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여름은 장르영화의 계절이다. ‘여름은 호러’라는 공식은 이제 옛말이 됐고, 이제 여름은 장르다. 올해 6월 미쟝센단편영화제로 시작하여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BIFAN)로 이어지는 장르 축제의 사이클이 완성된 덕분에 다채로운 장르영화의 한상 차림을 만끽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극장가에서 ‘장르’는 마치 마법의 열쇠처럼 유통된다. 이걸 넣으면 영화가 재미있게 탈바꿈할 뿐 아니라 대중성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의 재료. 모두가 장르를 말하고, 다들 어렴풋이 이해하지만 각자 말하는 장르의 실체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또렷하게 보이지만 손에 잡히진 않는, 그래서 더 매혹적인 무언가.
학교에선 이렇게 배웠다. 장르는 관객, 제작(스튜디오/산업), 비평의 꼭짓점에서 출발하여 교차하는 익숙함이라고. 달리 표현하면 관습에 대한 학습이라고 해도 좋겠다. 영화학자 톰 라이얼부터 시작된 장르 이론에 따르면 제작자가 패턴을 만들고, 관객이 학습하여 받아들이고, 비평가가 명명하여 비로소 장르가 탄생한다고 설명한다. 설득력 있는 분석이지만 즉각적으로 와닿기엔 언어의 거리가 상당히 멀다. 이럴 땐 최전선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혀온 이들의 체험에서 지혜를 구해야 한다.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BIFAN에서 준비한 한국 장르영화 33선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사실 방대한 역사 속 위대한 걸작들을 33편으로 추린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변화와 궤적을 확인하는데 이만한 방식도 없으리라 자신한다. 그게 <씨네21>에서 김지운, 류승완, 장재현 감독을 한자리에 모아 이들의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한 이유다. BIFAN의 30년을 축하하며 한자리에 모인 김지운, 류승완, 장재현 감독의 대화 속에는 한국 장르영화의 실체가 깃들어 있다. 영화 속 한 장면에 매료되었던 순간이 이들을 어디까지 이끌었는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것 없이 이들이 보고 듣고 공유해온 순간들이 곧 장르다. 장르에 매료된 창작자들이 찍은 점은 물속에 떨어뜨린 잉크 방울처럼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퍼져나가 21세기 한국 장르영화의 역사가 되었다. 첫걸음은 명확한 의도가 있었을지 몰라도 오늘날의 결과로 이어진 건 그저 우연의 산물이다. 다만 바람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어도 돛을 가지고 배의 방향은 조종할 수 있다는 말처럼, 한국 장르의 스페셜리스트들이 나눈 솔직한 대화 속에서 우리가 망각했던 본질을 마주한다.
장르가 무엇이냐고 지금 내게 묻는다면 그저 ‘즐거움’이라 답하겠다. 자신이 매혹된 것들을 지극히 사랑하여, 만지고 비틀면서 가지고 놀다가 끝내 새로운 형태로 조립하는 것. 재료는 익숙한 가운데 전에 없던 형태에 다다르는 것. 그리하여 또다시 새로운 즐거움의 씨앗을 심는 것.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대화를 나누며 같이 만들어가는 순수한 재미.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지극한 사랑. 이것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하나의 선 위에 기록된 역사가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는 원형의 놀이다. <씨네21>은 이번주도 즐거움에 매료된 사람들의 소식을 전한다. 송종희 분장감독의 30년, ‘니가 좋은’ 대세 배우 오정세의 흥겨운 기세도 그중 하나다. 장르영화들은 이미 축제 준비를 마쳤다. 탈출구 없는 즐거움의 나선 위에 뛰어들지 멀리서 구경만 할지,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