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칸영화제에 다녀온 뒤 1년이 지났다. 수입을 확정짓고 개봉하기까지의 소회를 들려준다면.
개봉에 필요한 한 사이클을 꽉 채워 보냈다. 모든 선택이 초행길이라 다른 수입배급사들보다 진행 속도가 늦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린나래미디어에서 도와준 덕에 시간을 많이 단축했다. 영화 수입 프로젝트 자체가 <빠더너스> 채널에 영상을 업로드하는 것과 템포가 완전히 달랐다. 유튜브 작업이 BPM이 빠른 음악이라면 영화 수입은 BPM이 굉장히 낮고 천천히 흐르는 음악처럼 느껴졌다.
- 영화를 수입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나.
유튜브 영상이 내가 직접 만든 요리라면, 영화를 수입하는 과정은 내가 발견한 맛집을 소개하는 것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를 꾸준히 만들면서도 맛집을 소개하는 리포터 역할을 병행해보고 싶었다. 맛집에서 음식을 처음 맛볼 때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사진을 첨부하고 표현을 가다듬는 과정도 재밌을 것 같았다. 준비하면서 그린나래미디어와 몇 차례 미팅을 가졌고 “칸영화제 비행기표부터 예매하셔야겠네요”라는 말을 듣고 곧바로 티켓을 예매했던 기억이 난다.
- 수입을 상정하고 영화 볼 때 감상이 어떻게 달라지던가.
영화에 빠져야 할 요소들을 ‘not to do’ 리스트로 정리해서 고려하며 봤다. 단순하게 말하면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잔인한 작품은 제외했다. 처음 영화를 수입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도 나는 오마카세나 파인다이닝이 목표가 아니었다. 내가 만들 순 없지만 정말 좋아하는, 먹어보면 바로 아는 그 간장계란밥을 찾고 싶었다. 문제가 될 요소가 없고, 취향의 상하위 10%, 왼쪽·오른쪽 10%를 덜어내고 중간의 것 중 제일 세련되고 재밌는 작품을 들여오고 싶었다. 내 가족이 먹을 요리를 찾아본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골랐다.
- <빠더너스> 콘텐츠를 제작할 때도 내용을 꼼꼼히 체크하는 것으로 안다.
올바름을 추구한다기보다는 겁이 많아서 그렇다. 내가 만드는 대부분의 영상이 시청자를 순수하게 웃기는 게 목적이라 더 조심한다. 또 내가 재밌다고 수입해 소개하는 영화의 경우 인물의 특정 행동이나 대사를 따서 ‘이게 문상훈의 신념인가봐’라고 곡해될 수 있기에 더 신경 썼다.
- 칸영화제 외에도 LA·홍콩 필름마켓에 전부 다녀왔던데 애초 세곳을 방문하는 것이 목표였나.
처음엔 세 군데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칸영화제를 가보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는 비대면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더라. 또 다른 기회가 닿을 수 있으니 다른 데도 가보자고 의견이 모였다. 다만 영화제가 아니라 마켓만으로도 충분하고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목적과 의도를 영상에서 더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칸영화제는 3대 영화제라고 불리는 상징적인 곳인 만큼 기자, 감독, 배우, 업계 관계자들이 배지 목걸이를 매고 다니는 현장의 분위기를 직접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LA는 할리우드의 본거지라 칸과 분위기가 완전히 다를 테고 내가 좋아하는 시리즈, 영화가 LA를 배경으로 한 곳이 많아 좋은 코미디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택했고, 홍콩은 유럽과 미국에 이어 아시아 필름마켓도 가고 싶어 골랐다. 경험이 쌓이니 요령이 생겨서 작품이 별로다 싶으면 체력을 아끼기 위해 과감히 중간에 나왔다. LA나 홍콩 필름마켓에서도 <너바나 더 밴드>와 비슷한 작품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무심코 들어간 가게가 그 동네 최고 맛집이었다는 것을 LA, 홍콩 마켓을 다녀온 뒤에 더 크게 느꼈다.
- <너바나 더 밴드>는 어느 정도 봤을 때 ‘이 작품이구나’ 싶던가.
맷이 쿵쾅대며 계단을 내려온 뒤 카메라가 갑자기 줌인하고 빠지는 초반부 시퀀스부터 느꼈다. 완전히 결심하기까지는 이후로 10분 정도 더 필요했지만. 칸영화제 마켓에서 소위 말하는 유튜브스럽게 찍힌 이 영화를 보고 운명적이라고까지 느꼈다. <너바나 더 밴드> 앞뒤로 아트하우스 영화와 무게감 있는 작품도 봤는데, 그에 비해 캠코더로 거칠게 찍은 이 영화의 인상이 굉장히 좋게 남았다.
- 맷과 제이가 행인들에게 즉흥적으로 말을 거는 상황도 전부 영화의 일부가 된다. <빠더너스> 유튜브에서 종종 봐온 모습이기도 한데.
칸영화제에 출국하기 전 홍익대 축제에서 실제로 그렇게 촬영을 했다. 인파를 배경으로 우리끼리 소곤거리는 장면을 그대로 썼는데 <너바나 더 밴드> 트리비아를 보니 이 작품도 전부 그렇게 찍었다더라. 나중에 촬영 마치고 시민들에게 노출 허가를 받으면 그대로 내보내고 안되면 모자이크를 하고. 즉흥 신을 넣고 만족스러웠던 때가 많아서 <너바나 더 밴드>에 더 공감이 갔다.
- 그 밖에 또 어떤 장면이 좋던가.
CN타워에서 맷과 제이가 떨어질 때. 이미지도 이미지지만 와이어리스 마이크 소리가 뚝뚝 끊기는데 촬영을 해본 사람들은 무조건 아는 포인트다. 제이가 맷에게 “사실 널 떠나려 했었다”고 고백하는 장면도 좋았다. 대부분 그런 순간엔 과거 회상 신을 넣으면서 짠한 우정을 강조할 텐데 이 영화에선 맷이 그러데이션으로 화를 내며 허공에 주먹질까지 한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의 감정표현법이다.
- 맷 존슨 감독, 제이 매캐럴과 따로 연락도 주고받았나.
인스타그램 팔로만 하고 따로 뭘 하진 않았다. 빠더너스의 수입작을 최대한 서프라이즈로 공개하고 싶어서 조심스러웠다. 대신 LA에서 <너바나 더 밴드> 맷 존슨과 제이 매캐럴 두 사람의 GV에 참석했는데 그때 “알러뷰!”라고 소리쳤다.
- 영화의 시놉시스를 제목의 부제로 붙였다. 아마 이보다 더 긴 제목을 가진 작품이 다시 나오긴 어려울 것이다.
원제는 <너바나 더 밴드 더 쇼 더 무비>다. 2017년 캐나다에서 유행한 <너바나 더 밴드 더 쇼>라는 시트콤이 바탕이 된 작품이고, 말하자면 ‘<거침없이 하이킥!> 더 무비’ 같은 거다. 주인공들이 공연하려는 리볼리는 KT&G 상상마당 같은 곳이다. 이런 배경을 알면 곧바로 와닿겠지만 한국 관객에겐 이해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너바나’가 전설적인 밴드 이름이다보니 당장 우리부터도 너바나 전기영화인 줄 알았다. 그래서 밴드 얘기라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공연을 한다는 건지 만다는 건지 원제만으론 알 수 없고 아는 만큼 더 재미를 느낄 작품이라 아예 시놉시스를 길게 부제로 넣어버렸다. ‘제목보다는 재밌습니다, 한번만 더 쳐다봐주세요’ 하는 의도가 강했다.
- 가수 타블로와 그의 딸 하루가 번역가로 이름을 올렸다.
같은 맥락으로 자막도 더 친절하게 가고 자막으로 줄 수 있는 재미를 극대화하고 싶었다. 일상적이지만 얕지 않은 감정을 잘 전달하고 행간의 의미, 정적까지 짚어줄 분이 누가 있을까 하다 타블로씨를 떠올렸다. 수소문 끝에 연락처를 받아 부탁드렸는데 다행히 하겠다고 하셨다. 80년대생, 90년대생, 00년대생이 쓰는 표현들이 다 다르니 하루가 번역을 같이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셔서 좋다고 답했다. <마션>처럼 전문 지식이 필요한 작품이면 어렵겠지만 <너바나 더 밴드>가 영화, 음악, 꿈을 주로 이야기하는 작품이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 만약 영화처럼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와 미래, 어디로 가보고 싶나.
가더라도 1년 안쪽의 과거로 가고 싶다. 지난해 제주도에 놀러 갔었을 때가 정말 좋았는데 그때라든지. (미래로는 가고 싶진 않나.) 그렇다. 그래서 재미 삼아 점을 보는 것도 잘 안 한다. 고2 때 어머니가 나에 관한 점사를 받아오셨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몇살에 무슨 띠의 누구와 결혼하며 애가 몇명인지 등이 전부 적혀 있었다. 그 내용이 계속 의식돼서 점사를 모르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인생을 스포일러 당하는 기분이라 미래로는 전혀 가고 싶지 않다.
- <너바나 더 밴드>가 잘된다면 수입을 더 이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는지.
정말 잘돼야 고려해볼 것 같다. 이만하면 후회는 없다. 보람을 느끼는 게 손익분기점을 넘겼다는 결과보다 앞서기 때문에 벌써 본전을 챙겼다고 느낀다. 나중에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행복함을 느낀 뒤에야 한번 더 하고 싶다고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 영화 연출에는 관심 없나.
언젠가 해보고 싶지만 지금 1순위는 아니다.
- 어떤 관객에게 <너바나 더 밴드>를 추천하고 싶나.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초기작들 <새벽의 황당한 저주> <지구가 끝장 나는 날>이나 <트로픽 썬더> <슈퍼배드> 같이 등장인물이 악당은 아닌데 지질하고, 못났고, 답답하고, 애틋하면서 재밌고 이거 뭐야 싶은 영화들이 요즘에는 별로 개봉하지 않는다. 해외 마켓에 물어봐도 실제로 코미디영화가 많이 없다더라. 코미디는 이제 후추 같은 조미료라 로맨스, 좀비물에도 당연히 가미되어 있다는 거다. 그렇지만 <너바나 더 밴드>는 명백한 ‘후추맛 라면’, 코미디영화다. 이런 영화를 좋아하고 기다려온 분들이 많이 봐줄 거라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너바나 더 밴드>에 개인적인 별점과 20자평을 매긴다면.
★★★★★, 반드시 가장 친한 친구와 큰 화면으로 볼 것.
문상훈이 꼽은세편의 코미디영화
★<반칙왕>
직장에서도, 일상에서도 눈치보며 비실비실하게 생활하는 대호(송강호)가 프로레슬링을 계기로 자신을 무시하고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통쾌한 한방을 날린다는 메시지가 좋았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대호가 은희(김가연)에게 고백한 뒤 “지금 술 드셨어요?”라는 답변을 듣고 도망갈 때. 때마침 백현진씨가 부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 흘러나오는 것도 마음에 든다.
★<스쿨 오브 락>
<반칙왕>과 비슷한 결의 작품이라고 느낀다. 듀이 핀 선생님(잭 블랙) 역시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밴드에서 쫓겨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이제 난 다 커서 어른으로서 누군가를 이끌어줘야 하는 위치에 있지만 가끔 영화 속 선생님과 같은 존재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 항상 아이들에게 이입해 이 영화를 본다.
★<우아한 세계>
‘제가 웃긴 이야기 해드릴까요?’로 시작하는 농담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대치를 낮춰도 모자랄 판에 한껏 올리며 시작하는 건 농담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이들이 시도하는 방법이다. <우아한 세계>는 그 정도를 무척 잘 지킨다. 심각한 장면이니 웃지 말라는 태도를 취하는데 그래서 더 웃기다. 마지막에 인구(송강호)가 라면 먹는 장면에선 나도 울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