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교양 과목 ‘뮤지컬의 이해’에 다음과 같은 문항이 기말고사로 출제됐다고 치자. ‘(가)와 (나)로 묶인 작품의 분류 이유를 설명하고 두 군의 공통점을 서술하시오. (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맘마미아> <레미제라블>(2012) <영웅>(2022) / (나) <서편제> <원스> <미세스 다웃파이어> <겨울왕국>’ 정답을 공개하자면 (가)는 뮤지컬을 영화로 옮긴 사례, (나)는 영화를 뮤지컬로 옮긴 사례다. 그리고 두 그룹은 모두 김문정 음악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작품이다.
<맘마미아> <맨 오브 라만차> <엘리자벳> <레베카>…. 뮤지컬을 잘 모르는 관객도 넘버 한번쯤은 들어봤을 작품들이 모두 김문정 음악감독의 손끝에서 선율로, 리듬으로, 음색으로 새 생명을 얻었다. 그런 그가 이번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게 새 경험을 선사했다. 지난 9월4일, 김문정 감독이 이끄는 뮤지컬 전문 오케스트라 ‘더엠씨오케스트라’와 뮤지컬 배우들이 영화와 뮤지컬의 경계를 횡단하는 작품들을 모아 관객에게 선보였다. JIMFF 스페셜 초이스 <Beyond the Frame with 김문정 & The M.C Orchestra>의 막이 오르기 전, 김문정 감독을 만나 나눈 대화를 전한다.
- 이번 공연이 성사 배경이 궁금하다.
작년 MBC <놀면 뭐하니?>의 ‘80s 서울가요제’ 녹화 당시 장항준 감독 겸 집행위원장님을 만났다. 이후 감독님과 절친한 장현성 배우와 <맘마미아> <스윙 데이즈_암호명 A> 등의 뮤지컬에서 배우와 음악감독으로 만나 인연을 쌓으니 자연스럽게 집행위원장님까지 뵐 기회가 종종 생겼다. 알고 보니 우리가 학교도 동문이더라. 몇 번 만남이 이어지던 때 장 감독님으로부터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사실 이전까지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존재를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런데 세계 각국의 음악영화가 한데 모이는 축제가 있다면, 내가 꼭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일이 생길 것 같더라. 집행위원장님의 공연 제의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다. 이전에 내 이름을 걸고 연 콘서트에서도 몇차례 영화음악 메들리를 연주한 적도 있다. 그리고 알다시피 영화와 뮤지컬은 형제자매 관계이지 않나. 영화가 뮤지컬이 된 경우도 있고 뮤지컬이 영화로 재탄생한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아예 나와 낯선 분야가 아니라 합주 기간 내내 어쩐지 반가움이 일었다. 음악을 통해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에피소드도 자꾸 생기고.
- 공연을 본 관객들은 그날의 기억을, 공연을 못 본 관객들은 언젠가 마주할 경험을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Beyond the Frame with 김문정 & The M.C Orchestra>의 구성을 전해달라.
음악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들을 골라 누구든 지루해하지 않을 흐름을 만들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도, 뮤지컬을 좋아하는 관객도 흔쾌히 즐길 만한 배열이다. <레미제라블> <알라딘> <영웅> <위키드>와 같이 뮤지컬로도 스테디셀러지만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아 호응이 큰 작품 속 주요 넘버를 배우들이 노래하고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한국에서 올해 초 오리지널 투어를 마치기도 했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누구나 사랑하는 <미녀와 야수>처럼 음악을 들으면 저절로 장면이 연상되는 작품은 연주곡으로 선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영화 스코어 연주로는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쉰들러 리스트>의 <Theme from Schindler's List>가 있다. <쉰들러 리스트>는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빨간 코트를 입은 소녀, 그리고 바이올린으로 각인된 영화다. 그 바이올린 선율만으로 영화의 그림이 그려지지 않나. 음악이 각자의 기억 속에 남겨둔 향기가 있다고 믿는데 모쪼록 묻어뒀던 감각이 연주를 통해 잠시 되살아나길 바란다. 앙상블의 힘이 압도하는 <렌트> <올슉업>도 넣었다. <지킬 앤 하이드>도 빠질 수 없는데, <지금 이 순간>은 관객도 연주자의 일원이 되도록 특별하게 준비했다.
- 이전의 콘서트와 마찬가지로 배우들 못지 않게 The M.C Orchestra의 연주자들에게 초점이 가는 공연이지 않을까.
영화의 경우 대사가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크다. 뮤지컬 또한 넘버를 부르는 배우가 상(像)을 만들지만, 무대 위에 오케스트라가 존재한다면 연주자 각각이 하나의 스토리를 전달하는 텔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선율이 백그라운드뮤직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 이전에 무대에서 영화의 문법을 시도한, 일종의 크로스오버를 감행한 경험이 있지 않나. 뮤지컬 <아리랑>의 재연 무대에 참여했을 당시 영화의 스코어처럼 무대 위 배우들이 대사를 할 때 배경음악을 매설하는 시도를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런 작업을 꽤 오랫동안 했다. 배우들이 워낙 감성이 풍부한 존재 아닌가. 작은 자극에도 남다르게 반응하는 이들이다 보니 곁에 머무는 사람들에게도 에너지의 여파가 남는다.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그 기제를 지켜보는 걸 즐긴다. 그러니 내가 (음악)감독인가 보다. (웃음) 무대에서도 배우의 연기에 음악이 제시됐을 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이를 통해 연기와 연주가 얼마나 시너지를 내는지를 연구한다. 그래서 <아리랑>을 작업하던 당시 대사만 있는 장면에도 영화의 스코어처럼 계속 음악을 매설해두었다. 그 점이 영화와 비슷할 수 있겠다. 그런데 선후관계가 다르다. 스코어 작곡이 주로 후반작업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런데 뮤지컬은 무조건 음악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이 넘버만이 움직일 수 있는 감정이 무언지 정밀하게 찾고, 거기에 익숙해졌을 때에야 비로소 무대에서 배우, 연주자 등 모든 출연진이 제 역량을 펼칠 수 있다.
- 영화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진 사례라면 감독님이 작곡한 <내 마음의 풍금>이 있지 않나. 이번 공연의 세트리스트에서 빠져서 놀랐다.
잘 만든 뮤지컬이고, 자부심이 큰 작품이다. 초연 당시 한국뮤지컬대상에서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최우수작품상, 작곡상을 포함해 6관왕을 기록했다. 당시 조정석 배우가 <내 마음의 풍금>으로 남우신인상도 받았다. 자극을 모두 덜고 철저히 홍연의 성장기에 집중한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때문인지 당시엔 큰 흥행은 못 했는데 내년에 제천에서 우릴 또 불러준다면 기필코 리스트에 포함하고 싶다. (웃음) 추가하고 싶었던 작품이야 많다. <서편제>나 <원스>처럼 영화로부터 탄생한 뮤지컬도 있고, 넘버를 작곡한 <도리안 그레이>도 여러 차례 영화화됐던 것으로 안다. 어느 해엔 영화에서 뮤지컬로, 다른 해엔 뮤지컬에서 영화로 간 작품들을 모아 각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과 함께 무대를 꾸밀 수도 있겠고, 아예 영화음악만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메들리를 연주할 수도 있겠다. 레퍼토리가 이렇게 무궁무진한데 왜 제천에서 일찌감치 우리를 부르지 않았는지! 앞으로 할 일이 더 늘 것 같다. 이번 공연과 같은 기획이 ‘음악영화제’에서 이어진다면 더 많은 배우들이, 보다 다양한 관객들이 축제를 찾지 않을까. 영화도 뮤지컬도 모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작업이다. 좋은 뮤지컬 영화 속 넘버를 음미하다 역으로 무대를 찾는 관객도 존재할 것이고 잘 알던 뮤지컬 작품의 재해석을 즐기러 스크린으로 향하는 관객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무장해제시키는 마법, 음악의 힘을 믿는다.
-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전문가 관객으로서 뮤지컬영화를 볼 때 아무래도 직업병이 발동하나.
뮤지컬 원작을 알다 보니 아주 솔직히는 아쉬운 구간이 눈에 띈다. 그건 내가 라이브가 주는 생동감을 사랑하기 때문일 터다. 배우가 코앞에서 노래를 하고 그 속에 즉각의 감정을 완급해내는 ‘행위’에 매료되는 삶을 오래 살았다. 그러다 보니 편집으로 잘 정돈된 뮤지컬 영화를 볼 때 라이브에 비해 아무래도 감흥이 덜할 때가 있다. 하지만 또 무대가 상상력만으로 보완하지 못하는 부분을 영화가 채워주지 않나. 이를테면 영화 <영웅>에서 설희(김고은)가 <당신을 기억합니다, 황후마마여>를 부르던 때 다른 종류의 감흥을 느꼈다. 무대에선 그 장면이 그림자로 표현되는데 영화는 명성황후(이일화)가 겪은 참변이 생생하게 묘사되니 감동의 깊이가 남다르더라. 내가 수차례 지휘한 작품인데도 영화를 볼 때 마음이 아팠다.
- 만약 한국에서 만든 뮤지컬 영화의 작곡가, 혹은 음악 수퍼바이저 제의가 오면 응할 의사가 있나. 1990년대에 <꿈의 궁전> <마법의 성> <덕이> 등 드라마 속 스코어에 일부 힘을 보탠 걸로 안다. 따지고 보면 스티븐 손드하임이나 앤드루 로이드 웨버 같은 작곡가는 토니 위너인 동시에 영화 주제가도 잘 만든 바람에(웃음) 오스카 위너가 되기도 했다.
영광이지. 지금은 음악감독으로 디렉팅에 집중하지만, 음악하는 사람에게 창작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늘 기쁜 동시에 고민과 갈등을 부른다. 내 색깔을 가진 곡을 쓰는 일은 언제든 꿈꾼다. 그런데 뮤지컬 음악감독 일이라는게 워낙 촌각을 다투는 일이다. 내가 작곡한 <내 마음의 풍금>, <도리안 그레이>, 뮤지컬 <메이사의 노래>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순신>도 그 촌각을 쪼개고 쪼개서 만들어냈다. 정말 뮤지컬 영화에 도전하려면 다른 종류의 다짐이 필요할 것 같다. 세상에 곡 잘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나까지?’ 싶은 생각도 들고. (웃음) 창작 욕구가 일 때면 훌륭한 작곡가들이 만든 곡을 음악감독으로서 매만지는 작업이 내 소명이다, 하면서 나를 잠재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