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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월의 외로워 말아요 눈물을 닦아요] 빛이 무사히 켜지기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켜주고 있는지

숨 돌릴 틈도 없는 평일을 보내고 한시름 놓는 주말이 되면 침대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저도 압니다만, 가끔은 공연장을 떠올려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 여러분의 휴일을 조금이라도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공연예술가들은 지금도 분주히 무대를 꾸미고 있답니다. 저도 지난 주말에 관객 여러분을 맞이할 채비를 하며 여러 공연장을 오갔습니다.

금요일에는 제가 프로듀싱을 맡은 하은빈 정규 1집 발매 기념 공연*이 있었습니다. 이 무대에서 저는 전반적인 편곡과 여러 가지 연주를 담당했는데요, 은근하게 좋았던 점은 노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노래는 제가 제일 잘해야 하는 일, 즉 가장 힘든 일이기에 그것을 하지 않아도 무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묘한 해방감을 느꼈던 것을 고백합니다. 그렇게 물러나자 보이는 것은 노래하는 사람의 컨디션이었습니다. 동선과 조명을 맞추느라 리허설에서 몇 시간을 노래한 은빈은 쉴 틈도 없이 대기실에서 무대의상으로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은빈은 노래와 낭독으로 단 한번뿐인 그 시간을 채우게 됩니다. 그녀는 작은 수첩에 빼곡히 채운 멘트를 정리하며 목을 풀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공연의 흐름을 머릿속으로 되짚어보고 있었습니다. 그 숨 막히는 느낌을, 초조하게 차가워지고 뜨거워지는 그 상태를 잘 알고 있는 저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에게 무척 필요하지만 스스로는 흡수할 수 없는 것을 다른 이에게 건네며, 부디 당신은 잘 먹어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걸 가리키는 단어가 세상 어디엔가 있을까요? 무대에 오를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 건넨 건 제 연주자 멤버들이 제게 지겹도록 해주던 그 말이었습니다. “관객들은 은빈이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을 거예요.”

다음날 토요일에는 출연자 전원이 여성 예술가들로 꾸려진 3일간의 축제, 영희 페스티벌**의 둘째 날 공연이 있었습니다. 저는 멤버 5명 모두 여성인 김사월 밴드에서 김사월을 맡았습니다. 전날의 경험 때문인지 공연장에 도착해 멤버들의 얼굴을 보자 괜스레 애틋한 기분이 들었습니다만, 그들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과자와 김밥을 펼쳐놓고 먹으며 소파에 기대 서로를 놀려대기 바빴습니다. 어쩐지 안심이 되었습니다. ‘이래야 우리 밴드지….’

지금까지 우리는 정말 다양한 곳을 함께 달려왔습니다. 거센 물살 속에서도 태연한 오리배처럼 보이도록 정신없이 페달을 밟는 날도 있었고, 조금만 힘을 줘도 부드럽게 앞으로 미끄러지는 좋은 자동차를 탄 것 같은 날도 있었습니다. 가끔은 추운 날씨도 있었지만 우리가 따뜻하게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영희 페스티벌에는 펄펄 끓도록 뜨겁게 환호해주는 관객들이 있었습니다. 그 소중한 열기를 잃지 않으려 40분을 불태우는 마음으로 연주했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대기실에 돌아왔지만 울렁이는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멤버들을 보내고도 흥분감을 주체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서성이다가 페스티벌의 총괄 기획자이자 싱어송라이터 선배인 오지은님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선배, 어디세요… 저 붙잡고 울고 싶어….”

영희 페스티벌에서는 자신이 힘들었던 일을 다른 여자들에게는 시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만든 흔적들이 자꾸만 발견됩니다. 지은님이 이 축제를 성사시키기 위해 올해 초부터 바쁘게 피워낸 빛들을 떠올리니 아득해져 왔습니다. 한걸음에 대기실로 달려와준 선배를 끌어안고 저는 이렇게 전폭적으로 사랑해주시는 관객들을 만난 것에 대해 울고 웃고 화내며(?) 토로했습니다. 사실 선배가 만들어낸 것이 뭔지, 그게 얼마나 귀한지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보따리를 풀다가 문득 마지막 순서인 이상은님의 공연을 함께 보자며 우리는 공연장으로 달려나갔습니다. 우리가 앉은 2층 맨 뒤쪽 자리에서는 1천석 규모의 홀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모습이 드넓게 보였습니다. 공연 마지막 곡으로 흘러나오는 <언젠가는>의 전주. 뭉클하다가 울컥하다가 우리는 결국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엉엉 울었습니다.

일요일의 영희 페스티벌에는 싱어송라이터 이설아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앞선 두번의 공연에서 건반 연주자로 제 곁을 지켜주었는데요, 이날은 제가 그녀의 무대에 게스트로 참여했습니다. <친구야>를 부르는 도중에 무대에 깜짝 등장해서 노래를 함께하기로 했거든요. 돌이켜보니 우리는 사흘 꼬박 같은 무대에 서 있었네요. 다른 이들의 무대를 빛내주느라 이틀 동안 힘을 쓴 설아에게 컨디션 괜찮냐며, 긴장되지는 않냐며 안부를 묻는데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표정으로 그녀가 말했습니다. “사월, 나 사실 조금 떨려….”

무대 아래에서 흑백 모니터를 바라보면, 먼저 무대 위로 올라가 있는 설아의 모습이 비칩니다. 동시에 4분할된 다른 화면들에는 관객석과 공연장 입구가 조악한 화질로 비치고 있습니다. 마침 다른 쪽의 공연이 끝난 건지, 관객들이 하나둘 문을 열고 설아의 공연장으로 들어옵니다. 서서히 객석이 채워지는 걸 숨죽여 지켜보면서 영희 페스티벌 관객들이 무대 위로 보내주는 뜨거운 사랑을 설아가 다 받아낼 것이라고, 당신은 오늘 꼭 사랑받을 거라고 확신하며 두손을 모아 꼭 쥐었습니다.

*하은빈 정규 1집 《등》 발매 기념 공연 2026년 6월12일, 벨르

**영희 페스티벌 2026년 6월12~14일, 마포아트센터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