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가 개봉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김도영 감독이 <인턴>으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젊은 CEO 줄스(앤 해서웨이)와 시니어 인턴 벤(로버트 드니로)이 우정을 쌓아가는 동명 원작을 리메이크한 영화다. <인턴>에서 선우(한소희)는 3년 만에 자신의 패션브랜드 ‘WOO22’(우투투)를 100억원대 매출을 창출해낸 회사로 키웠다. 37년간 몸담은 직장에서 은퇴한 기호(최민식)가 WOO22에 실버 인턴으로 입사해서 발생하는 마찰과 화합을 리드미컬하게 그린다. <82년생 김지영> <만약에 우리>에서 그랬듯 김도영 감독은 관계 속에서 쌓이는 인물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연출했다.
- <인턴> 원작은 어떻게 봤나.
예전에 무척 재밌게 봤다. 로버트 드니로와 앤 해서웨이의 연기가 기억에 남는다. 물론 <인턴>의 리메이크작을 내가 맡게 될 줄은 몰랐지만. (웃음) 벌써 10년 전 작품이라 현재의 관점에선 달리 보이는 부분들이 있어 각색할 때 주의를 기울였다.
- <인턴> 리메이크 영화를 연출하게 된 계기는.
<만약에 우리> <인턴>모두 송용운 PD와 함께했다. <만약에 우리> 후반작업을 할 무렵 송용운 PD가 내게 <인턴> 연출을 제안했다. 최민식 배우가 캐스팅됐다고 들었을 때 내가 또 언제 최민식 선배와 작업해보겠나 싶은 마음에 참여했다.
- WOO22의 사내 문화가 눈에 띈다. 시간차가 있다보니 원작보다 훨씬 디지털화됐고 MZ세대 문화를 적극 차용했다. 패션브랜드이기에 직원 의상에도 공을 들였다는 인상이다.
원작에선 줄스가 유통 회사를 운영하지만 선우는 자기 브랜드를 직접 일궈나간다. 자료 조사를 위해 실제로 짧은 시간에 회사를 키운 브랜드 대표들을 만났다. 해당 회사 대부분이 공간도 개방적이고 서로 영어 이름을 부르며 위계를 강조하지 않는 지점을 눈여겨봤다. MZ세대의 유행어는 활용하는 데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기호가 MZ용어 사용을 어려워하면서도 그 속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고 개봉 시점에 사장되지 않았을 말을 고심해 골랐다.
- 신입, 대리, 팀장 등 연차별로 겪는 고충을 다뤄 공감대를 높였다.
말한 대로 오피스물의 성격을 강조해 직원들 각자의 어려움, 열심히 사는 청년세대의 모습을 묘사하려 했다. 원작에선 줄스와 벤의 초반부 어색함이 주요하게 그려지지만 기호는 선우뿐만 아니라 다른 사원들과도 서먹한 시기를 겪는다. 그들과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기호는 계속 뛰어다니며 노력한다. 각기 다른 인물과 세대가 서서히 화합해나가는 데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
- 기호는 ‘좋은 어른’의 카테고리에 속한다. 젊은 세대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들과 어울리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영화를 찍으면서 나 역시 좋은 어른에 관해 여러 생각을 했다. 기호는 선을 잘 지키는 어른이다. 섣부르게 조언을 건네는 대신 상대가 자신의 의견을 필요로 할 때 그가 내민 손을 잡아준다. 실제로 최민식 배우도 기호처럼 현장에서 중심을 잘 잡고 분위기를 풀어주곤 해서 다른 배우들이 편안하게 임할 수 있었다.
- 한소희 배우가 선우 역에 예상보다 훨씬 잘 어울리더라.
줄스가 세련되고 지적인 분위기를 지녔다면 선우는 그보단 더 현실적인 인물이길 바랐다.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음에도 주변에서 까다롭고 예민하다는 피드백을 듣고, 스스로 불안해하며 끊임없이 자책한다. 한소희 배우의 얼굴은 단순히 아름다움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서려 있다. 연기자로서 상당한 강점이고 그 점이 선우 캐릭터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그 밖에도 한소희 배우의 아티스트적인 면모를 살려서 선우 집 거실에 배우가 직접 그린 그림을 걸고 극 중 의상 스케치나 에어팟 케이스 등에도 한소희 배우의 그림을 활용했다. 한소희 배우는 그저 그 자체로 영화 속에 존재하면 됐다. 앞뒤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해줘서 고마운 마음이 크다.
- 동료, 남편과의 갈등을 해결하며 선우가 변화하는 모습도 두드러졌다.
원작과 달라진 지점이다. 선우가 자신을 믿기로 결심한 뒤 더 독립적으로 변모하고 오래된 인연들을 정리하며 성장을 이뤄간다.
- 기호와 선우가 부녀지간처럼 그려지는 것도 원작과의 차이점이다.
그런 점에서 관객들이 한국적이라고 느끼는 듯하다. 가끔 사적으로 얽히지 않은 사람의 조언이 더 와닿을 때가 있지 않나. 선우가 관계가 좋지 않은 엄마의 말은 잘 듣지 않지만 완전한 남인 기호의 조언은 귀담아듣지 않을까 싶었다. 기호의 마음에서 우러난 말에서 선우가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다. 그런 의미에선 가족영화라고도 볼 수 있겠다.
- 기호와 선우의 대화 신에 관해 말할 때 이자카야 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
정말 좋아하는 장면이다. 최민식이란 대배우 앞에서 젊은 배우가 긴 독백을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한소희 배우가 집중력 있게 잘해줬다. 배우들이 만들어나간 지점도 많다. 가령 기호가 세상을 떠난 부인 이야기를 하며 울컥하는데 지문에 ‘울컥한다’는 말은 없었다. 그 밖에도 기호의 대사는 “대표님이 제 딸이라면 이렇게 이야기할 것 같아요. 정신 차려!”인데, 최민식 배우가 “정신 차려!”라고 호통부터 치겠다고 제안했다. 일부러 공유하지 않은 덕에 한소희 배우가 깜짝 놀랐다가 상황을 깨닫고 웃는 표정이 자연스럽게 담겼다. 배우들이 장면을 자기화해 표현하는 걸 보는 재미가 있었다.
- <82년생 김지영>의 경우 소설을 영화화했고 <만약에 우리> <인턴> 모두 원작이 있다. 세편을 연달아 작업해보니 리메이크작의 어려움과 재미는 무엇이던가.
리메이크 영화가 최근 많이 제작되고 내게도 연이어 제안이 오는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영화 시장이 위축된 시기라 사람들이 안정적인 걸 바라고, 이미 검증된 이야기를 다시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오리지널 작품을 계속 만들어내는 창작자들을 존경한다. 주로 유명하고 팬덤이 형성된 작품을 리메이크해왔기에 그런 면에서 느끼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 작품들이 인기 있다는 것은 분명한 매력이 존재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매력을 어떻게 살릴지 매번 고민했다. 내가 해온 영화들은 관객마다 공감하는 지점이 각기 다른 작품들이다. 대단한 연출적 야망을 드러내기보다 그런 포인트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세 영화를 거치면서 훈련이 많이 됐다. 원작의 어떤 부분을 남기고 각색할 것인지, 더불어 배우의 감정을 통해 드라마를 다루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 차기작 계획은.
웹소설 원작의 시리즈물을 할 예정이다. 그다음엔 꼭 오리지널 영화를 하겠다! 최근 <옵세션> <마티 슈프림>을 재밌게 봤다. 그만큼 에너지가 넘치고 끝까지 가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