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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알아서 대본이 들어오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 연극 <불란서 금고-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 배우 금새록

- 영화, 드라마, 예능에 이어 연극무대에 처음으로 도전 중이다.

매일 행복하다. 고난마저 달갑다. 이런 기분은 대학 연기과 입시 이후로 처음이다. 그땐 혼나고 깨져도 아랑곳않고 마냥 행복했는데 그 기쁨을 연극무대에서 다시 누리는 중이다. 무대의 매력도 알았고 연극에 꼭 한번 도전하겠다는 꿈도 컸지만, 그래도 내가 이렇게까지 연극을 좋아할 줄은 몰랐다. 신구 선생님을 포함해 <불란서 금고-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이하 <불란서 금고>)를 함께하는 선배 배우들이 무대와 연기를 대하는 마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감동이 남다르다. 연습부터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진지하게 작품에 임하는 선배들을 볼 때마다 내가 첫 연극에서 이런 축복을 누려도 되나 싶고. 이젠 어느 현장에 가도 막내가 아닌데 <불란서 금고>에선 막내인 점도 좋다. (웃음)

- 같은 텍스트를 가지고 관객 앞에서 매일 다른 연기를 선보이는 희열도 느끼나.

나와 상대 배우의 호흡 위로 관객의 반응이 더해진다. 한 차원이 더해지니 그 속에서 가본 적 없는 길을 다시 찾아나설 수 있다. “은행은 예금된 돈을 찾으러 오는 사람을 좋아할까요, 은행의 돈을 빌리러 오는 사람을 좋아할까요?”라는 대사의 경우 연습할 때만 해도 특정한 반응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무대에 서니 이 대사만 하면 객석에서 답이 나온다. 관객과 즉석에서 문답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극이 완성된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은 아예 이 대사를 할 때 객석으로 몸을 돌려 관객을 향해 던진다. 어김없이 답이 돌아온다.

-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은행원의 다양한 컨셉을 제안한 에피소드를 전했다. 배우가 배역에 아이디어를 내는 건 당연하지만, 이처럼 무수한 경우의 수를 열어두고 치열하게 캐릭터를 완성해 가는 과정은 오랜 시간 땀 흘릴 수 있는 연극만의 특권일까.

나에게 부족하거나 부재한 부분을 마주하기. 이번 연극 도전의 가장 큰 목표였다. 내가 잘하는 것만 계속 써먹으면 그 자리에서 도태될 게 뻔하다. <불란서 금고>는 장진 감독님만의 색을 온전히 흡수하고자 했다. 설령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감독님의 블랙코미디를 온전히 체화하려고 했다. 감독님이 원하는 바에 도달하려면 온갖 아이디어를 내는 수밖에 없었다. 대본상에서도 은행원이 상당히 열린 캐릭터였다. 해석의 가짓수가 무한대인 캐릭터라 오히려 쉽지 않았다.

- 방송에서 언급한 여러 컨셉 중 108배는 어쩌다 나온 건가.

이 정도까지 막가는 캐릭터라면 뭔가 독특한 점이 있지 않을까. 은행원이 이 지경에 이른 이유를 종교로 연결해봤다. 개신교, 천주교, 불교 다 생각해봤는데 사실 기도는 어쩐지 부동자세라 무대 위에서 임팩트가 크지 않을 것 같았다. 개중 움직임이 많은 절이 낫겠다 싶어 연습실에서 바로 108배를 시작했다. 감독님이 바로 말리시더라. (웃음)

- 캐릭터별로 핀조명을 받아 돋보이는 순간이 존재하지만 <불란서 금고>는 6인의 배우가 이루는 앙상블이 핵심인 작품이다.

어떻게 조화롭게 섞여들어 앙상블을 이룰 수 있을지가 지상 과제였다. 내가 돋보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감독님 또한 “남들이 (팔로 물결을 만들며) 이렇게 움직일 때 네가 (검지손가락을 위로 올리며) 다르게 움직이면 무대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네 시야에 전체 흐름이 들어와 함께해야 해”라고 거듭 주지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흐름을 함께 타는 순간 내 작은 일조로 작품이 더욱 풍성해지는 경험을 했다.

- 프로그램북을 보니 출연진이 하나같이 가장 위험한 캐릭터로 은행원을 꼽더라. <독전>을 제외하면 배우 금새록이 이 정도로 위협적인 캐릭터를 연기한 적이 있나 싶다. 또 <열혈사제>가 코미디 베이스의 드라마였어도 승아(금새록)가 웃음을 전담하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캐릭터든 장르든 이번 작품은 확실히 도전이라 부를 만하다.

하나의 사건만으로 은행원에 대한 인식이 뒤집히지 않나. 또 하나의 모션이 이 사람을 상종하기 어려운 존재로 만들기도 하고. 정말 이 정도로 독특한 배역은 처음이다. 여러 설정을 어느 선까지 표현해야 할지, 이 독특한 행위의 총합을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걱정이 많았다. 더블캐스트인 김슬기 배우에게 고민을 토로했더니 “나는 그냥 다르게 해보려고. 그래야 모두 재미있으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안두호 배우도 매번 “새록아, 재미있게 하고 있어?”라고 물어온다. 나를 위해서도, 관객을 위해서도 이 상황을 그저 즐기기. 내가 새로운 것을 무대 위에서 거듭 찾아야 하는 이유였다. 어느 때보다 안정된 마음으로 연기를 할 수 있어 좋다. 연극을 하니 연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리프레시된다. 만약 작품 속 불란서 금고 같은 보관소가 있다면 그 안에 연기에 대한 초심을 가두고 싶다. 무대에 설수록 연기를 향한 애정이 커진다.

알아서 대본이 들어오는 배우가되고 싶었다

-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목소리가 자동 재생되는 듯한 배우가 있는가 하면 매번 목소리가 낯설게 다가오는 배우가 있다. 금새록 배우는 후자다. 배역 고유의 음색을 매번 새로 개발하는 듯한 인상인데.

목소리로 누군가를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건 한 사람의 음성에 성격과 태도가 묻어나기 때문이다. 인물을 구상할 때마다 음색이나 걸음걸이에 배역의 태도를 담아보려고 연구한다. 혼자서 색다른 높낮이, 톤, 악센트 등을 계속 변주하며 인물에 다가가는 것이다. 일상에서 계속 배역을 붙들어둔다. 예를 들면 집에서 헬스장까지 걸어가는 건 금새록이지만, <사랑의 이해>의 미경이 이 상황이라면 어떻게 걷고 무슨 음악을 들을지에 집중하는 식이다. 나는 얼굴도 꾸미는 방식에 따라 확확 변한다. 촌스럽다가도 세련될 수 있고 푼수데기도 새침데기도 가능하다. 배우로서 내가 지닌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최대한 금새록을 지운 채 언제나 다른 사람으로 비치면 좋겠다.

- <오월의 청춘>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실감나게 소화해 호평받지 않았나. 본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말씨로 격렬한 감정을 쏟아내거나, ‘법학과 잔다르크’답게 가두연설을 하는 순간도 많았다.

대본을 읽자마자 당시 회사에 얼른 오디션을 잡아달라고 요청했던 작품이다. 이야기와 대사에 마음이 갔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수련을 연기하고 싶었다. 오디션을 볼 때만 해도 사투리 소화가 너무 안돼서 불안했다. (금새록의 고향은 대구광역시다.-편집자) 다행히 합격 전화를 받았지만 “대신 사투리 연습을 많이 해오길 바란다”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웃음) 민주를 연기한 김보정 배우가 전라도 출신이다. 보정 배우가 나와 고민시 배우를 위해 1화부터 12화까지의 모든 대사를 녹음해주었다. 덕분에 녹음본을 매일 반복 청취하며 악센트를 익혔다. 가두연설 장면은 두고두고 아쉽다. 살면서 단상 위에 서본 게 처음이었다. (웃음) 실제 민주투사들의 영상을 참고 삼아 본 적 있는데, 그들은 대본을 아래에 두고 연설하더라. 그런데 나는 어떻게 봐도 그저 달달 외운 텍스트를 읊는 느낌으로 연기한 것 같다.

- 이강 작가가 “민주투사도 평범한 우리네처럼 좌충우돌하는 인물”임을 수련을 통해 그렸다고 밝혔다. 답답하고 얄미운 구석이 있지만 그만큼 입체적인 캐릭터였다.

초기 시놉시스에선 수련이 희태(이도현)를 짝사랑하는 설정이었다. 나도 그땐 멜로연기를 거의 안 해봤던 터라 짝사랑 연기가 탐났지. 하지만 <오월의 청춘>이 전하려는 이야기의 방향상 이 설정이 없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쉬웠다. (웃음) 그래서 희태를 대할 때 내심 여지를 남기는 연기를 했다.

- 또 다른 인생작인 <사랑의 이해>를 만났다. 유연석 배우의 유튜브 <주말연석극>에 출연했을 때 상수(유연석)와 미경의 관계를 상징하는 500원 동전을 보자마자 울컥하는 걸 보고 놀랐다.

<사랑의 이해>가 종영한 지도 3년이 넘었는데 동전을 보고 우는 게 말이 되나. 그런데 다시 미경이가 된 듯 동전을 보자마자 마음이 떨렸다. 조영민 감독님이 내가 준비한 미경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게끔 판을 만들어주셨다. 준비해온 걸 모두 쏟는 현장이라 원 없이 미경이를 풀어냈다. <사랑의 이해>는 인생을 건 작품이라 내게도 특별하다.

- 인생까지 걸었나.

알아서 대본이 들어오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매번 힘과 공을 들여 오디션을 거치고 일일이 나를 증명한 뒤 작품과 만나는 배우를 넘어, 좋은 대본들로 연락받고 그 안에서 작품을 선택하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땐 늘 차기작을 찾아 헤매야 했다. 한 작품 끝나면 바로 다음 작품으로 건너가는 안정된 배우 생활을 꿈꿨다. 그런데 <사랑의 이해>는 동료 배우들이 훌륭하고 대본과 원작 소설마저도 완벽했다. 좋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춰진 것 아닌가. 나만 미경을 잘 소화하면 한두 작품은 더 섭외가 올 것 같은 확신이 생겼다. 그러면 인생을 걸 수밖에.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더 노력할 수 없을 만큼 전력투구한 작품이라 후회가 없다.

- 출연진이 <사랑의 이해>를 사랑하는 만큼 이 작품을 인생 드라마로 꼽는 시청자들이 많다.

한창 드라마가 방영 중일 땐 내용이 답답하다는 반응도 많았는데 오히려 종영 후에 <사랑의 이해>에 대한 리액션을 많이 받는다. 군대에 있는 시청자들한테 그렇게 연락이 온다. 왜 입대한 남성들이 <사랑의 이해>에 빠지는지 고민해보기도 했다. 아마 가장 사랑이 중요한 시기에 놓인 분들이라 현실적인 멜로드라마에 감응하나 보다. <사랑의 이해>팬들에겐 일정한 주기가 있다. 1년에 꼭 두번씩 인스타그램 DM 창이 불탄다. 열어보면 전부 <사랑의 이해>에 대한 이야기다.

- 미경은 뭐든 베푼다. 타고난 선의도 있지만 남들이 그만큼 자신에게 애정을 쏟으며 결핍을 충족해주길 갈구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미경이 안쓰럽지는 않았나.

미경이가 자기 결핍을 받아들이는 성장형 캐릭터라 좋았다. 자기 결핍을 상수로 채우려 했고, 상수를 포기하지 못해 집착적인 면모도 보였다. 하지만 끝내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많은 걸 내려놓는다. 미경이는 분명 자기를 좀더 사랑할 줄 아는, 큰사람이 됐을 것이다. 미경이를 연기하며 인간 금새록도 많은 걸 배웠다. 어떤 상황에 이르면 양보하며 누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미경이를 이해한다. 미경이에게 공감도 많이 했다.

금새록을 채우는방법

- 근래 유튜브 채널 <금새록 필름>을 론칭했다. 여행과 전시 관람이 주요 콘텐츠다.

신인 시절 한 작품을 끝내면 차기작이 정해지기 전까지 반년씩 쉬었다. 그때부터 공백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내게 중요한 화두였다. 연기를 하든 예능에 출연하든 내 안에 축적해둔 금새록의 일부를 깎아 쓴다. 그러니 마모된 부분을 공백기에 충당하지 않으면 활동을 이어나가기 어렵다. 그 방편이 여행과 전시 관람이다. 삶의 모든 순간을 배우의 자양분으로 활용한다. 그래서 친구나 다른 업종의 사람을 만나면 질문이 많아진다. 나와 다른 경로를 걷는 사람들의 업무 환경, 연애 방식을 계속 묻고 내 안에 새기며 언젠가 연기할 또 다른 사람의 빈칸을 조금씩 채운다.

- 신인 시절 인터뷰를 읽으니 직접 쓴 시나리오도 있다고 하던데.

아무도 나를 안 써주더라. 이럴 바에야 연기하고 싶은 스토리와 캐릭터를 만든 뒤 내가 나를 캐스팅할 요량이었다. 연남동에서 단편 시나리오 워크숍도 들었다. 몇편을 써두었는데 어떻게 잘 풀려 계속 작품을 찍다보니 보류 상태다.

- 단독 주연 영화 중엔 지지난해에 개봉한 <카브리올레>가 있다. 촬영이 2020년에 이루어졌던 걸 생각하면 커리어 초기에 단독 주연작을 찍은 셈이다.

33회차를 한달 반 안에 서둘러 찍은 영화였고, 내가 모든 장면에 출연한 영화였다. 당시 연기를 다시 보면 아쉽고 부끄럽지만 이 작품을 거치지 않았다면 <오월의 청춘> <사랑의 이해>는 없었을 것이다. 카메라 앞에 최대한 서며 많이 부서지고 부딪혀야 연기가 는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류경수 배우를 잊을 수가 없다. 동갑인데 연기를 압도적으로 잘해서 매일 현장에서 “너는 왜 연기를 잘하는 거야?”라며 질문했던 기억이 난다.

- 우리가 당장 만날 수 있는 금새록의 영화 차기작은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완성된 영화를 처음 봤는데, 좋던걸. (웃음) 실연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를 보자마자 ‘흔적’이란 단어를 연상했다. 살면서 남긴 여러 흔적, 그리고 그 흔적에 담긴 향수로 인해 여운이 짙은 영화다. 기대해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