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 스크린 속 장엄함과 현실의 피로 사이 - <BTS 컴백 라이브: ARIRANG>이 제공한 스크린 밖과 안의 ‘두 개의 공연’

사진제공 넷플릭스

3월21일 밤 8시, 광화문광장에서 두개의 공연이 동시에 시작을 알렸다. 하나는 경복궁으로부터 ‘왕의 길’ 어도 동선을 따라 걸어 나온 BTS 일곱 멤버가 4만여명 안팎의 관객 앞에서 높이 14.7m, 너비 17m의 거대한 무대 위에 펼친 라이브 공연이다. 다른 하나는 글로벌 OTT 넷플릭스가 23대의 카메라와 124대의 중계 모니터 등 총 16만4600kg의 방송 장비를 가동해 6개 시간대 190개국에 송출한 넷플릭스 콘텐츠였다. 정규 5집 《ARIRANG》 (이하 《아리랑》)으로 3년 9개월 만에 컴백한 BTS의 <BTS 컴백 라이브: ARIRANG>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두 공연 모두 시작은 인상적이었다. 북한산을 넘어 경복궁 근정문, 흥례문, 광화문을 훑는 장엄한 롱테이크 드론숏 아래 월대에 늘어선 50명의 무용수가 길을 열고, 팬덤 아미(A.R.M.Y.)에 복귀를 선언하는 일곱 멤버가 무대에 올랐다. 유지숙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을 중심으로 13명의 국립국악원 단원과 객원 단원들이 준비한 오프닝 무대 <Body to Body>는 《아리랑》이라는 앨범 제목의 증명과 선택의 당위를 동시에 제공했다. 거문고 연주자 이재하의 오프닝 음악 구성과 음원에서 샘플링된 <아리랑>과는 다른 서도민요 명창의 새로운 <아리랑>가락이 광화문 외벽의 수묵화풍 미디어 퍼사드로 펼쳐졌다. 경복궁과 광화문, 태극기의 건곤감리를 테마로 큐브 LED와 연동한 디자인이 광장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한국적 정체성의 최대치 감동을 안겼다.

첫곡의 인상적인 연출은 첫곡에서만 그쳤다. 경복궁에서 광화문을 지나 월대로 이어지는 ‘왕의 길’은 무대에서 멈췄다. 광화문 북단에 고정된 무대 위에서만 퍼포먼스를 펼치는 멤버들의 모습을 넷플릭스 카메라가 중계하는 것이 이후 공연의 전체 전개였다. 세종대로 1.2km를 통제하고도 멤버들이 걸어 내려오거나 중간 무대에서 관객과 마주하는 연출은 존재하지 않았다. 엄격한 통제로 인해 광화문광장을 찾은 인파는 총 26만명이라는 사전 예측에 비해 크게 적었고, 제한된 시야로 인해 현장을 방문한 이들도 공연장 곳곳에 설치된 스크린 혹은 개인 기기를 통해 넷플릭스로 공연을 ‘시청’하는 아이러니가 펼쳐졌다. 공연 직후 팬들의 ‘직캠’ 영상과 넷플릭스 중계를 비교해보면 역동성의 수준이 완전히 다르다. 리더 RM의 부상에도 영상 속에는 3년9개월이라는 공백이 무색하게 격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BTS의 모습이 담겨 있으며, 특히 안정적인 가창의 역량이 두드러진다. 현장에서 폭발하는 에너지가 스크린을 통과하는 순간 절반 이상 사라졌다.

이날 공연을 총연출한 해미시 해밀턴은 살아 있는 공연 연출계의 전설이다. 지상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이벤트인 슈퍼볼 하프타임 쇼를 16년 연속 연출하고, 2012년 런던올림픽 개·폐막식을 지휘했다. 미국 방송 역사상 시청률 상위 10개 프로그램을 모두 연출한 유일한 감독이다. 해밀턴의 연출 문법은 이벤트의 스케일을 개인화된 스크린에 옮기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슈퍼볼 하프타임 쇼나 올림픽 개막식의 원형 스타디움에서 넓은 풀숏, 장엄한 롱테이크로 사전에 설계한 세트리스트를 음악에 맞춰 실시간으로 실행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K팝의 시각적 본질과는 다르다. ‘칼군무’를 담는 정밀함, 멤버별 포인트 안무와 무대 위에서의 생생한 표정을 담는 타이트한 카메라워킹, 사전녹화를 통해 최적의 앵글을 선별하여 생방송과 결합하는 ‘사녹’ 방식이 국내 음악방송 PD들이 20년간 쌓아온 문법이다. 라이브 방식에 대한 갑론을박은 결국 실시간 중계라는 형식이 감수해야 하는 구조적 딜레마를 보여준다.

넷플릭스는 공연을 중계한 것이 아니다. 글로벌 OTT는 약 100억원을 들여 공연이라는 재료로 별도의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제작했다. 2295개 플라이트 케이스와 58건 선적 화물 분량의 방송 장비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한 인프라다. 최근 몇년간 생중계를 시도한 넷플릭스는 그렉 피터스 공동 CEO의 발언처럼 “스포츠 중계 전략이 아니라 라이브 이벤트 전략을 강화”해왔다. 실제로 넷플릭스의 라이브 콘텐츠는 중계 그 자체보다 중계를 둘러싼 화제성을 실시간으로 옮기는 데 집중해왔다. BTS의 컴백은 넷플릭스가 VOD 플랫폼에서 종합 엔터테인먼트 채널로 전환하는 전략의 첫 번째 음악 콘텐츠가 된 셈이다.

이들의 전략이 음악 공연에 효과적으로 적용되었을까. 이날 광화문광장에서의 공연과 중계만 보면 그렇지 않다. 스포츠 중계는 결과를 확인할 수 없는 실시간 변화가 콘텐츠의 본질이 된다. 음악 공연은 다르다. 현장의 뜨거운 에너지, 아티스트와 관객간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융합의 장이다. 넷플릭스의 중계 방식은 현장을 고스란히 옮기는 대신, 다 회차 공연을 촬영하여 최적의 앵글을 사후에 선별해 편집하는 공연 실황 영화의 방식과 흡사했다. 비욘세의 <르네상스>콘서트 필름, 테일러 스위프트의 <더 에라스 투어>, 빌리 아일리시의 <힛 미 하드 앤드 소프트: 더 투어>가 취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해당 실황이 공연장에서의 뜨거운 열기를 담아내는 데 집중하는 반면, 광화문광장에서의 BTS 라이브는 구획별로 철저히 나뉜 관중과 정적인 무대 동선이 겹치며 역동과 감동을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 광장을 위한 무대와 스크린을 위한 무대 중 후자에 무게중심이 크게 쏠린 셈이다.

이는 결국 현재 미디어 시장에서 뜨거운 화제인 ‘보편적 시청권’과도 맞물린다. 실제로 공연 이전 한국영상기자협회는 서울시와 문화체육관광부, 하이브와 넷플릭스에 영상 취재 10분 제한 정책에 대해 강하게 항의하며, “공공장소에서 영상 취재를 10분으로 한정하고 취재 장비도 제한하는 조치는 공적 공간의 개방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미 스포츠 이벤트에서 일본 넷플릭스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독점 중계, JTBC의 올림픽과 월드컵 중계권 확보 사례로 확인할 수 있었던 흐름이 음악 공연에서 처음 충돌한 사례가 BTS의 이번 광화문 공연이다. 넷플릭스의 100억원 투자가 없었다면 이 정도 규모의 중계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광장은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보편적 시청권과 글로벌 스케일의 제작비, 거대한 문화적 이벤트와 국위선양이라는 프레임이 어지럽게 뒤섞이는 가운데 통제와 제한, 금지의 목소리만 요동쳤던 광화문의 밤이었다.

공연 연출에 대한 비판과 광장 점유에 대한 아쉬움과 별개로 BTS의 컴백쇼는 K팝은 물론 글로벌 미디어 환경에서도 선구적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광화문광장에서 대중음악가의 단독 공연은 최초다. 190개국 동시 송출이라는 기술적 실험은 넷플릭스에도 거대한 모험이었으며, 결과론적으로 인파가 몰리는 가운데 행정부가 심혈을 기울였던 안전관리에도 성공했다. 넷플릭스가 첫 음악 라이브 파트너로 여타 팝스타가 아닌 K팝을 선택했다는 산업적 의미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왜 BTS가 《아리랑》의 복귀 무대를 광화문에서 열었는지에 대한 당위를 공연 전체에서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이는 《아리랑》의 불완전함과 결합하며 또 다른 기묘한 순간으로 남았다. 《아리랑》은 한국적 정체성이라는 새로운 결속의 장치 아래 멤버들이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부담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이다. 국가와 기업, 플랫폼과 팬덤이 각자 다른 것을 원하며 도시를 정지시킨 현장에서, 《아리랑》 공연은 앨범 내에선 닿지 못했던 깊이에 도달하며 새로운 형태로 완성됐다. 광화문광장을 둘러싸고 벌어진 숱한 논란과 다툼, 갈등 가운데 광장 속 시민이 감내해야 했던 불편과 더는 공감받지 못하는 ‘국위선양’의 프레임이 앨범에서 BTS 멤버들이 차마 말하지 못했던 여백을 채우고 있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한국을 알리는 《아리랑》의 서사가 광화문광장에서 완성된 셈이다.

휴대전화, 모니터, TV 속 광화문광장은 장엄했다. 스크린에서 눈을 돌려 올려다본 광화문의 풍경은 피로했다. 넷플릭스 속 광화문과 현실의 공연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글로벌 미디어의 라이브 콘텐츠 이벤트와 호응하는 공연의 시대에서 음악은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 누구도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 불확실함에 대답하기 위해 무게를 짊어진 건 국가대표로의 사명을 묵묵히 수행하는 BTS, 그리고 과정에 대해 합의하지 않은 채로 공연을 ‘당한’ 시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