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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영화를 굳이 글로 쓰고 읽는 사람들을 위한, (이번주의) 한권

영화는 인연이다. 클레베르 멘도사 필류 감독을 제대로 알게 된 건 무주산골영화제를 통해서였다. 무주산골영화제는 해마다 동시대 시네아스트를 선정해서 전작을 틀고 한편의 책으로 엮어낸다. ‘설명하기 어려운 괴력의 영화’라는 소문으로 먼저 만난 <바쿠라우>(2019)가 클레베르 멘도사 필류 감독과의 첫 만남이었다. 2021년 무주산골영화제에서 멘도사 필류를 동시대 시네아스트로 소환하지 않았다면 그의 전작을 순서대로 찾아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이후, 나는 이 감독의 다음 걸음 걸음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언어의 그물에 포획되지 않는 대상을 굳이 설명해야 하는 상황은 난감해서 더 흥미진진하다. 개인적으로 그것이야말로 영화를 읽고 글로 쓰는 잉여로운 작업 중에 누릴 수 있는 희귀한 특혜라고 생각한다.

신작 <시크릿 에이전트>의 개봉을 앞두고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감독의 인터뷰를 싣는다. 정재현 기자가 꼼꼼히 보낸 서면 질문에 그는 대용량의 음성파일을 보내왔다. 클레베르 멘도사 필류 감독은 매년 6월 볼로냐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복원 영화제 ‘시네마 리트로바토’에 머문다고 한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에 평생 매혹되어온 감독이, 하필 그 일을 전문으로 삼는 축제 한가운데서, 자기 영화의 방법론을 그대로 빌려 응답한 건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없던 의미도 부여하고 싶어지는 상황에서 영화를 글로 옮기는 작업의 피로와 기쁨에 대해 생각해본다.

영화를 글로 쓴다는 건 피곤한 일이다. 재능이 없는 나로서는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몇번이고 되돌려 보아야 하고, 다 보고 나서도 내가 무엇을 본 것인지 오래 의심해야 한다. 화려함과 영광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아무도 없는 상영관에 홀로 앉아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그 눈물의 정체를 해명하기 위해 다시 처음부터 영화를 곱씹는 일. 비평의 위기, 혹은 무용론은 이미 우리 시대의 기본값이 되어버렸고, 말이 빠르게 쌓이는 동시에 그만큼 빠르게 풍화되고 있다. 정성껏 고르고 지운 한 문장이 순식간에 스크롤 아래로 밀려나 사라지는 시대에, 굳이 오래 응시하고 천천히 쓰는 일에 무슨 쓸모가 남아 있느냐고 물으면 솔직히 매번 대답이 궁하다. 그럼에도 올해 <씨네21>영화평론상에는 지난해 72편에서 크게 늘어난 112편의 원고가 모였다. 100편을 넘긴 해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예사롭지 않은 숫자다. 우리는 4년의 공백을 깨고 5년 만에 최우수상을 다시 호명했다. 위기라는 말에 휩쓸리는 대신 묵묵히 자기 글을 써내려간 이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 누군가가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게 이렇게 위로가 될 일인지. 감사해서 서글프다.

우리는 이토록 피로함에도 왜 끝내 멈추지 못할까.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의 말이 옳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간의 컬렉션이고, 누군가는 계속해서 그 테이프를 꺼내 들어야 한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강연에서 던진 이 질문에 나름의 방식으로 응답하는 일이 바로 비평이라고, 나는 여전히 믿는다. 은밀하고 뜨거운 애정으로, 영화를 굳이 읽고 쓰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는 한, 지면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다 포기하고 싶어도 끝내 자리를 뜨지 못하고 다시 책상 앞에 앉는 이유다. 펜을 놓지 못한 채 서성이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와 애정을 보내며, 이번주도 한권이 나왔다. 그래봤자 1년 50권 중 한권. 그래도 각자 소소하고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고 갈아넣어 만든 한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