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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1호 [스페셜] 우리 다함께 영화의 문을 열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연출 민규동 예술감독

올해부터 개막식을 맡은 민규동 감독에겐 새로운 호칭이 생겨났다. 바로 '예술감독'이다. 예술감독이란 실질적으로 개막식 총괄감독의 역할을 의미하지만 그 안에는 궁극적으로 행사를 하나의 작품처럼 구성하고 지휘하겠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오케스트라는 각각의 요소가 잘하는 것만으로는 하나의 음악이 되지 않는데, 지휘자가 생기면 모두가 하나의 방향으로 묶일 수 있다." 장르도 색깔도 분위기도 각기 다른 영화가 영화제에 녹아들듯 민규동 예술감독은 개막식을 통해 새로운 조화, 균형, 화합을 그려낸다. 개막작 <낮과 밤은 서로에게>에 출연하는 배우 김민하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번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은 어떤 설렘을 줄까. 축제의 문을 여는 민규동 예술감독을 만났다.

- 올해부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총괄감독’이라는 명칭 대신 ‘예술감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됐다. 예술감독이라는 이름에는 어떤 역할과 책임이 담겨있나.

= 총괄이 일을 나누고 챙기는 사람의 이름이라 면, 예술감독은 해석하고 책임지는 사람의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개막식에서 누가 상을 받고 누가 무대를 서는지는 영화제가 정한다. 내몫은 그 안에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을지, 어디서 멈추고 어디서 박수를 받을지 정하는 것이다. 결정했다면 그 결과에 이름을 걸고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고. 본래 연출의 의미가 그렇다. 따라서 예술감독이라는 명칭은그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하겠다는 의미로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영화감독이 개막식을 연출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 었던 것 같다. 행사 관계자들도 기존의 방식과 무엇이 달라질지 궁금해했다. 올해는 그래도 누군가가 단순히 물리적인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적 지휘를 한다는 인식 속에서 함께 일할 수 있었다.

- 영화감독으로서 직접 영화제를 연출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영화 연출과 어떤 점에서 가장 다른가. 특히 수천 명의 관객과 수많은 영화인들이 함께하는 개막식이라는 형식을 영화적으로 구성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영화는 편집실이 있어 찍고 나서 고칠 수 있다. 반면 개막식은 테이크가 딱 한 번뿐이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장면을 내가 쓸 수 없다. 수상 소감, 수상자의 표정, 객석의 반응 같은 것들이 즉석에서 채워질 뿐이다. 그래서 제일 공들인건 그 빈칸의 앞과 뒤다. 수상자가 무대 중앙까지 걸어오고 박수가 정점을 찍고 잦아들기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바라본다. 5천 명이 같이 숨 쉬는 리듬을 설계하는 일과 같다. 영화로 치면 편집 리듬을 현장에 미리 심어두는 작업이다.

- 올해 개막식의 핵심 콘셉트는 문이다.

지난해에 '서른이 되어 겨우 선다'는 이야기를 했다면 올해는 그다음 단계다. 제대로 섰으니 이제 문을 열고 관객이 그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개막식이 일회성 공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작처럼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기억을 이어받으면서 새로운 문을 여는 두 번째 장이라고 보면 된다.

- 정해진 형식에서 벗어나기보다 오히려 그 형식을 지키면서 변주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개막식은 일종의 의식이고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리추얼이다. 최근 예술사를 열심히 공부 하고 있는데 예술사에서 의식은 집단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해왔다. 영화 역시 개인 혼자 보는 경험이 아니라 함께 모여 영화를 보고 감정을 공유하는 집단적 체험의 쾌감이 있다. 매번 파격을 시도해 순간적인 자극을 만드는 것보다 우리가 계승해야 할 리추얼은 가져가면서 그안의 작은 문양이나 동선, 행렬의 방식 등을 조금씩 수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나는 지난해와 올해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으 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다른 경험을 주는 개막식을 만들고 싶었다.

- 그 와중에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무엇인가.

이번에 AI로 동시통역을 진행한다. 지난해에도 시도해보고 싶었지만 고유명사를 제대로 인식 하지 못해 시도하지 못했다. 순차 통역을 할 때에는 한 언어를 통역하고 다시 다른 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정보가 유실되고 박수 타이밍 같은 것도 늦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올해는 기술이 많이 좋아져서 개막식 대본을 미리 학습 시켰다. 대본이 수정될 때마다 다시 학습시키 고, 번역문도 미리 준비한다. 100개가 넘는 언어 번역이 가능하고 관객은 자신의 언어를 선택해 볼 수 있다. 물론 수상소감이나 현장에서 갑자기 생기는 상황처럼 미리 학습할 수 없는 영역은 여전히 변수다. 그 부분까지 어떻게 작동할지는 나도 기대하고 있다.

- 지난해부터 음악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는게 느껴진다.

공연을 따로 하지 않는다는 영화제 원칙 때문에 음악이 더 중요해졌다. 본식이 시작되기 전입장과 레드카펫만 해도 거의 두 시간 가까이 된다. 나는 그 시간을 하나의 사전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제에 온 사람들이 클럽에 들어온 것처럼 다양한 음악을 들으면서 심장 박동 수를 조금씩 높이고, 이미 한 번 뜨거워진 상태 에서 본식이라는 새로운 리추얼을 시작하는 것이다. 올해는 장르도 다양하게 구성하고, 특정 게스트를 위해 그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담은 음악도 만들었다. 어렵게 영화제를 찾은 사람이 레드카펫을 걸을 때 ‘나를 정말 환영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으면 했다.

- 개막식에 관객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영화제에서 가장 많은 사람은 단연 관객이다. 그런데 기존에는 대기 시간이 길면 그것을 그냥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관객이 그 시간에도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즐겼으면 했다. 자신들이 영화제의 기록 속에 얼굴을 남기고,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경험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야구장의 키스캠 처럼 즉흥적인 관객 참여형 콘텐츠를 시도해볼 예정이다. 영화제는 권위 있는 사람들이 예우 받는 자리로 비춰지지만 이곳은 결국 축제다. 지금 시대에는 엄숙함이나 경건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