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카뮈의 언어 그대로, <이방인> 프랑수아 오종 감독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 잊기 힘든 첫 구절로 기억되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은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손길을 거쳐 “아랍인 하나를 죽였습니다”로 다시 시작된다. 영화 <이방인>은 다섯발의 총성을 울리며 아랍인을 살해한 죄보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슬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적 심판에 내몰린 뫼르소(뱅자맹 부아쟁)와 당대 알제리의 역사적 현실에 동시대 유럽 예술인다운 탈식민주의적 재해석을 더한다. 원작이 남겨둔 공백과 언어 사이, 오종은 오늘의 시선으로 <이방인>을 다시 스크린에 불러들인다.

사진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 왜 지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었나.

프랑스인이라면 학생 시절 읽어야 할 필수 소설이라 읽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 유명세에 비해 프랑스에서 한번도 이 작품을 영화로 다룬 적이 없었고, 소설 자체가 난해해 영화화가 불가능하다고들 말한다. 나 역시 10대 시절에 읽었던 <이방인>을 최근에 다시 읽었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면이 있었다. 이 영화를 만들면 <이방인>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미스터리를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 소설 <이방인>은 여름의 태양과 무더위에 대한 감각이 중요하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이방인>(1967)은 컬러 필름으로 색채와 관능성이 도드라지는데 최종적으로 흑백 화면을 선택한 이유는.

미학적인 이유가 크다. 원작이 철학적인 소설이기 때문에 컬러로 촬영하면 너무 현실적으로 느껴질 것이 염려되었다. 결국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르도록 하는 게 태양의 눈부심 때문인데 흑백일 때 더 강렬하게 보여줄 수 있다. 여름의 눈부심과 태양의 열기가 흑백 화면에 담겼을 때 비현실감을 증폭시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흑백 화면으로 <이방인>의 추상성을 강조하고 싶었다.

- 로베르 브레송이 배우를 카메라에 담는 방식을 참고했다고. 뱅자맹 부아쟁은 <썸머 85>와 다르게 거의 무표정으로 연기한다.

뱅자맹 부아쟁의 원래 성격은 뫼르소와 극과 극이다. 매혹하는 데 뛰어난 모든 조건과 매력을 갖고 있다. <썸머 85>에서의 모습이 실제 배우와 무척이나 닮았다. 그래서 <이방인>의 뫼르소 연기를 위해 완전히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촬영지는 모로코였는데 촬영 기간 내내 날씨가 좋아 모든 스태프들이 저녁마다 술을 마시고 파티를 열었다. 뱅자맹은 매번 “나는 절대 술 마시러 가지 않을 거야, 호텔방에 남아서 천장하고 내 팔이나 들여다보고 있을게”라고 할 정도로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방인>

- 드니 라방이 살라마노 역할을, 스완 아를로가 교화 신부 역할을 맡은 것도 눈에 띄는데.

스완 아를로는 <신의 은총으로>에서 함께 작업한 적 있다. 프랑스에서 손꼽는 연기파 배우라 이 영화에서는 단신에서 강력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드니 라방은 내 영화에서 함께 작업한 게 이번이 처음이다. 책을 다시 읽을 때 살라마노 역할에는 드니 라방이 적격이라 생각했다. 연극무대에서 카뮈의 작품을 많이 연기한 배우였기 때문에 특히나 반가웠던 듯하다.

- 원작에서 의도적으로 이름이 삭제된 아랍인이 이 영화에서는 얼굴과 이름을 가지고 전면에 드러난다. 현재이기에 가능한 각색이라 보는데 새로운 해석과 시선을 부여하는 데 어떤 고민이 있었고, 그 고민에서 얼마나 자유로웠나.

<이방인>은 외부의 정치 상황에 따라 정치적 도구가 되기 쉬운 작품이다. 현재의 시선에서 읽으면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배관이 묻어 있다거나 카뮈를 인종차별적인 사람이라고 오역할 수도 있다. 원작의 배경이 당시 프랑스인의 눈에 아랍인이 각각의 인물로 드러날 수 없던 시절이었다면 현재 프랑스와 알제리의 상황에서는 인물의 개인성이 드러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내 선택도 정치적인 선택인데 타이틀과 첫 대사를 아랍어로 드러냄으로써 과거의 역사로 지금까지 고통받는 알제리인, 프랑스인의 고통을 잠재우고 화해의 제스처를 보이고 싶었다.

- 뫼르소가 살해하는 장면은 장식적이지 않고 특히 절제되어 있다. 이 장면에 원문의 문장을 보이스오버로 더한 이유는.

키뮈의 언어 그대로 인물의 내면을 그려내면 어떨까 싶은 생각에 살해 장면과 마지막 감옥에서의 장면은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으로 처리했다. 오직 카뮈의 언어로 표현했을 때만이 시적이고 신비로웠다.

- 감독의 전작에는 인물의 성적 욕망과 가족 질서의 붕괴, 블랙유머와 삶의 부조리를 다루는 방식이 늘 있어왔다. 그에 비하면 <이방인>은 상당히 금욕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화할 때 원작의 성격에 따라 영화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내가 영화를 통해 추구하는 것은 언제나 새로움이다.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테마는 있어도 형식과 스타일, 장르에서만큼은 도전을 피하고 싶지 않다.

- 엔딩크레딧 음악은 카뮈의 <이방인>에서 영감을 받은 더 큐어의 <Killing an Arab>이다. 원작과 영화와 음악이 빚어내는 뉘앙스의 차이가 미묘한데.

내가 더 큐어의 팬이었다. 더 큐어도 <이방인>을 읽고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썼고. 이 음악을 들었던 시기는 내가 10대 때 카뮈의 소설을 읽었던 시절과 겹친다. 그러니까 알베르 카뮈라는 인물과 그가 써낸 많은 작품이 형식과 장르에 상관없이 전세계 아티스트에게 영향과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었다.

- 뫼르소는 해석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이다. 그는 문학과 영화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영원히 해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기만의 해석이 가능하다는 게 고전 중에서도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이 가진 풍요로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를 어떤 이는 자폐인, 지나치게 추상적인 인물이라고 평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인물이라 말하기도 하는데 다양한 해석이야말로 이 작품이 갖는 장점이다. 카뮈는 뫼르소를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오늘날의 예수와도 같은 인물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나만의 해석이 가미된 <이방인>은 관객이 뫼르소를 다시 해석하는 풍요로운 과정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작품으로 기억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