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이 많은 편이다. 대학 시절 초등학교 도서관 정리 사서로 잠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급식실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양반 총각’으로 불렸는데, 아무리 급한 일로 호출해도 절대 뛰지 않고 태평하게 걷는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양반 총각이란 별명에는 답답함에 대한 에두른 핀잔과 푸념도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다. 눈치 없는 나도 알 수 있을 정도였지만 계속 눈치 없는 척 굴었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양반 총각은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편이라 다툼이 생겨도 먼저 사과했다. 실은, 사람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저 다툼이 무서웠을 뿐이다. 언성을 높여 다투는 곳 근처만 가도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가능한 한 분쟁을 피하려 하다 보니 진중한 중재자 역할을 떠맡은 적도 있지만 실은 늘 도망쳤다. 다툼이 있는 곳은 되도록 피해다녔고, 어쩌다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때도 먼저 지는 게 편했다. 그렇게 40년을 살았다.
요즘 이유 없는 우울과 심란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서인 것 같다. 도처에 전쟁 이야기로 가득하다. 국내 소식으로 눈길을 돌려봐도 이른바 진보 스피커를 자처하는 이들의 주도권 다툼으로 속이 시끄럽다.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안에서는 통제 불가능한 광기와 힘의 논리가 상식을 찍어 누르고 있는 꼴을 실시간으로 전해 들으며 무력감에 빠진다. 덩달아 각자의 정의를 내세우는 걸 넘어 감정 다툼으로 번지는 꼴을 지켜보며 시시비비를 논할 여유마저 사라지는 중이다. 점점 간장 종지처럼 쪼그라드는 모습이 싫어서 언제나처럼 도망치고 싶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전쟁과 영화’를 이번주 특집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번주만큼 중간에 원고를 덮고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지금도 불편하고 불쾌하고 답답하다. 어떤 경로로 접근해도 끝내 마침표를 찍을 수 없을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보지 못한 것에 대해 말하긴 쉽지만 보고 나서도, 아니 봤기 때문에 말하기 더 어려워지는 것들이 있다. 제대로 내뱉지 못한 말이 적체되어 쌓일수록 거꾸로 선명해지는 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뿐이다. 그럼에도 보고,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걸 포기하진 않겠다. 적어도 이 사안에 있어서만큼은 도망쳤다는 기억을 남기고 싶지 않다. 이번주 남다은 평론가의 <노 어더 랜드>와 <힌드의 목소리> 비평을 읽으며 뜻밖의 위안을 얻는다. 카메라가 불가항력의 현실에 끈질기게 저항하면, 우리는 그걸 끈덕지게 풀어내고 기록하겠다.
마침 예고편이 공개된 <듄: 파트3>의 한줄 대사가 뇌리에 박혀 맴돈다. ‘전쟁은 스스로 증식한다.’ 우리가 시선을 돌린 채 내버려두면 정말 그렇게 될 것이다. 최소한의 발버둥으로 이 탈출구 없는 지옥도에서 눈을 돌리지도, 펜을 놓지도 않겠다. 뭐라도 해야 한다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