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는 세계, <고양이를 놓아줘> 시가야 다이스케 감독

시가야 다이스케 감독은 핀홀카메라로 사진 작업을 한다. 5~10분간 가만히 한자리에 서서 이미지를 남기다 보니 어느 순간 간과하기 쉬운 많은 것들이 신비하게 느껴진다.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나뭇잎이 아름답고도 묘하게 다가온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시가야 다이스케 감독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첫숏으로 삼고 미묘함으로 가득한 일상을 오래 들여다보는 첫 장편영화 <고양이를 놓아줘>를 완성했다. 슬럼프에 빠진 음악가 모리(후지이 소마)와 아내인 사진작가 마이코(다니구치 란), 그리고 우연히 재회한 모리의 옛 연인 아사코(무라카미 유키노) 세 사람의 일상은 언뜻 사소해 보이지만 여러 감정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 모리, 마이코 부부의 현재와 옛 연인 아사코와의 과거 서사가 7년이란 시간차를 두고 촬영되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처음 구상한 이야기와 지금의 결과물이 어떻게 달라졌나.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됐다. 특히 모리와 아사코의 이야기는 지금처럼 과거나 기억이 아니라 현재로 먼저 촬영했다. 물론 바뀌지 않은 부분도 있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기억의 불투명성을 그리고 싶었다. 모리와 아사코가 처음 마음을 확인하며 키스하는 장면을 두번에 걸쳐 각기 달리 재현해서 누가 먼저 입을 맞추었는지 불분명하게 그린다는 구상은 처음과 동일하다.

- 과거의 작업을 다시 이어서 시작할 용기는 어떻게 얻었나.

늘 언제 다시 시작할까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전 촬영분을 다시 봤을 때가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됐다. 영상 자체가 어느새 우리의 기억이 된 걸 느끼면서 기존 촬영분을 과거로 다루면 이 작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단순하고 당연한 말이지만, 시간은 끊임없이 흐른다. <고양이를 놓아줘>에서 이를 다루고 싶었다.

- 영화 속 인물들이 모두 흘러가는 시간과 생각을 외부화하는 예술가들이다.

마이코가 다루는 사진은 흘러가는 시간을 멈추는 예술이다. 과거의 한순간을 남긴다는 게 멋진 일이지만, 몇년이 흐른 뒤 과거 사진을 보면 이젠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진은 우리에게 쓸쓸함을 남긴다. 1초에 24장 찍힌 결과물인 영화라는 매체도 그런 특성이 강하다. 영화 역시 그때의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는 쓸쓸함과 잔혹함을 느끼게 한다. 그림을 그리는 아사코의 경우, 그가 경험한 좋은 시간도 나쁜 시간도 그림으로 표출하고 있다고 본다. 이 영화가 시간을 테마로 다루다 보니 인물들 역시 시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예술 활동을 펼친다.

- 한편으론 이들이 어느 정도로 예술에 몸을 던져놓았나 질문하게 된다. 이들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예술가는 아니지만 모두가 예술을 떠날 때도 다시 돌아오고야 마는 유형의 예술가인 걸까.

그렇게까지 엄청난 커리어가 있는 인물들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수면 아래 드러나지 않는 예술가 정도랄까. 많은 영화들이 열정적이고 파멸적인 예술가 상을 그리고 나 역시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나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예술가를 그리고 싶었다. 창작이 아닌 삶은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예술가의 평범한 시간에 더 관심을 갖는 쪽이다. 예를 들면 영화감독의 캐릭터를 영화에 등장시킬 경우, 이런 인터뷰 자리가 아니라 한국에 와서 놀러다니는 평범한 시간을 그릴 듯하다.

- 그래서인지 인물들이 산책하는 모습이 중요하게 그려진다. 정체된 모리와 마이코의 현재 관계가 부대낄 때쯤 모리와 옛 연인 아사코의 산책이 시작되며 일정 정도 해소된다. 산책이 당신의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 같다.

걷는 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산책은 특별한 행위가 아니기에.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건 결국 상대의 속도를 느끼면서 맞춰가는 일이다. 그를 이미지로 담으면 둘 사이 관계를 조율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나란히 걷다 보면 우리는 시답지 않은 얘기도 나눌 수 있다. 나는 일상생활에서의 대화가 대부분 무의미한 대화로 구성돼 있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목적이 없지만 딱딱하지 않고 편안하게 흘러가는 대화에 관심이 많다. 영화에 그런 대화들을 가능한 한 많이 담고 싶다.

- 현실의 리듬을 닮은 대화를 담기 위해 현장에서도 새로운 대사를 많이 추가하며 즉흥성을 높이는 편인가.

정반대다. (웃음) 어미나 대사 사이 간격 등은 배우와 조율하지만 모든 대사를 세세하게 다 쓰고 그대로 찍는다. 예전에 대사를 완전히 다 정해놓지 않고 촬영을 시도해본 적 있는데, 정답은 아니었다. 대신 일상과 같은 리듬이 느껴지는 대사를 쓰기 위해 일상생활 속에서 엄청나게 많이 메모한다. 과연 이 메모들이 영화 작업에 쓰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무의미한 메모를 한다. 이 작업을 거치지 않으면 현실적인 대화처럼 느껴지는 대사를 쓰기 어렵다.

- 모리와 아사코 두 사람의 아슬아슬한 관계를 은유하듯, 찻잔이 떨어지고 마트 내 휴지가 떨어진다. 이 이미지들은 이 영화의 영원한 수수께끼다.

다소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로맨틱한 분위기를 위한 연출이었다. 이 영화는 아사코와 모리가 우연히 만나듯 로맨틱하면서도 우연한 일이 일어나는 세계란 걸 표현하고자 했다.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는 세계.

- 모리와 마이코 부부는 은은한 불안감을 껴안고 서로의 곁에 머물기로 결정한다. 이런 선택을 통해 감독이 관객에게 표현하고 싶었던 바는 무엇이었나.

모리와 마이코 부부는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됐다고 볼 수 없지만 서로에 관해 더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즐거운 연애 시절이 끝나면 부부는 새로운 관계를 맞이한다. 나 역시 결혼했는데, 타인과 함께 불안을 껴안고 한 사람과 지내는 게 상당히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도 그 지점을 그리고 싶었다.

- 첫 장편영화를 이제 막 보았고 당신에 관해 더 알고 싶다. 평소 어떤 영화들을 좋아하는가. 그리고 차기작으로 어떤 이야기를 생각하나.

한국영화들을 많이 보고 영향을 많이 받았다. 홍상수, 이창동, 장건재 감독을 참 좋아한다. 대만의 에드워드 양 감독을 비롯해 아시아 작품을 즐겨보는 편이다. 그리고 벨기에영화인 바스 데보스 감독의 작품도 정말 좋아한다. 차기작에 관해 말하자면… 서울에서 영화를 찍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내한해 서울 이곳저곳을 걸어다니다 언덕 위 주택가에 접어들었다. 그곳에서 서울의 경치를 보고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느꼈다. 작품의 테마를 말하자면, 최근 ‘오늘’이란 시간 단위에 관심이 간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모두 이어져 있지만 오늘 하루라는 단위가 갖는 신비함에 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