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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불투명과 불명확 사이 어딘가의 희망

무언가를 목격했다. 누군가는 압도당하고 때때로 혼란에 빠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두렵지만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흥분이 걸음을 부추긴다.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디서 무엇이 덮쳐올지 알 수 없기에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불투명할수록, 실체를 보여주지 않을수록 상상이 더해져서인지 저편의 존재가 더욱 뚜렷하게 실감된다. 오해하지 마시길. 특정 영화에 대한 묘사가 아니다. 영화라는 매체가 우리를 매혹하는 메커니즘 전반에 대한 설명이다.

영화는 서스펜스와 쇼크의 징검다리다. 서스펜스의 원칙은 간단하다. 여기 무언가, 그러니까 정체를 설명할 수 없기에 ‘괴물’이라 명명한 대상이 있다. 괴물은 노출이 적을수록 위협적이다. 보여줄 때도 지나치게 자세히 보여주면 신비감까지 함께 떨어진다. 명확하지 않을수록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도리어 더 선명해지는 마법. 그리하여 관객은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 각자 보고 싶은 것을 본다. 각자의 오해를 먹고 자라는 괴물이라고 할까. 불투명, 그리고 예측 불가능성이야말로 영화가 미지와 심연으로부터 생명력을 길어 올리는 비결이다.

나홍진 감독의 <호프>가 국내에도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칸에서 첫 공개된 이후 풍문을 통해서만 짐작했던 그 실체가 당도했지만 언론시사 후 주변에 넘쳐나는 말을 보니 바뀐 건 하나도 없다. 압도적이다, 혼란스럽다, 아드레날린이 꺼지지 않는다 등 모두가 각자의 언어로 자신의 경험을 쏟아내기 바쁘다. 다양한 표현 가운데 유일한 공통점은 ‘뭔가 대단한 걸 봤다’는 목격담뿐이다. 신비와 호기심에 불을 지필 땔감이 계속 공급되는 와중에 나홍진 감독에 대한 소문들까지 살이 붙어 기대감은 꼭지를 찍은 분위기다.

<씨네21>도 이런 분위기의 파도를 타고 3주에 걸친 특집, 기획을 준비했다. 우선 이번주에는 칸 버전과의 차이와 더불어 나홍진 월드의 지도 아래 <호프>의 좌표를 설정해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다음주는 나홍진 감독과의 일대일 인터뷰와 제작기를 준비 중이다. 마지막으로 국내외 평론가들의 다양한 질문을 추려 날 선 비평들을 모아볼 생각이다. 응당 다뤄야 할 화제작을 영화 전문지답게 다양한 관점에서 심도 있게 다루겠다, 고 멋들어지게 포장하고 싶지만 솔직히 길을 잃을지도 모르겠다. 나홍진 월드는 상태, 그 자체에 대한 영화적 묘사이기 때문이다.

단편 <완벽한 도미요리>(2008) 때부터 ‘완벽’을 위해 나아가는 집착과 광기를 선보였던 나홍진 감독은 그때나 지금이나 메시지를 위해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나는 나홍진 월드가 무의미를 향해 나아간다고 느낀다. 목적 없는 소진 속에 길을 잃는 자도 속출할 것이다. 행위가 목적이 될 때, 길은 갈라진다. 누군가는 껍데기뿐이라며 비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행위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매료될 수도 있다. 답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 대한 평가도, 흥행의 결과도 불명확하다. <호프>가 한국영화, 영화산업의 희망이 될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러려고 만든 영화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이 무엇이건) 그저 자신의 할 일을 한 영화와 할 수 있는 일을 한 감독 앞에서, 역설적이지만 그렇기에 더 기대를 품는다. 희망은 내일을 바라보는 오늘의 단어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