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죽음을, 반대로 가족 모두가 사망한 뒤 세상에 혼자 남은 스스로의 모습을 그려보는 아이. 암 투병 중인 아버지를 둔 후키(스즈키 유이)는 미래만큼이나 생의 끝자락에도 관심이 많다.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었던 하야카와 지에 감독의 <르누아르>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거쳐 4월22일에 정식 개봉했다. 데뷔작 <플랜 75>에서 75살 이상의 고령자에게 국가가 죽음을 지원하는 정부의 가상 정책을 소재로 삼았던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르누아르>에서 아이의 시선으로 타인의 죽음과 고독을 바라본다. 칸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씨네21>과 만났던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개봉을 기념한 내한 인터뷰에서 더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칸영화제에서 <르누아르>가 첫선을 보인 지 1년이 되어간다. 영화와 함께 많은 이들을 만났을 텐데 그간의 소회를 들려준다면.
원래 리뷰를 잘 보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일본 개봉 당시에 배급사를 통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영화인지 잘 이해가 안 간다’는 의견이 많다더라. 무척 놀랐다. 직관적이고 알기 쉬운 콘텐츠가 요구되는 시대이다보니 <르누아르>가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인가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여러 영화제를 다니면서 <르누아르>가 모두가 즐길 영화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이고 내가 만드는 작품의 스타일이 그렇다는 걸 깨달았다. 그 뒤로 1년간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 아기들이 우는 장면이 녹화된 비디오를 후키가 바라보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후키의 상상 같기도, 현실 같기도 한 장면인데.
<르누아르>는 후키가 우는 사람들을 목격하는 작품이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우는 아이들의 비디오를 보고, 자신의 상상 속 장례식에서 우는 반 친구들, 병원에서 아이를 잃고 통곡하는 어머니, 후키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우는 영어 선생님을 차례로 마주한다. 막상 후키는 그들이 우는 이유가 잘 와닿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러다 결말부에 이르러 비로소 눈물을 흘리는데, 그때의 후키 모습이 작품의 테마와 다름없다.
- 후키는 아버지의 죽음을 겪고도 울지 않는 스스로를 이상하게 여기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아직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나이가 아닌가 싶다. 몇년이 지난 후에야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개인적인 경험을 덧붙이자면 내가 10살 때부터 20살이 될 때까지 아버지가 투병 생활을 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따뜻하게 대하는 딸이 아니었고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오랜 기간 죄의식을 안고 지냈다.
- 후키는 자신의 에세이에 ‘고아가 돼보고 싶다’고 썼다.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자신보다 부모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미리 그 상황을 겪고 느낄 감정을 알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럴 수도 있고 단순한 죽음이나 비극의 여주인공에 대한 동경, 소통이 원활하지 않는 부모님으로부터 도망쳐 다른 것을 찾고 싶어 하는 마음 등 여러 가지가 섞여 있지 않을까 싶다. 고아가 등장하는 책이 많다 보니 그걸 읽고 체험해보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고.
- 영화의 배경이 된 1980년대 일본을 어떻게 기억하나.
버블경제 시기라 경기가 좋았고, 미래가 밝다고 여기며 모두가 필사적으로 일했다. 아직 인터넷이 없을 때라 타국의 소식을 잘 알지 못했고 다들 지금보다 훨씬 순수한 시절이었다.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TV에서 초능력을 다룬 프로그램들이 방영되곤 했는데 다수의 사람들이 그 내용을 믿었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웠으나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간의 유대감은 약해지고 고립감은 심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 폰팅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그런 시대상이 읽혔다. 폰팅을 악용하려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외로움에 지쳐 누군가와의 연결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연인, 솔메이트를 갈구하는 감정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해줄 거라 생각한다. 후키가 폰팅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계속 듣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도 있겠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상당한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해도 후키는 무척 외로운 아이였을 것이다.
- 후키의 엄마인 우타코(이시다 히카리)는 어떤 의미에선 영화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인물처럼 비친다.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다. 계속 남편과 딸에게 짜증내고 다른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다 비참함을 느끼기도 하는, 한심한 구석이 있고 사는 데 서툰 면을 지닌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면이 굉장히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그런 어머니 상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건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다. 20대에 <르누아르>를 만들었다면 우타코를 아주 못된 사람으로 그렸을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여성이 40대에 접어들며 느끼는 혼란함이나 인간이 지닌 찌질함, 유약성 같은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게 됐고 우타코와 같은 캐릭터도 탄생할 수 있었다.
- 죽음과 외로움을 궁극적으로 어떻게 다루고 싶었나. 함께 힘듦을 극복하고 이겨내자는 단순한 결말로는 이어지지 않는데.
어릴 때부터 유달리 외로움을 많이 탔다. 점점 자라고 ‘고독’이란 단어를 알게 됐을 때 이거다 싶었다. 그 뒤로 인간의 고독을 다루거나 그런 사람이 등장하는 책, 영화를 보면서 크게 공감했고 구원받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계속 영화를 보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내가 만든 영화 역시 마찬가지로 외로움을 느끼는 누군가가 공감할 매개체가 되길 바랐다. 나처럼 느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곤 하지 않나. 고독과 고독은 서로 이어지기 때문에 <르누아르>가 외로운 이들을 치유할 영화가 되길 바랐다.
- 차기작 계획은.
이제 막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한 단계다. 그 영화도 ‘인간이 과연 타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명제를 안은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 <르누아르>와 밑바탕에 흐르는 메시지는 유사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