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하면 얕은 심도의 화면 앞, 현관문에 열쇠가 꽂혀 있다. 누군가의 손이 열쇠를 만지작거린다. 다른 집 문이 열리는 소리에 손은 멈추고, 누군가가 재빨리 뒤로 달아난다. 초점은 고정되어 있다. 문에 꽂힌 열쇠 뒤로 한 남자가 뭉개진 배경 속에 있다. 회화에서 윤곽은 대상을 배경과 분리하며 강조한다. 영화에서 초점도 회화의 윤곽처럼 배경에서 대상을 분리하고, 화면의 중심에 있는 인물에게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런데 <애정만세>의 첫 장면은 인물은 아웃 포커싱한 채 배경에 두고, 화면 안 문 열쇠에 초점을 맞춘다. 배경 속 인물이 열쇠를 잡으러 다시 화면 앞으로 다가온다. 광각렌즈로 인해 멀리 있던 인물이 앞으로 다가오자 인물의 상 크기가 커져 더 강조돼 보이지만 아웃 포커싱으로 대상이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는다. 인물은 커지지만 선명해지지 않는다. 보이지만 인지되지 않는다. 열쇠는 공간 점유를 허가하는 사물이다. 카메라는 열쇠에 최대한 가까이 붙어 있다. 이때 카메라와 열쇠의 거리는 관객과 열쇠 사이의 거리로 대응한다. 관객은 인물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열쇠를 바라보고 있다. 화면 속 인물이 열쇠를 잡으러 다가오는 동안에도 카메라는 그를 따라가지 않고 열쇠를 붙잡고 있다. 화면 속 인물과 관객은 열쇠를 사이에 두고 모두 문 밖에 있다. 한 사람은 화면 안에서, 다른 한 사람은 스크린 밖에서 열쇠를 바라본다. 그러나 둘의 시선은 문 안쪽을 향한다. 그사이 누가 나오지는 않을까 초조해하는 사이에 인물이 열쇠를 뽑아 달아난다. 화면은 열쇠가 빠진 현관 자물쇠에 초점을 계속 고정하고 바라본다. 집 안의 공간은 끝까지 보이지 않는다.
시선은 열쇠 너머 문 안쪽으로도 향한다. 관객은 인물보다 열쇠 앞에 있지만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위치는 앞서고 인지는 뒤처진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문제는 이 첫컷에서부터 시작되며 두 번째 컷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샤오캉이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감시용으로 설치된 볼록거울이다. 고정되었다고 믿었던 프레임이 거울면을 타고 움직이다 볼록거울 안으로 들어간다. 이 장면에서 맨 처음 보는 자는 관객도 샤오캉도 아니다. 거울은 물건을 훔치는 자를 감시하기 위해 설치되어 있다. 바로 앞 장면에서 샤오캉이 한 일은 열쇠를 훔친 것이고 초점이 고정된 카메라가 그 장면을 함께 지켜봤다.
볼록거울면을 따라 카메라가 천천히 움직인다. 화면 안 인물의 동선은 크지만 거울의 면적이 작기에 실제 카메라의 이동은 아주 미세하다. 볼록거울 안에 주인공 샤오캉이 물건을 집어 움직인다. 카메라가 거울면 위로 그를 따라 이동한다. 거울 가까이에 온 그가 멈춰서 거울을 쳐다본다. 누구를 보는 것일까?
관객들은 거울 속 샤오강을 처음에 타자로 바라본다. 그가 거울 앞에 와서 거울을 쳐다보는 순간 관객인 우리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들킨다. 관객이 스크린 밖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그가 거울을 한참 쳐다보다 머리를 쓸어 올린다. 거울을 보던 관객들은 그제야 안심한다. 그는 거울을 통해 관객이 아닌 자신을 발견한다. 훔쳐보던 관객은 들킨 긴장을 내려놓고 다시 영화 안으로 들어간다. 거울은 관객을 놓아준다. 관객은 샤오캉과 동일한 자아의 상태로 진입한다. 그 순간 스크린 속 샤오캉이 우리와 동일한 지각의 주체가 된다.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에서 거울은 내가 이미 보면서 동시에 보이는 몸이기 때문에 거울이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사물을 구경거리로 구경거리를 사물로, 나를 타인으로 타인을 나로 바꾼다. 스크린도 면이다. 거울이 상을 돌려준다면 스크린은 위치를 돌려준다. 거울이 스크린으로 전환되며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교차가 일어 난다.
영화 속 볼록거울은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위치를 고정하지 않는다. 거울 속 샤오캉을 바라보던 관객은 그가 거울을 바라보는 순간 자신 역시 그의 시선이 향하는 자리에 놓여 있음을 감지한다. 보는 자였던 주체는 보이는 자가 되고, 보이는 자였던 타자는 다시 보는 주체가 된다. 인간의 눈과 고정된 카메라는 볼록거울의 왜곡을 그대로 인지한다. 왜곡은 거울이라는 매개를 강하게 드러낸다. 그런데 거울면을 벗어나지 않는 화면과 짧은 카메라 움직임은 볼록거울의 왜곡을 평면화시킨다. 샤오캉이 거울 앞에 선 순간, 왜곡이 시선의 관계로 전환된다. 그의 시선이 거울을 향하는 순간 왜곡된 표면은 뒤로 물러나고, 그 자리에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교차가 나타난다. 거울은 두 위치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교환시키는 면으로 작동한다. 볼록거울은 이미지를 왜곡하는 장치에서 시선의 위치를 교환하는 면으로 변한다.
메이와 아정은 쇼핑몰 카페에서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고 카페를 나온 두 사람은 서로를 따라간다. 어딘가로 향하는 메이가 쇼윈도에 비친다. 뒤이어 실제 몸이 프레임인한다. <애정만세>는 사람보다 사람의 상을 먼저 보여준다. 첫 장면에서 샤오캉은 초점 밖 뭉개진 배경이었고, 편의점에서는 볼록거울 안의 상으로 먼저 있었다. 메이도 유리에 비친 뒤에야 몸으로 들어온다. 메이의 시선은 앞을 향해 있지만 누군가를 쫓는 시선이거나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더 넓게 쇼핑몰의 쇼윈도가 보이고 카메라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트래킹하면 아정이 프레임인한다.
이어서 거울 기둥이 보이고 그가 거울 뒤에 숨는다. 왔던 길로 시선을 향한다. 카메라가 다시 트랙아웃하면 메이가 뒤따라 들어온다. 메이가 먼저 보이고 아정이 다음 컷에 보여, 그녀가 앞서고 아정이 그녀를 뒤따르는 줄 알았는데, 이 장면에 온 순간 메이가 아정 뒤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편의점 거울에서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위치가 바뀌었다면, 여기서는 앞선 자와 뒤따르는 자의 위치가 바뀐다. 이후 컷부터는 두 사람이 서로를 의식한다. 다시 메이가 무심하게 걸어가는 컷이 보이고 뒤로 아정이 보인다. 아정이 프레임 오른쪽으로 향하면 카메라가 그를 따르고 메이가 프레임아웃한다.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를 거는 아정 뒤로 사라졌던 메이가 다시 프레임인한다.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지 않지만,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며 프레임 안과 밖을 오간다. 두 사람의 시선은 서로를 향하지 않지만, 서로의 존재는 상대방의 프레임 밖 외화면을 점유한다. 이 시선은 빈 아파트와 연결된다.
벽과 문, 침대와 프레임이 서로의 몸을 가리고, 한 사람이 화면 안에 있을 때 다른 사람은 외화면에 남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먼저 빈집에 들어온 샤오캉이 뒤늦게 들어온 아정의 문소리와 발소리가 들리는 순간, 화면 밖에 있던 존재가 화면 안의 공간을 점유하기 시작한다. 반대로 아정이 뒤늦게 들어온 샤오캉의 소리에 놀라 숨는 순간에도, 메이가 들어온 소리에 샤오캉과 아정이 다른 방에서 몸을 숨기는 순간에도, 화면 밖에 있던 존재가 화면 안의 공간을 다시 구성한다. 벽은 몸을 가리지만 시선을 가리지 않고, 프레임은 몸을 가리지만 존재를 가리지 않는다.
카메라는 빈방 하나에 홀로 있는 주인공을 보여준다. 관객은 누군가가 들어오며 어떡하지 하면서 긴장한다. 카메라는 방 안을 향하고 있지만 관객의 시점은 방 밖을 응시한다. 빈 아파트에서 카메라의 시점과 관객이 경험하는 시점이 분리된다. 샤오캉과 아정이 함께 이 빈집을 공유하고 있을 때도 각자 방 안에서 서로가 벽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지만 시선은 방 밖의 타자를 향한다. 하지만 방 벽과 카메라의 프레임에 가로막혀 방 밖은 보이지 않는다. 프레임 밖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나 문소리가 프레임 안 공간으로 침범할 때, 관객과 인물의 시점은 순식간에 외화면의 존재에게 주도권을 빼앗긴다. 시선이 닿지 않는 외화면 공간이 역설적으로 화면 안의 시점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생산한다. 이때 빈집의 벽은 단순히 공간을 나누는 구획이 아니다. 보이는 자와 보이지 않는 자를 연결하는 면으로 작동한다. 인물을 가리고 공간을 분리하지만, 그 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의식하게 함으로써 시선을 발생시킨다. 벽은 시선을 차단하면서 동시에 시선을 발생시키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분리하면서 동시에 연결하는 경계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벽은 볼록거울과 닮았다. 볼록거울이라는 면이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위치를 교환했다면, 벽은 그 면을 사이에 두고 보이는 자와 보이지 않는 자의 관계를 발생시킨다.
샤오캉이 아정과 메이가 사랑을 나누는 침대 밑에 있다. 카메라는 샤오캉과 함께 침대 밑에 머문다. 카메라는 샤오캉만을 롱테이크로 보여준다. 침실 바닥에 누워 있는 샤오캉의 시선은 침대 밑면에 막혀 있다. 그는 침대의 매트리스 너머를 볼 수 없지만 그의 시선은 침대 위 두 사람을 향한다. 관객이 보는 것은 침대 밑에 갇혀 들키면 안되는 샤오캉이다. 이때 침대는 빈집의 벽처럼 작동하며 시점을 분리한다. 샤오캉은 침대 매트리스 너머를 볼 수 없지만 침대 위의 두 사람에게 감정을 투사한다. 관객도 화면 밖 침대 위 두 사람을 보지 못한 채, 침대 위 인물들의 행위가 전달하는 감정을 샤오캉의 감정으로 이입한다. 동시에 관객은 샤오캉과 또 다른 시선으로 침대 위 외화면을 보게 된다. 샤오캉의 시선과 관객의 시선은 겹치면서도 일치하지 않는다. 침대는 시선을 차단하면서 동시에 화면 밖을 보게 한다. 카메라는 샤오캉 옆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지만, 머물수록 외화면은 더 커진다. 커지는 외화면만큼 샤오캉은 외로워지고, 관객도 그와 함께 침대 밑에 남는다.
차이밍량의 롱테이크는 공간을 여러 시점이 생겨나는 곳으로 만든다. 빈방은 카메라에게 하나의 공간이지만, 인물에게는 침입을 기다리는 공간이고, 관객에게는 외화면을 예상하는 공간이며, 보이지 않는 타자에게는 프레임 밖에서 프레임 안을 향하는 공간이다.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지만 하나의 방에서 동시에 여러 개의 시점을 발생한다. <애정만세>는 어떤 신체가 공간을 점유하지 못하는 영화가 아니라, 어떤 시점도 공간을 완전히 점유하지 못하는 영화다. 보이는 자와 보는 자, 스크린 안의 인물과 스크린 밖의 관객은 하나의 위치에 고정되지 않는다.
영화 내내 메이는 어떤 시점에도 붙들리지 않고 도시를 통과해왔다. 그녀는 분주하게 움직였고, 주변은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와 소음들로 가득했다. 그녀는 그 사이를 더 빠르게 통과하기 위해 무단횡단을 한다. 영화 후반, 빈 아파트에서 아정과 밤을 보낸 메이는 새벽에 빈집을 나와 다시 같은 도로를 반대로 무단횡단한다. 앞서 보았던 벌금 표지판이 다시 반복되어 나타난다. 앞 장면에서 그녀는 분주히 움직이는 차들 사이를 건넜지만 새벽의 도로는 한산하다. 갓길에 세운 자신의 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다안삼림공원이다. 아직 완공 전이라 공원은 황량하다. 멀리 고층 빌딩들이 보인다. 영화 내내 들리던 도심의 소음이 사라지고 새소리가 들려온다. 도심 속을 걷고 뛸 때는 들리지 않았던 그녀의 구두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린다. 타자의 소음이 사라진 공간에서 처음으로 메이 자신의 몸이 들린다. 그녀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공원을 걸어간다.
영화 내내 안정되었던 카메라가 처음으로 핸드헬드로 움직인다. 그녀를 풀숏이 담길 정도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2분 넘게 함께 걸어간다. 이어지는 컷은 고정된 롱숏이다. 멀리 그녀가 아주 작게 보인다. 앞선 핸드헬드 풀숏에서 화면 가까이 있던 인물이 갑자기 멀리 작은 인물로 바뀌고 거친 움직임의 카메라가 고정된 순간 두숏 사이의 격차가 더 크게 느껴진다. 패닝이 시작되면서 공원 너머 대로와 고층빌딩이 보이고, 공원 아래에서는 노동자가 노란색 줄을 감고 있다. 카메라는 왼쪽으로 계속 패닝한다. 카메라가 계속 움직이면서 밖에 있던 것을 안으로 끌고 들어오고 노동자는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다. 팬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외화면이 들어와 화면이 된다. 공원 너머 정지신호에 걸린 차량들이 보인다. 멈춰 있던 택시들이 오른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카메라는 멈추지 않고 왼쪽으로 더 계속 팬을 한다. 반대편 멈춰 있던 차선의 차들이 왼쪽으로 무리 지어 출발하고 카메라의 움직임의 방향으로 들어온다. 이 차들을 따라가다 보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뛰어가는 두 사람이 프레임하며 차와 카메라의 방향과 충돌한다. 이어서 반대편 차선에서 오토바이들이 뒤따라 들어오고 카메라의 방향과 반대로 달린다. 카메라는 계속 움직이고 앞서 보았던 노란색 줄을 감은 사라진 노동자가 프레임 오른쪽 끝에서 다시 들어온다.
카메라는 이 모든 움직임에 반응하지 않는다. 자동차와 사람들의 움직임의 방향과 속도에 상관없이 계속 왼쪽으로 일정한 속도로 팬한다. 마침내 공원의 시작과 다른 정돈된 공원의 정상을 맞이한다. 이때 프레임 왼쪽에서 카메라를 벗어났던 메이가 다시 풀숏으로 들어온다. 그제야 카메라는 멈춘다. 카메라의 긴 패닝은 외화면을 걷어낸다. 화면 밖에 있던 것들이 카메라의 움직임을 따라 차례로 화면 안으로 들어온다. 외화면은 더이상 특정한 타자가 머무는 장소로 남지 않는다. 이어지는 컷은 화면 가득 벤치들이 놓여 있다. 정상으로 올라갔던 메이가 다시 내려와 벤치에 앉는다. 그녀의 표정은 곧 울음이 터질 것 같다. 사방으로 열린 공원은 빈 아파트보다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한다. 그러나 공간이 넓어졌다고 시점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사라진 것은 시점이 아니라 타자가 점유하던 외화면이다. 아파트 안에서는 서로 보이지 않지만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는 시점이 있었다. 빈집에서는 벽 때문에 서로를 볼 수 없었지만, 벽 너머 존재들로 시선이 향했다. 벽은 시선을 차단하면서 동시에 시선을 발생시키는 면이었다. 메이가 앉은 벤치에는 서로를 볼 사람이 없다.
5분58초 동안 이어지는 마지막 롱테이크에서 터져나오는 메이의 울음. 그녀는 울면서 어딘가를 바라본다. 그녀가 무엇을 보는지는 알 수 없다. 관객은 끝까지 메이를 보고 있지만, 영화는 메이의 시점숏을 보여주지 않는다. 처음 볼록거울에서 타자를 바라보던 관객의 시선이 거울에 의해 다시 되돌아왔듯이. 이제 메이의 마지막 얼굴은 관객 자신에게로 시점을 되돌린다. ‘내가 누구를 보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누구의 위치에서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앞서 편의점의 거울은 관객을 놓아주었다.
그러나 메이의 얼굴은 놓아주지 않는다. 영화 안에서 시점을 발생시키던 면은 이제 사라졌다. 남은 경계는 스크린 하나다. 면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관객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 스크린은 하나의 볼록거울이 된다. <애정만세>에서 거울은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경계의 형식이다. 볼록거울, 벽, 침대, 프레임, 마지막 장면 속 메이의 얼굴은 모두 보이는 자와 보이지 않는 자 사이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선을 교환시키는 거울이다. 영화는 내내 시선을 화면 밖으로 내보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그 시선이 더이상 특정한 타자를 향하지 않는다. 갈 곳을 잃은 시선이 메이의 얼굴에 들어간다. 얼굴은 공간이 되고, 공간은 시점이, 시점은 다시 공간이 된다. 시점을 잃고 비워진 메이의 얼굴 위에 관객은 자신을 놓는다. 그 얼굴은 관객 스스로를 비추는 마지막 거울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