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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슬프도록 아름다운 - <위 리브 인 타임> 배우 앤드루 가필드, 플로렌스 퓨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고 했던가. 이 문장을 앤드루 가필드플로렌스 퓨가 대뜸 <위 리브 인 타임>으로 실현한다. 알무트(플로렌스 퓨)와 토비아스(앤드루 가필드)는 교통사고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처음 만난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얽힌 둘은 로맨스영화의 공식대로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낳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알무트에게 사고처럼 병마가 닥친다. 하지만 두 남녀는 고통 앞에 굴복하지 않는다. 알무트와 토비아스는 불가항력적으로 사랑에 빠졌던 과거처럼 서로의 인생에 더욱 깊이 관여하며 끝내 자신마저 구원한다. 2024년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월드프리미어를 가진 다음날, 첫 상영의 여운을 안고 살짝 상기된 눈빛으로 자리한 두 배우와 <씨네21>이 국내 단독으로 화상 인터뷰를 가졌다.

플로렌스 퓨, 앤드루 가필드(왼쪽부터)

- 촬영 2주 전부터 제작진과 리허설을 거친 영화라고.

플로렌스 퓨 아주 허름한 방에서 매일 만났다. 거기가 어디였더라. 리허설 내내 날씨가 흐렸다. 하지만 천국 같은 곳이었다. 언제나 비스킷과 차가 준비된 공간이었거든. 아무튼 영국 그 자체였다. (웃음)

앤드루 가필드 그렇지. 자주 비가 내렸다. 나는 연극무대에 서든 영화를 찍든 리허설을 즐긴다. 연습실은 내가 지구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다. 무얼 잘해내야 한다는 압박이 없는 시공간 속에서, 놀이하듯 탐구하며 연기에 접근할 수 있다. 대개 영화 현장은 리허설을 가질 시간이 없는데 <위 리브 인 타임>은 오랜 시간 제작진, 배우들이 모여 작품을 탐구하는 호사를 누렸다. 가령 주유소 화장실 출산 장면은 직접 블로킹을 고려하며 동선을 짰다. 리허설 룸 바닥에 테이프를 붙이며 모두가 카메라의 위치를 고심했다.

플로렌스 퓨 리허설 룸이 무척 넓었다. 그런데 출산 장면을 연습하기 위해 스태프들이 바닥에 실제 세트 크기로 테이프를 붙였더니 그 큰 방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앤드루 가필드 “이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애를 낳으라는 거지?”라며 말을 잃었던 기억이 난다.

플로렌스 퓨 지금 인터뷰 룸에 깔려 있는 매트 너비 정도 되나. 알무트와 토비아스에게 허락된 공간을 자각하는 순간, 이들이 처한 현실이 가슴속으로 훅 들어왔다.

- 앤드루 가필드는 그간 영화 <네버 렛 미 고>나 <달링> 혹은 토니상을 수상한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등에서 시한부 환자를 연기했다. 그런 당신이 <위 리브 인 타임>에선 투병하는 연인을 간호하는 토비아스로 분했다는 점이 공교롭다.

앤드루 가필드 방금 머릿속이 뒤집혔다. 촬영할 땐 몰랐지만 음…. (한참 고민한 후) 뭐든 상호적인 것 같다. 두 사람이 서로를 갈망한다는 전제하에 돌봄은 언제나 양방향으로 작동하기 마련이다. 역학 관계에 상관없이 한쪽이 타인을 돌보는 과정에서 분명 다른 쪽도 상대를 깊이 들여다보며 보살피기 때문이다. 토비아스가 알무트를 간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무트 역시 토비아스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의 심신을 어루만진다. 토비아스는 알무트의 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다른 관계에선 고취하기 힘든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언젠가 친구가 내게 알려준 격언이 있다. “친밀감은 사실 나를 들여다보는 것.”(‘Intimacy’ is actually ‘into me I see’) 영어로 읽으면 말장난 같은 문장이지만 누군가와 친밀해진다는 건 사실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과 다를 바 없다. 나와 밀접한 상대는 결국 나를 비추는 거울이고,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든다. 그렇게 오로지 나로 존재하는 순간만이 비길 데 없는 치유를 선사한다.

- 결혼과 출산에 관해 확신이 없던 알무트는 토비아스를 만나 임신, 출산, 육아를 결심한다. 알무트가 어떻게 이같은 결단을 내렸다고 보나.

플로렌스 퓨 알무트의 분투는 오늘날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투쟁 중인 의제와 닿아 있다. 아니다. ‘젊은’을 ‘모든’으로 고치겠다. 여성들이 역량껏 커리어를 쌓으며 성공할 가능성이 열려 있고 또 여성들이 서로의 성공을 지지하는 시대다. 하지만 여전히 모성을 강요받는 시간이 여성으로 하여금 자기 분야에서 일정한 성취를 이룩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더군다나 여성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져서, 이 질문을 안고 고민하는 시간마저 훨씬 길어졌다. 어제 영화를 함께 본 친구들, 가족과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었는데 결국 같은 맥락의 메시지가 오갔다. 우리는 늘 변하고 있고, 변해도 괜찮고, 성장하고 나아감으로써 점점 더 큰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알무트는 토비아스와 함께 세상을 일구며 마음을 바꾼다. 커리어의 절정과 엄마가 되는 일에 동시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임신 생각이 없던 알무트는 난소를 제거하는 대신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고, 토비아스와 함께 의미를 만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선택에 대한 대가 내지는 희생을 감수한다. 알무트는 모든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한 여자의 삶을 그린 이 영화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슬프도록 아름답다.

- 알무트와 토비아스는 단 하루를 살더라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려 투쟁한다. 둘의 태도가 카메라 밖 당신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나.

플로렌스 퓨 <위 리브 인 타임>을 보고 나면 누구나 집에 돌아가 자신의 삶을 성찰하지 않을까. 그게 이 영화의 전부다. 알무트를 연기한 후 스스로에 관해 새롭게 깨달은 것이 많다. 아마 앤드루도 나와 같을 텐데.

앤드루 가필드 물론. 요즘 나의 작품 선택 기준은 성장 여부다. 내가 작품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여지가 많거나, 좋은 영향을 받아 배우로서 보다 잘 조형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한다. <위 리브 인 타임>은 ‘지금 이 순간’을 일깨우는 영화다. 영화의 주제에 국한해 꺼낸 이야기가 아니다. 촬영 중에도 배우들은 그저 순간 속에 살아 숨 쉬며 이 신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채로 생생히 깨어 있었다. 오늘 우리가 무슨 장면을 찍는지 모르고 현장에 가는 경우도 많았고. 토비아스와 알무트, 그리고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삶의 무작위성을 자연스럽게 체화한 것이다. 나 또한 플로렌스처럼 <위 리브 인 타임>을 슬프고 아름답게 기억한다. 삶 속에서 온전히 존재하며 다가오는 위협에 온몸으로 도전하는 자세를 이 작품이 일깨워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