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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그래도 방법을 찾는 마음, <콘크리트 녹색섬> 이성민 감독

1980년대 정부가 지은 대규모 공동 주택단지 서울 개포주공아파트. 이곳에서 초중고 유년 시절을 보낸 이른바 ‘개포 키즈’ 이성민 감독은 재건축으로 사라질 공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한다. 다큐멘터리가 될 줄 몰랐고, 7년이란 시간이 걸릴 줄도 몰랐다. 이곳에 뿌리 내리고 자란 나무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재건축 과정에서 폐목이 될 거목들의 운명을 걱정하고, 콘크리트 단지 내 ‘녹색 섬’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이 <콘크리트 녹색섬>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완성됐다. 나무를 걱정하는 일은 “나의 한 시절을 지켜봐준 존재”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이성민 감독의 인사였다.

- 재건축으로 사라지게 될 강남 개포주공아파트를 카메라에 담았다. 다양한 주제와 접근법이 있었을 텐데 ‘나무’에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간다.s

유년기를 보낸 이 동네가 사라지기 전에 사진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2014년 무렵 파인아트 사진을 공부했다. 원래는 영화가 하고 싶었는데 내 길이 아니다 싶어 직장 생활을 시작하다가 다시 직장을 그만두면서 삶의 변화를 겪던 시기였다. 잠시 멈춰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예전 동네를 사진으로 기록했는데, 그곳에 가보니 오래전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가게와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나무가 눈에 띄었다. 요즘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수목원에서나 볼 법한 크고 우람한 나무들이 거기 있었다. SNS(카카오스토리)에 ‘개포동 그곳’이라는 계정을 만들어 글과 사진을 올렸더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나무에 얽힌 추억을 남겨주더라. 2017년쯤 재건축 인가가 나고 이 아름다운 나무들이 모두 베어져 사라진다는 사실을 공유하자 ‘나무들이 정말 다 사라지는 거냐’, ‘이 나무는 어디로 가는 거냐’, ‘나무를 보존할 방법은 없느냐’고 사람들이 묻기 시작했다.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공사가 시작되고 나무들이 하나씩 잘려 나갈 때의 심정은 어땠나. 황량한 ‘콘크리트 섬’이 된 아파트 단지의 풍경을 드론 촬영한 이미지는 섬뜩했다.

나무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온전히 담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워서 눈앞에서 나무가 쓰러질 때의 상실감과 슬픔도 카메라에 다 담을 수 없었다. 현장에 갈 때마다 오늘은 나무들이 얼마나 사라졌을까 싶어 불안했다. 마치 시한부 환자를 둔 호스피스 병동에 가는 마음이었다. 나무들이 모두 베어졌을 땐 어딘지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드론숏은 상태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필요했다.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경이로움을 느끼는데, 경이로움이 사라진 풍경 앞에서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꿀벌과 곤충, 크고 작은 생명체들이 모두 사라진 미래는 아마 이런 풍경이 아닐까, 디스토피아 SF영화의 배경은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기에 더 잘 기록하고 싶었다. 다만 나무 이야기에는 다들 관심이 없는지 제작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 상태여서, 드론 촬영도 직접 배워서 했다.

- 강남구청에 전화했을 때 담당 공무원이 이런 얘길 한다. “나는 이해가 안 가네. 왜 그렇게 나무에 집착하는지.” 행정기관인 강남구청과 재건축조합과도 꾸준히 소통해야 했는데, 그들의 반응은 어땠나.

구청에 갔을 때 자주 들었던 얘기는 이거다. 개포동 주민이세요? 강남구 주민이세요? 서울 시민이세요? 소속은 어디죠? 서울 시민도 아니고 딱히 소속도 없었던 나는 그들에게 ‘예전에 개포주공아파트에서 살았던, 이 동네에 추억이 많은 조금 특이한 사람’ 정도로 여겨졌던 것 같다. (웃음) 다큐멘터리 작업을 할 때 그 점이 통한 것 같다. 공사를 방해하거나 해 끼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고 할까. 이번에 영화를 찍으면서 처음으로 민원도 넣어봤다. 많이 떨렸지만, 많은 분들의 서명과 마음, 의견과 정보를 대신 전달하는 일이기에 예의를 갖춰 소통했다. 조합과 구청에서도 재건축 도면을 보여주며 왜 나무 이식이 어려운지 비용과 행정적 한계를 설명해주셨는데, 그런 과정이 중요했다. 보존과 이식이 어려운 이유를 명확히 알아야 다음번에 다른 방법을 미리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작품이 향후 재개발·재건축 관련 정책 수립에도 영향을 미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나.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작품이 아니지만 지금은 영화가 긍정적 영향을 끼치길 바란다. 긴 시간 작업을 하면서 많은 전문가들을 만났고, 기후 위기 시대에 구축 아파트가 가진 식생과 토양의 가치도 공부했다. 개포동처럼 과거 농경지였던 토양은 탄소를 흡수하는 등 엄청난 생태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토양과 식생을 보존하면 아파트 건설 시 발생하는 탄소 부채를 상쇄하는 기간이 짧아져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라고 말한다. 정책이나 조례 개정은 내가 손댈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최근에 환경단체, 구의원, 나무 전문가들의 검수를 받아서 직접 조례 개정안을 작성했다. ‘서울특별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정비사업의 기존 수목 및 수목군락 보전·활용을 위한 개정안’을 주민 조례 청구 사이트에 올려둔 상태다.

-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돌아보면 긴 시간 희망과 좌절의 반복이었다.

어쩌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무들은 모두 사라질 거고, 내가 손쓸 방법은 없다는 걸. 그럼에도 이곳을 기록할 때마다 새로운 질문이 생겼고, 새로운 길을 찾고 싶었다. 낙천적 성격 탓에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계속 좇았지만, 이야기를 끝낼 시점을 정해야 했다. 나무들이 모두 벌목됐을 때 현실적인 이야기는 끝난 셈이었지만 ‘열심히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했다’로 영화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희망의 단서들- 다른 곳으로 무사히 이식되어 살아남은 나무의 소식이나 새로운 기념 방식 등- 을 조금 더 붙잡고 싶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우선 8월 말에 영화와 관련된 사진전과 3채널 미디어 영상 전시가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 사진, 미술이라는 매체보다 중요한 건 이야기를 ‘어떤 태도로 전할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시한부의 삶이나 거대한 위기 등 한계상황에서 인간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관심이 간다. 숨은 희망과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