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사막, 한 남자가 갈증을 달래며 걷고 있다. 모험의 최종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유리병 속 쪽지를 꺼내야만 하는 그는 잠시 뒤를 돌아본다. 자신을 따라오는 소년의 뒤통수라면 병을 깰 수 있을 만큼 단단하지 않을까. 마음의 소리에 응답한 남자는 겁에 질린 소년의 등 뒤에서 팔을 쳐든다. 여기까지가 미국인 소설가 옴(애덤 스콧)이 집필 중인 정복자 3부작의 에필로그 도입부. 옴은 자기 손으로 쓴 그 내용이 불만족스러운 눈치다.
작품을 매듭짓지 못한 옴은 난생처음 아일랜드로 향한다. 부모의 신혼여행 장소인 빌베리 우즈 호텔 부근 숲에 그들의 뼛가루를 뿌리기 위해서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의 추억이 궁금했던 옴은 호텔 바텐더에게 허니문 스위트룸에 대해서도 묻는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 밖이다. 그 방은 오래전 폐쇄되었으며, 마녀에 의해 악령이 씌었다는 것. 분필로 원을 그리면 마녀로부터 안전하다는 팁까지 전해 들은 옴은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채 침상에 들지만, 이상한 기운을 느낀 바텐더는 어쩐지 목을 매달고 있는 옴을 발견한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옴은 그날 밤 자신을 구한 바텐더가 실종되었다는 비보를 접한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뜻하는 영어 단어(hokum)를 제목으로 삼은 <호컴>은 주인공 옴의 소설과 그가 겪는 미스터리를 직접적으로 대응시키지는 않는다. 다만 작은 삽화를 통해 개인의 트라우마와 창작물이 어떤 상호작용을 주고받는지 암시한다. 그 연결 고리는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며 수미상관의 여운을 남긴다. 그 중간을 채운 서사는 한정된 공간, 살해와 은폐, 기괴한 인형과 같이 감독 데이미언 매카시가 전작 <경고>(2020), <오디티>(2024)에서 반복한 모티프들을 창의적으로 변주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의 탈출이나 복수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지난 작품들에 비해 <호컴>은 내면의 트라우마를 본격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폭력적인 문장을 적어 내린다거나, 갑작스럽게 자살을 시도하는 등 다소 ‘믿을 수 없는 화자’의 위치에 놓여 있던 옴이 어떤 과거를 견뎌왔는지 밝혀지는 동안 불안의 층위도 깊고 복잡해지는 것이다. 옴 외에도 문제가 많은 주변인이 여럿 출몰하는 <호컴>은 살인 동기의 유형에 따른 각 인물의 최후까지 다르게 펼쳐 보인다.
데이미언 매카시 감독은 이번에도 기분 나쁜 탈을 쓴 캐릭터를 등장시켜 생애 최악의 순간이 남긴 흔적을 시각화한다. 점프 스케어도 빈번하다. 침묵과 어둠을 수초간 지속하다가 불현듯 자극적인 이미지로 여백을 지워버리는 식이다. Apple TV 시리즈 <세브란스: 단절>의 스타 애덤 스콧이 안정적인 호흡으로 혼란을 지휘한 덕에 감정선은 중심을 잃지 않는다. 어느 정도 익숙한 범위 내에서 정석적인 공포영화의 길을 걷는, 그럼에도 호러계의 떠오르는 스토리텔러 데이미언 매카시 감독의 진일보로 기억될 <호컴>은 7월22일 롯데시네마에서 단독 개봉한다.
CLOSE-UP
<호컴>에 음산한 선율을 곁들인 작곡가 조지프 비샤라는 감독 겸 제작자인 제임스 완과의 오랜 협업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인시디어스> <컨저링> <애나벨> 시리즈의 사운드트랙을 책임지며 호러 음악계의 장인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는 데이미언 매카시 감독과의 첫 작품인 <호컴>에서도 신비와 공포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사운드로 귀를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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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 감독 미카엘 호프스트룀, 2007
오래된 호텔, 금지된 객실, 과민한 작가. 모두 호러의 단골 소재인데, 셋의 조합은 일찍이 <1408>에서 시도되었다. 스티븐 킹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입장한 사람을 1시간 안에 죽음으로 몰아넣는 방이 있다는 소식을 접한 남자가 기어이 그 문을 열면서 시작된다. 광기 어린 저주 체험은 금세 가족의 비극과 그 여파를 복기하는 여정으로 나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