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설렌다. 아니 떨린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낯설고 생경한 세계로 발을 디딘다는 건 기대와 불안의 외줄 위로 올라가는 일이다.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줄 위를 내딛는 걸음걸음, 혹여나 실수해서 떨어지지 않을까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돌이켜보면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때만큼 그 일에 진심을 다했던 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 양, 실수 한번 하면 마치 모든 게 끝날 것처럼 집중하고 쏟아부었던 첫걸음들.
다시, 지금 와 돌이켜보면 뭘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기도 하다. 완벽하다 믿었던 것들도 지나고 보면 어설프기 그지없고, 실수하면 세상 끝날 것 같았지만 실은 그리 대단치 않은 한 걸음에 불과했던 순간들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걸음, 시작이 이토록 소중한 건 거꾸로 그때 그 순간 모든 걸 쏟아부었기 때문일 것이다. 할 수 있는 최선을, 진심을 다한다는 것. 익숙해질수록 희미해지는 감각이다.
미쟝센단편영화제는 (이런 표현이 다소 민망하고 우습지만) 나의 GV 진행 데뷔 무대였다. 갓 영화 글을 쓰기 시작했던 내게 영화에 대한 소개 글과 관객과의 만남을 경험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제야 내가 영화 관련한 일을 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때만큼 한편의 글에 정성을 쏟았던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대다수라 찾아볼 자료가 없어 짧은 영화를 수십번 돌려보며 글을 쓰고, 질문을 준비했다. 어설퍼 보이고 싶지 않아서 더 어설펐던 글과 말들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민망하고 모자라고 부끄러운 기억이다.
얼마 전, 한 영화의 GV를 진행하려고 참석했을 때 감독님이 오랜 지인을 만난 것처럼 반갑게 맞아주었다.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감독님은 슬며시 다가와 친근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기자님, 저 기억 안 나시죠? 제 첫 단편영화도 기자님이 GV 진행해주셨어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주마등이 스치듯 떠올랐다. 얼굴을 잘 기억 못한다는 핑계도 댈 수 없었다. 미흡한 준비에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나를 보고 감독님은 다정한 한마디를 건넸다. “그때 정말 자신이 없었는데 그 리뷰가 힘이 됐어요. 애정을 가지고 영화를 봐주셨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천재와 범재, 거장과 보통 사람 가릴 것 없이 공평한 것이 하나 있다. 첫 단편, 첫 상영, 첫 대화. 우리는 모두 한때 신인이었고 누구나 처음을 겪는다. 한없이 모자라고 부끄러웠던 내 글이 누군가에게는 쓸모와 의미로 기억되었다는 걸 10년이 훌쩍 지난 뒤에야 알고 나서, 새삼 첫 데뷔의 떨림을 되돌아본다. 서로의 미숙함마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첫걸음에만 몰두했던 시절의 에너지. 올해 미쟝센단편영화제에 출품된 작품과 감독들을 보며 그 시절에만 허락된 떨림을 마주한다. 흐뭇하고, 소중하고, 부럽고, 조금은 걱정스럽다. 부디 서로의 시작을 응원할 수 있을 만큼이라도 작은 여유를 챙기길 바라며, 여러분의 첫 경험을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