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5살이 된 딸 덕분에 아침 루틴이 생겼다. 아이가 잠드는 시간보다 퇴근 시간이 늦어진 후로는 따로 자는 중인데, 새벽 6시만 되면 어김없이 꿈나라에서 탈출해 내 침대로 달려온다. 출근 전 2시간 정도가 하루 중 딸아이와 온전히 보내는 유일한 시간인지라, 비몽사몽 중에도 눈 비비며 일어나 함께 놀려고 노력 중이다. 고등학생 이후 이렇게 성실하고 일관된 아침 생활은 처음이다.
같이 논다고 해도 별로 대단할 건 없다. 그냥 앞에서 앉아 요구하는 대사와 연기를 해주면 끝이다. 딸아이는 요즘 한창 역할놀이에 빠져 있는데, 눈 뜨자마자 시작하는 놀이를 보면 전날 밤 어떤 책을 읽으며 잠들었는지가 투명하게 보인다. 오늘은 신데렐라가 라푼젤의 머리를 타고 마녀의 탑을 올라가 백설 공주가 먹을 사과를 뺏어 먹는 스펙터클 활극이다. 몇 가지 동화가 섞이고 엉망진창이 되더니 어떻게든 마무리되는,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세상 유일한 공연. 내가 언제까지 이런 행복한 인형극에 참여할 수 있을까 싶어 벌써부터 초조하다.
아침마다 반복된 역할극의 무대 바깥은 실로 고요하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엄마를 깨울까 소곤소곤 대사를 읊조리다보니 밖에서 보면 심심하기 이를 데 없다. 딸아이와 나는 같은 방에 있지만 다른 시공간을 누린다. 역할에 몰두한 그녀는 내겐 보이지 않는 다른 세계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딸아이의 눈엔 총천연색 특수효과가 동원된 한편의 영화 같지 않을까. 어릴 적 나도 겪었을 그 상상력의 시간이 이제 까맣게 지워져 기억나지 않는다. 어렴풋이 짐작은 가는데 공감은 어려운, 그 시절에만 허락된 특권. 픽사의 <토이 스토리>는 그 보편적이고 특별했던 상상력을 스크린에 되살려낸 에너지로 장장 31년을 최고의 애니메이션 중 하나로 군림해왔다.
이 전설적인 작품의 속편이 5번이나 제작된 이유는 단순하다. (기본적인) 성공이 보장된 IP이기 때문이다. 매번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좋을 만큼 완벽한 마무리와 더할 나위 없는 작별 인사를 마쳤음에도, 굳이 되살려야 했던 건 순전히 상업적인 필요와 어른의 사정 때문이다. 하지만 <토이 스토리> 시리즈가 진정 놀라운 건 그렇게 꾸역꾸역 돌아온 작품이 또 매번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소중한 장난감들이 어디서 이렇게 계속 나오나 싶을 만큼, 매번 새로운 시야로 시대에 걸맞은 질문을 던진다. <토이 스토리 5>가 던지는 질문, 아날로그 장난감과 디지털 친구의 대결은 꽤 오래되고 반복된 화두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그게 <토이 스토리>의 무대를 빌린다면 더욱 그렇다.
딸아이에게 TV를 되도록 보여주지 않으려 애쓰는 편이다. 주말에만 보여주기로 약속했는데, 그래서인지 주말 아침이면 거의 넋이 나간 사람처럼 TV에 집중한다. 그런 딸아이를 볼 때마다 걱정스러울 때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일요일 아침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려고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났던 기쁨과 설렘을 지금도 기억한다. 어쩌면 아이를 향한 걱정이란 내가 세워둔 일방적인 세계에 아이를 가두는 일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토이 스토리 5>를 보며 새삼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 채 놓치고 있는 순간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 기분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딸아이에게 <토이 스토리> 1편을 틀어주었다. 딸아이는 우디와 버즈가 무섭고 이상하다며 울었다. 역시, 알다가도 모를 미지의 세계. 이 시리즈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