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를 끄는 소녀>의 영선(최명빈)은 더 이상 캐리어를 끌고 싶지 않다. 영화는 가족과 거처가 없는 15살 소녀 영선이 정착할 곳을 찾으며 겪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선이 캐리어를 끌며 골목을 헤매는 영화의 첫 장면은 그의 처지를 단번에 드러낸다. 슬픔과 체념, 결의가 뒤섞인 표정에서 영선의 복잡한 내면이 선명한 형태로 전달된다. 배우 최명빈은 도입부를 연기하며 영선의 복합적인 감정에 집중했다. “어디에도 기댈 구석이 없어서 슬프지만 한편 그런 삶에 익숙해져버린 처지에 몰입했다. 동시에 어떤 상황에서도 굳세게 살아가려는 영선의 의지가 얼굴에 드러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가족을 갈망하는 영선의 갈등이 극 전체를 이끄는 작품에서 최명빈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잡한 소녀의 심리를 구축해나갔다.
어느덧 데뷔 10년차를 지나고 있는 다작 배우 최명빈은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 작품을 이끄는 배우로 성장 중이다. 어린 시절의 최명빈에게 촬영장은 고민보다 설렘이 앞선 공간이었다. 선배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고 스태프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러던 그가 연기의 의미를 각별히 실감한 건 <연모>와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참여했던 중학생 시절이다. “그때 연기한 인물들을 시청자들이 좋아해주는 걸 느끼면서 깨달은 점이 있었다. ‘내가 인물을 더 깊이 이해하고 표현할수록 살아 있는 캐릭터가 되어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 거치며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그 무렵 대본을 읽는 방식도 달라졌다. 작품 전체와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캐리어를 끄는 소녀> 역시 그런 변화가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대본 전체의 포인트들을 앞뒤로 엮어가며 읽는 습관이 생겼다. 인물의 성격이나 관계를 이해하는 깊이도 더 깊어졌다.” 마냥 즐겁기만 했던 아역배우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 커졌다. “최근에는 배우로서 나만이 가진 색깔을 어떻게 입힐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배우 최명빈은 영선을 “용기 내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영선이 원하는 삶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하는 마음 역시 용기 내어 살고자 하는 희망에서 생겨난다고 생각했다.” 이런 배우의 해석은 영선이 수아(문승아)의 집에 머무르게 된 이후의 장면에 가닿는다. 부잣집 딸 수아의 테니스 훈련 파트너가 된 영선은 수아의 집에서 그동안 가져보지 못했던 삶을 마주한다. “수아의 방에는 테니스 유니폼이 정성스레 걸려 있고 책상 위에는 가족사진도 있는데, 영선은 그 모든 걸 가족의 사랑이라고 받아들였을 것 같다. 절대적인 관심을 받는 수아를 선망한 것도 그때부터였을 거라 짐작했다.”
그런 영선의 감정을 '얼마나 드러내고 얼마나 감출 것인가'는 최명빈이 가장 오래 고민한 문제였다. “영선은 수아와 달리 내면을 크게 분출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감정이 희미한 것도 아니었다. 분노와 욕심이 내재돼 있지만 관객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보였으면 했다. 그래서 윤심경 감독님과 ‘나라면 어땠을까, 영선이라면 어땠을까’를 계속 이야기하며 중간 지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최명빈은 촬영을 거듭할수록 그 지점이 또렷해졌다고 회상했다. “어느 순간 ‘영선이라면 이랬을 것 같다’라는 감각이 생겼다. 그 지점을 감독님께 말씀드렸는데 좋다고 해주셨다. 그때부터는 영선을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하게 됐다.” 영화 속 갈등을 거쳐 한뼘 성장한 영선이 마지막에 얻게 된 것은 “앞으로의 삶을 헤쳐나갈 힘”이었다.
“관객들도 영선의 희망과 용기를 발견하면 좋겠다.” 영선에게 테니스가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면, 최명빈은 그 힘을 끝내 놓지 않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영선을 설명하는 듯하면서도 배우 자신을 닮은 말이었다.현재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있는 최명빈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동기들과 어울리면서 캠퍼스의 로망을 실현하고 있다”며 웃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다. “로맨스나 코미디도 해보고 싶고 사극도 욕심이 난다. 액션과 판타지도! 말하고 보니 너무 여러 장르라 민망하다. (웃음) 그런데 모두 진심이다.” 최명빈의 말에서 아직 보여주지 못한 얼굴이 더 많다는 자신감과 호기심이 함께 묻어났다. 공개를 앞둔 영화 <시스터후드>에서는 시니컬한 인물을, <미래에서 온 베이베>에서는 당찬 캐릭터를 연기했다. 서로 다른 결의 인물들을 소개하는 최명빈의 표정에는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더 많이 표현하고, 더 많이 배우고 싶다는 의욕이 건강한 기운을 풍겼다. 영선이 삶을 다잡고 앞으로 나아가듯 최명빈 역시 자신만의 색을 가진 배우가 되기 위한 다음 챕터를 써내려가는 중이다.
FILMOGRAPHY
영화
2026 <캐리어를 끄는 소녀> <시스터후드>
2020 <비와 당신의 이야기>
2019 <어린 의뢰인> <타짜: 원 아이드 잭>
2018 <자전차왕 엄복동>
2017 <사라진 밤>
2016 <걷기왕>
드라마
2026 <이런 엿같은 사랑>
2025 <굿보이> <메리 킬즈 피플>
2024 <노 웨이 아웃: 더 룰렛>
2022 <스물다섯 스물하나> <미씽: 그들이 있었다2> <트롤리>
2021 <드라마월드> <보이스 시즌4 <연모> <신사와 아가씨>
2020 <이태원 클라쓰>
2019 <트랩> <킬잇> <간택-여인들의 전쟁>
2018 <슬기로운 감짱생활> <리턴> <당신의 하우스핼퍼> <백일의 낭군님>
2017 <수상한 파트너> <터널> <시카고 타자기> <꽃 피어라 달순아> <블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