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품아’, ‘숲세권’, ‘맥세권(맥도날드)’, 로열동·로열층(단지 내 가장 선호되는 동과 층), 대장아파트(지역 시세를 이끄는 대표 단지)… 아파트에 투영된 욕망은 일상적 언어가 되어 평범한 대화로, 기사 헤드라인으로, 일반인 브이로그의 소재로 변주해온 지 오래다. 생애주기적 과제로 자리 잡은 ‘내집마련’은 아파트-도시형 생활주택빌라-오피스텔 순으로 피라미드를 이루며 계급을 나눈다. 피라미드 안에는 또 다른 작은 피라미드가 있다. 아파트도 다 같은 아파트가 아니다. 서울과 수도권, 강남권과 비강남권, 브랜드와 소형아파트, 대장단지와 일반단지. 길고 긴 토너먼트에서 승리한 자만이 진짜 내집마련의 승자다. 지금까지 많은 영화·드라마는 아파트의 약육강식을 주요 소재로 채택해왔다. 좀비 재난에 휩쓸린 드라마 <해피니스>는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자가 소유자, 전세 세입자, 임대주택 입주민을 구분했고, 넷플릭스 영화 <84제곱미터>는 부동산이라는 허황된 신화 속의 주거 불안을 스릴러로 엮었다. 이외에도 <콘크리트 유토피아> <펜트하우스> 등은 아파트로 은유되는 왜곡된 야망을 스노볼처럼 키워냈다. 하지만 이 맥락에서 드라마 <아파트>는 결이 살짝 다르다. 1만 세대에 달하는 아파트 대단지를 군림하기 위해 주인공은 최상위권의 가장 좋은 집을 거머쥐는 게 아니라, 다소 발칙하게도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되기로 결심한다.
오아시스파 전직 보스 박해강(지성)은 대한민국 상위 1%만 가입할 수 있는 비밀 모임 ‘원클럽’ 가입에 실패한 경찰청장으로부터 황당무계한 명령(혹은 협박)을 듣는다. 당장 클럽 가입금 100억원을 가져오지 않으면 지금껏 이뤄낸 모든 것이 고꾸라질 거라는 것. 불행의 예고편처럼 어릴 적부터 자신을 자식처럼 키워준 원로 형님이 구속된 모습을 보며 박해강은 벼랑에 내몰리고 만다. 어떤 방법을 사수해서라도 100억원을 마련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때 횡령꾼 도마뱀(김해원)으로부터 솔깃한 이야기를 듣는다. 대단지 트루밸류 아파트에 눈먼 돈이 있다고. 그 언젠가 대량 수리에 대비해 1만여 가구에 매달 수금한 ‘장기수선충당금’을 노리면 된다고. 단, 이 돈을 빼돌리기 위해서는 아파트 동대표를 거쳐 회장에 위임돼야 한단다. 선거에 나가고자 ‘간헐적 가족’을 꾸린 박해강은 친언니에게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고 거짓말한 강하리(하윤경)를 꼬드겨 자격요건을 채우기 시작한다. 시아버지인 척하는 도마뱀, 시동생인 척하는 오아시스파 조직원들, 귀여운 외동아들인 척하는 조직원의 아들까지. 해강은 '정치적 정상성'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아파트는 필연적으로 모순이 따르는 공간이다. 겉으로 모든 가구가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아 보이지만 그 안으로는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고, 모두가 모르쇠 익명 속에 숨는 듯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전부 지켜보고 있다. 이런 모순은 드라마 안으로도 자연스레 스며든다. 이곳에서 박해강은 생애 가져본 적 없던 가족을 거짓으로나마 구성해보고, 염치 없이 친언니의 뒷바라지만 받아오던 강하리는 역시나 거짓으로나마 일자리를 얻는다. 빌런 이충원(박병은)도 비슷하다. 트루밸류를 주무르며 신도시 건설을 계획해온 그는 입주민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밝히지 못한다. 다만 회의 자리에서 해강의 질주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손을 들 때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렇게 우회해 표현한다. “123동 맨 꼭대기층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 “역시 펜트하우스야, 그쵸?” 자신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없는 악인은 아파트 내 위치로 사람들을 내려찍는다.
무려 180억원에 달하는 장기수선충당금에 접근할 절대적 권한은 단순히 좋은 집이 아니라 다수결을 통한 인정과 위임, 지지와 선택에서 비롯한다. 호화스러운 아파트 대단지도 민주주의적 절차와 문법을 피해가지 못한 모양이다. 하지만 입주민들은 기묘하게도 그 절차라는 것을 오히려 갈망한다. 법적·윤리적·사회적 질서가 공동체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자랑할 때 아파트의 진정한 가치(트루밸류)는 더 빠르게 상승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해강 주변으로는 어색하리만치 깔끔하고 정제된 것들만 모여든다. 그는 오랫동안 조직 생활을 전전해왔지만 난감한 상황이 밀려들 때마다 무력이 아닌 이미지메이킹과 가족 코스프레를 들이밀었고, 출마 등록서에 조직폭력 이력을 쓰느니 고졸을 쓰라는 파격적인 조언까지 받는다.
드라마가 비추는 그 어색하고 인위적인 정갈함을 현실 세계로 돌려보면 아파트 내에서 벌어지는 구조적 문제들도 잇따라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픽션 말고, 실제 우리네 아파트의 양면적인 얼굴은 어떠한가. 초품아를 꿈꾸지만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운동회를 하는 소리는 못 참겠다고 고소를 종용하고, ‘시니어 커뮤니티’, ‘헬스 짐 케어’ 등 영어식으로 표기된 대단지 시설을 관리할 관리인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들이 폭염 속에 에어컨을 켜는 건 못 보겠다고 한다. 실제 1만 세대가 넘는 강남권 아파트 대단지에는 투표소가 5~7개 설치되어 지역구가 아닌 아파트 주민만 사로잡으면 된다는 풍문이 흘러나오고, 어떤 이들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동대표를 실험해보기도 한다. 드라마 <아파트>가 난방 비리를 파헤치고 택배난 문제를 해결하는 정의로운 주체로 오아시스파 전직 보스이자 VIP 전용 불법 도박장 운영자인 박해강을 내세운 건 아파트라는 사회적 공간에 완전무결한 프로태거니스트가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 다른 인물들처럼 제 이익관계가 뚜렷한 이를 경쟁 트랙에 나란히 올릴 것을 선택한다. 동시에 박해강은 아파트를 자기화하지 않는다. 아파트의 몰락이 곧 자신의 몰락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극성 소유주 장숙진(문소리)이나 이충원과 달리 그는 아파트의 평판으로부터 유일하게 자유롭다.
최종적으로 박해강은 100억원 횡령을 성공해낼까. 장르적으로 케이퍼 무비를 좇는 드라마 앞에서 시청자는 기이한 딜레마에 빠진다. 그의 횡령을 응원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아파트의 모순은 여전히 화면 밖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시종일관 경쾌하다 못해 이따금 유치하기까지 한 코미디에 시원하게 웃지 못하는 건 아파트에서 탄생한 폐쇄적 공동체, 정치적 허영, 허울만 남은 도덕성의 원형이 우리에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