영화 선택 시 고려 요인의 순위(1+2순위 기준)는 1위가 소재(81%), 2위가 장르(79.5%)였다. 즉 유튜브 등 SNS 내 홍보 영상물을 통해 소재와 장르를 직관적으로 전할 수 있는 작품이 관객의 선택을 받기 쉽다는 것이다. ‘단종의 비극, 사극’으로 명확히 표현되는 <왕사남>의 전략과 일맥상통한다.
마케팅 요인 중에선 ‘다른 관객 평점, 리뷰, 입소문’이 65%로 1위, ‘예매 순위 및 흥행’이 2위(53%)였다. ‘영화제 수상, 전문가 평가’는 최하위인 36.5%였다. ‘영상미, 시각효과’는 45.9%에 불과했다. 그조차 하나의 입소문으로 자리 잡게 된 <왕사남>의 ‘미흡한 호랑이 CG’는 애초부터 관객의 영화 선택에 주요한 고려 사항이 아니었던 셈이다.
한편 지난 1월 영진위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통계집계기준 개편 타당성 연구’를 발표하며 오랫동안 논의되어온 매출액 중심의 박스오피스 집계 전환을 가시화했다. 급변하는 영화산업의 환경과 규모를 직관적으로 가늠하고, 특수관 등 영화푯값의 차등까지 수치에 포괄한다는 목적이다. 관객수 중심의 집계 방식이 ‘숫자 싸움’으로만 말해지는 영화계의 출혈 경쟁을 심화한다는 이유다. 관객수 ‘뻥튀기’를 위한 무리한 할인 마케팅과 프로모션이 산업의 양극화를 악화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왕사남>의 사례로 인해 매출액 전환의 과정은 더 쉽지 않아질 것으로 보인다. ‘천만 영화’라는 단어에 실린 한국영화계의 상징성을 급격하게 배제할 순 없기 때문이다. 영진위도 집계 방식의 전환을 점진적으로 모색해나갈 것이라는 의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