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창간 30주년 특별 연재 ‘시네마 오디세이: 21세기 영화란 무엇인가?’의 마지막 키워드는 ‘미래의 이야기(들)’다. 영화 매체에 관한 이야기, 영화 속의 이야기, 영화의 형식을 두고 꺼내는 이야기, 21세기 영화가 무엇인지 규정하는 지금의 연재까지, 우리는 영화를 말하며 온갖 이야기의 방식을 탐색할 수밖에 없다. 21세기 영화로의 천일야화, 그 문을 연 이는 일본의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다. ‘21세기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미국과 세계가 1950년대 젊은 감독들의 새로운 활력을 등한시했던 경향에 대하여: 로버트 알드리치, 리처드 플라이셔, 돈 시겔, 이다 루피노의 경우”라는 새 글을 써보내기로 했으나, 일신상의 이유로 집필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그간 한국에 발행하지 않은 원고 한편을 연재의 퍼즐 조각으로 제안해주었다. 그것은 2000년 5월, 21세기를 앞둔 세기말의 칸영화제에서 그가 발표했던 ‘영화의 미래를 향하여’라는 이야기다. 2024년 일본에서 발간된 <숏이란 무엇인가-역사 편>에 수록된 글이며, 이 책은 2024년 봄 <씨네21>이 그를 인터뷰했을 때 막 출간을 앞두고 있다 했던 그것이다. 20세기와 21세기의 교차점에서 하스미 시게히코가 던졌던 전언을 왜 지금 다시 숙독해야 하는지, 세명의 편집위원이 각각의 간략한 이야기로 응답했다. 이야기란 어떻게든 이어질 것이란 필연의 다른 말이므로, 다음 연재에서는 하스미 시게히코의 오랜 고다르론(論)에 반응하는 글이 실릴 예정이다.
영화의 미래를 향하여
생성으로서의 <영화의 역사(들)>
영화의 미래는 생명의 미래가 그러하듯 지극히도 불명확하다. 그렇기는 하나, 그 불명확성이란 20세기 말 무렵이라는 지금의 다분히 종말론적인 상황과는 일절 무관한 문제다. 또한 이는 누구나 때로 무심코 입에 담고 마는 그 유명한 ‘영화의 위기’ 같은 자기 폐쇄적 단어와도 전혀 관계를 맺지 않는다. 지금 영화가 구원받을 길 없이 퇴폐해가고 있음을 시사하는 징후 따위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5년 정도 동안 대만, 이란, 포르투갈 등 저마다의 지역을 결정적으로 달리 지정하는 여러 공간에서 새로운 재능들이 끊임없이 분출하고 있다. 더군다나 각 지역의 영화적 과거에 대해서는 우리 중 그 누구도 거의 알지 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화산업이 이미 확고한 기반을 갖추고 있던 국가들에서라면, 이를테면 디지털 처리를 통한 화면구성의 기술적 진화를 거듭 중인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보급된 가상현실에 의한 특수효과 기술을 대대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지구상에 산재해 있는 뛰어난 예외적인 영화 작가들 역시나 디지털 기술을 구사한 미학적 탐구로서 이미지 문화의 전망을 도처에서 쇄신하는 것이다. 지금 일본의 수도인 도쿄에서 섬세한 디지털 처리가 가능한 극장을 통해 <영화의 역사(들)>(1988~98)가 수많은 관객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이 사태는 명백히 드러난다.
그럼에도 영화의 미래를 흐리게 만드는 불확실성에 대해 말하자면, 이것은 결코 지금이라는 이 현재에 갑자기 표면화된 현상은 아니다. 영화가 발생한 직후라고 해도 좋을 19세기 말기에 이미 발명자 자신에 의해 ‘미래는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시네마토그래프에 미래는 없다”라는 선언이 뤼미에르 형제의 말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줄로 안다.
그 이후로 100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그들이 틀렸다고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존재할까? 한 세기 동안 이어진 영화의 역사에서 수많은 성공 사례가 인정되기는 한다. 그러나 진지하게 생각을 거듭해보면 그런 단언 따위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도리어 그 발명자들의 판단이 옳았다고 일제히 입을 모아 말해야만 할 것이다. 어지간해서 영화에는 ‘연속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하물며 ‘자기동일성’ 따위는 어디를 둘러보아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스스로를 ‘역사 이후’(post-history)라고 부를 만한 시대인 지금에 와 있는 터에 영화란 저 자명한 사실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조형된 것에 불과하다.
영화는 ‘서구 사회’의 미학적 전통과는 일절 무관하게, 하나의 시각적인- 그리고 나중에는 청각적이기도 한- 표상 체계라 할 만한 것을 형성해왔으며, 발터 베냐민이 기술적 복제에 관해 서술했듯이 고전 예술이 갖추고 있었다는 ‘아우라’를 결정적으로 결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뮐라크르라고도 불러야 할 것으로서의 영화는 원본과 복제라는 전통적 구별을 철저하게 폐기하게 되었다. 단 하나의 숏으로서 존재하기 시작한 시네마토그래프에서는 애당초 기원을 결여한 것의 반복임으로 인해 정통성 없는 카피 그 자체가 가공할 만한 현실로서 스크린을 지배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올바른’ 숏이라는 개념 따위는 성립할 수조차 없고, 이것이라 할 만한 확실한 원리조차 갖추지 못한 채 작가라는 존재의 정통적이고 원천적 서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연속적인 복제와 그것의 무한정한 전파성에 의해 영화라는 집단적 스펙터클은 비(非)정통성 그 자체의 불합리한 힘을 지니고 잠재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역사’란 헤겔적인 의미에 있어서라면 영화의 존재 따위를 결단코 인정할 리가 없다. 영화는 정통성을 결여한 복제로 성립하는 것일 뿐이므로 ‘역사’를 추진시키는 정통적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서사’ 또한 진실도 아니며 허구도 아니다. 영화의 이미지 역시 스스로 무언가를 재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확실성과는 일절 무관한 것이다. “그것은 올바른 이미지가 아니다. 단지 이미지다”라고 말한 것은 분명 장뤼크 고다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로 영화는 어떤 이미지를 환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무효화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현재라는 시점의 핵심에 위치시키려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그 핵심으로부터는 한사코 도망치려 하고 있다. 영화가 그리는 것처럼 보이는 운동, 혹은 이동으로서의 영화란 역사적 시간과 사회적 공간을 환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역사적 시간과 사회적 공간 속에 스스로를 전개시키는 일은 결코 없다. 이제 막 지나가려 하는 20세기, 그리고 아마도 머지않아 시작될 21세기를 놀라게 할 것은 바로 이 기원을 결여한 것의 무한한 반복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 안성맞춤인 예로서 지금 다시, 자기 자신을 반복하는 일로부터 단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었던 하워드 호크스나 오즈 야스지로의 위대함을 상기해보면 좋을 것이다.
‘근대’적 의식에게 영화란 것은 덫인 동시에 은신처이기도 하다. 영화적 기획의 특권적 의식은 <미치광이 피에로>(1965)에 나오는 새뮤얼 풀러 감독의 “영화란 전장과 같은 것이다”라는 선언에 이어 입에 담는 ‘결사대 작전’에 비교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적이 몸을 숨기고 있을 확실한 장소를 향해 자신을 숨겨 접근하고, 전율하면서 상대를 쓰러뜨린다. 그러나 일단 한번 승리했다고 여겨질지라도 ‘결사대’는 모든 것을 다시 새로이 시작해 싸워야만 한다. 영화 작가의 노동에 대해서도 이 ‘결사대’가 마주하는 ‘쓰디쓴 승리’와 거의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한순간의 승리처럼 보이는 것 따위는 니컬러스 레이의 <쓰디쓴 승리>(1957)라는 작품의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이르러 ‘쓰라린’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치광이 피에로>의 촬영은 진정한 의미에서 모험의 연속이었다고 고다르 역시 말하지 않았던가. 그것을 촬영해 마치려는 노력이란 미래를 결여한 무익의 시도로밖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임의 규칙>(1939)을 촬영 중이던 장 르누아르, 또는 <위대한 앰버슨가>(1942)의 연출을 마치려 하던 오슨 웰스, 더불어 <동경 이야기>(1953)의 촬영을 막 끝낸 오즈 야스지로에 대해서도 완전히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동경 이야기>의 오리지널 네거티브필름은 현상소의 화재로 소멸해버렸다는 것이다.
이 작가들이 그 당시 영화에 아득한 ‘미래’가 약속되어 있다고 생각했을 리 만무하다. 그렇기에 그 불확실성, 요컨대 서두에서 언급한 영화의 ‘미래’가 지닌 불명확성이야말로 모든 영화적 시도의 총체를 다루는 것이 되리라. 영화란 ‘존재/있음’(Being)이 아니라 ‘생성/되기’(Becoming)에 관계되는 그 무엇인가이기 때문이다.
이 ‘생성’을 베르그송적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질 들뢰즈도 이렇게 쓰지 않았던가. “사람들은 역사에서 혁명의 미래와, 스스로 혁명적인 생성이 되는 것을 혼동하고 있다”라고 말이다. 나는 이 표현을 빌려, 역사 속에서 영화의 미래와 영화가 모험으로 끝없이 향하며 생성되는 것이란 일 사이의 혼동을 회피할 목적으로 활용해보았다. 더 나아가자면 영화의 혁명적 생성이라 해야 할 것을 그 미래와 혼동하는 것을 회피할 목적으로 채용했다고 바꾸어 말해도 좋다. 영화에서 우리를 온전히 매료시키고 있는 것은 매 순간 유일무이한 것의 ‘생성’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상에는 반드시 ‘비(非)역사적 무구함’이 선행한다고 했던 니체에게서 발상의 원천을 두면서, 들뢰즈는 이렇게 쓰고 있다. “역사가 사건에 대해 파악하는 것은 그 사건의 상태들에 대한 집착일 뿐이며, 사건의 생성이라는 것은 역사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이 문장에 나오는 ‘사건’을 ‘모험’이라는 단어로 간단히 바꾸어 본다면, 들뢰즈가 쓰고 있는 것은 완벽한 형태로 영화의 문제에 부합한다. 고다르는 물론이거니와 장 르누아르, 오슨 웰스, 오즈 야스지로 역시 대문자 ‘역사’를 떠나 이 영화라는 모험으로의 생성에 동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우샤오시엔이나 에드워드 양으로 대표되는 1980년대 대만영화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과 제2차 세계대전, 고다르와 1968년 5월 혁명의 관계에 대해서도 사실상의 동일한 관점이 성립할 것이다. 영화를 결정짓고 있는 것은 역사라는 시간 개념에 대한 ‘생성’의 지고한 우위적 권력의 확립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뤼크 고다르는 왜 역사라는 것을 떠나 영화라는 모험의 ‘생성’에 밀착하려 하면서 <영화의 역사(들)>를 만들게 되었는가. 이 위대한 ‘생성’의 영화 작가가 대문자 ‘역사’를 믿는 것처럼 행동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가 이 작품의 4B에서 “19세기의 예술로서 영화는 20세기를 존재하게 했으나, 20세기는 그것 자체로서 존재한 적이 드물었다”라고 서술했을 때, 그는 자기 자신을 역사가로 간주하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예술가로 간주하고 있었던 것인가.
<영화의 역사(들)>는 문자 그대로 모순의 작품이다. 그 아름다움, 다시 말하여 흑과 백, 명과 암, 긍정과 부정, 별과 밤은 결단코 변증법적 관계에 수렴되지 않는 그 모순된 관계에서 기인한다. 그리하여 제목에 포함된 ‘<영화의 역사(들)>(Histoire(s) du cinéma)’에 내포된 복수성과 단수성은 1A와 1B에서 이야기되듯 ‘역사의 모든 것’인 동시에 ‘단 하나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과 ‘단 하나’를 가르고 있는 틈에서 ‘생성’을 향한 창조적 입장이 불현듯 자기 모습을 드러내고, 바로 그곳에서 단수적인 것과 보편성의 경이로운 일체화가 생산되고야 마는 것이다.
1965년에 영화의 미래에 관해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영화의 종말을 낙관적으로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던 고다르는, 그로부터 20, 30년 후에 제작된 <영화의 역사(들)>를 통해 그 종말에 그의 ‘낙관성’과 함께 도달하고야 만 것인가, 아니라면 ‘비관성’에 도달하고야 만 것인가. 아니다. 영화의 미래가 불확실한 것이라 단언하는 것은 영화에 대한 비관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화의 역사(들)>1A에서 4B에 이르는 8편의 여정은 역사적 고찰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을 영화의 모험으로 향하게 만드는 개인적 ‘생성’의 탐구라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20세기라는 시대가 고다르를 거쳐 보여준 모순 그 자체의 위대한 아름다움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편집위원들의 응답
이도훈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가 참조한 발터 베냐민의 아우라의 상실에 관한 논의는 소수가 특권적으로 누리던 예술이 세속화, 대중화, 민주화되었음을 뜻한다. 카메라의 등장과 함께 누구나 이미지를 소유할 수 있고, 누구나 이미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라. 베냐민은 영화의 역사, 예술의 역사, 인류의 역사를 두고서 벌이는 한판의 도박과 같은 과업이 영화적 장치와 인간의 유희를 통해 감행된다고 보았다. 영화는 하나의 퀘스트를 수행하듯이 기존의 규범을 파괴하고 새로운 규칙을 세우기를 반복했다. 유희로서의 영화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오락적, 소비적, 기생적인 가치를 갖는 동시에 긍정적인 측면에서 예술적, 생산적, 자생적 가치를 갖는다. 역사적으로 늘 타 매체와 긴장 관계를 유지해온 영화는, 디지털 전환기 이후 광고, 뮤직비디오, OTT 시리즈, 숏폼 콘텐츠, 밈 등과 같이 유사-영화에 가까운 영상들과 참조, 모방, 경쟁의 관계를 맺었다. 예나 지금이나 영화에서 단일한 모델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가 영화라고 부르는 것의 자리는 거의 영화에 가까운 것과 결코 영화가 아닌 것 사이의 어딘가이다. 영화가 무엇이며 그것이 무엇이 될지 모르는 그 예측 불가능성이야말로 영화를 일종의 놀이로 만드는 비결이 아닐까. 유희로서의 영화는 그것이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영화의 ‘모험’ 또는 영화의 ‘생성’의 여정 속에서 존재할 것이다.
김병규 영화평론가
‘영화의 위기’와 ‘영화의 죽음’은 21세기 영화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가장 첨예하면서도 상투적인 논쟁의 주제일 것이다. 영화의 태동기부터 국가의 산업이 흔들리거나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발명되고 몇몇 작가들의 영화가 외면받을 때마다 되돌아오곤 하는 이 주제는 영화의 근본적인 속성과는 무관하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21세기를 앞두고 작성된 이 글에서 영화의 미래는 위기나 죽음 같은 오래된 주제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영화는 만들어진 직후부터 “미래가 없는 발명품”(루이 뤼미에르)으로 여겨지던 아버지 없는 사생아이며 그 불확실한 출발점으로부터 특정한 요소를 추가하거나 변경하면서 새로 태어나기를 반복한 생성의 모험이기 때문이다. 영화에게는 합의된 원본도 계승해야 할 기원도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지금 영화를 만들고, 영화에 관해 말하고, 극장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누적된 영화의 역사 앞에 설 수밖에 없다. 이것이 20세기의 끝자락에 완성된 장뤼크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에 새겨진 모순이다. 과거와 기원이 존재하지 않는 현재형의 모험을 필름에 담아내던 고다르는(프랑수아 트뤼포는 1960년대 고다르의 영화를 두고 “유년기가 존재하지 않는 영화”라고 말한 바 있다) 기묘하게도 1988년부터 10여년 동안 ‘영화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거대한 과거의 박물관을 구축했다.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는 순차적 시간을 이탈하는 ‘생성’의 모험과 특정한 시점에 과거를 되돌아보는 ‘역사’의 기록 사이에서 벌어지는 긴장과 모순. 무지한 체험과 기록된 지식을 오가는 복잡한 미래. 하스미 시게히코는 새로운 세기의 초입에 이 문제를 제기했고 그것은 풀리지 않는 문제로 우리 앞에 도착한다.
이우빈 기자
하스미 시게히코의 말에 따르면 적어도 영화에서, 결여는 축복이다. 바꿔 말할 때, 적어도 비평에서, 결여는 축복이다. 하스미 시게히코가 ‘생성’이라는 언어로 세례 내린 <영화의 역사(들)>와 영화 매체의 근본적 결여성은 그가 추구해온 비평의 방식에 맞닿는다. 영화의 표면만을 채록하고자 했던 하스미풍의 표층비평이란 결국 스크린 위의 영구한 액션을 지면 위의 죽어버린 활자로 자살시키는 필연의 결여를 타고났으며, 그의 글은 이 결여의 낙차 감각을 최대한으로 구현하려는 자기 혁명의 스릴을 포기하지 않아 왔다. 그렇기에 하스미 시게히코의 작법은 영화를 둘러싼 모든 것의 역학이 영화와 영화비평을 꾸준히 살해하고자 하는 현재의 풍토에서도 여전히 ‘생성’되는 무언가로 남는다. 일본의 호리 준지 영화연구자는 <씨네21> 1450호에 “‘고다르 혁명’의 주역이 되려면 하스미처럼 고다르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러면서 체제 전복의 강인한 의지를 계속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혁명의 첨병이 될 수 있는 것은 극소수의 정예뿐일 것”이란 이야기를 보내온 적이 있다. 그렇다. 영화와 영화비평의 죽음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찬탈하고 그것을 생성으로 영속시키기 위해서는, 이 최전선의 첨병(또는 하스미 시게히코의 표현처럼 결사대)이 되어 죽음의 충동을 자처할 수밖에 없다는 모순과 동행해야 한다. 미래는 죽음에서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