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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시공간의 정취를 인물의 감정 사이에 묻혀내는, <룩백>

초등학생 4학년 후지노(나나세 후리, 데구치 나쓰키)는 학급신문에 네컷만화를 그리며 만화가의 꿈을 꾼다. 그러나 그 꿈은 쿄모토(오카다 로카, 마키타 아쥬)라는 미지의 존재에 의해 잠시 중단된다. 학급신문에 실린 쿄모토의 만화, 특히 배경을 묘사하는 실력에 압도당하고 열패감을 느낀 후지노가 펜을 내려놓은 것이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후지노는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기점은 또다시 쿄모토다. 선생님의 부탁으로 후지노는 집 안에만 있고 학교에 나오지 않는 쿄모토에게 졸업장을 전해주러 간다. 쿄모토의 집에 기척이 없자 후지노는 장난스럽게 네컷만화를 그리는데, 이것이 방 안으로 흘러들어가 쿄모토의 눈에 띈다. 쿄모토는 바깥으로 나와 사실은 후지노의 엄청난 팬이었음을 열렬히 고백한다. 만화를 통해 우정을 다진 둘은 함께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고, 프로의 세계에서도 인정받는다. 하지만 쿄모토의 어떠한 마음은 둘의 관계에 균열을 낸다. 그럼에도 후지노는 만화를 그린다.

후지모토 다쓰키 작가의 단편만화 <룩백>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앞서 2024년엔 오시야마 기요타카 감독이 애니메이션으로 영상화하여 화제를 끈 바 있다.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으로, 원작의 서사를 크게 벗어나지 않되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서정적인 이미지가 극대화되어 있다. 35mm 필름 카메라로 사계절의 풍광을 담는 것이 작품의 목표였다는 그의 말처럼, 초등학생 시절에서 성인 시기를 통과하는 후지노와 쿄모토의 모습 주변으로 겨울 설원과 여름 바다의 이미지가 너르게 펼쳐진다. 계절감을 한껏 살려내며 집 안의 먼지까지 놓치지 않는 화면의 질감이 원작이 지니고 있던 노스탤지어의 감각을 효과적으로 전해낸다. 화면 위 시간의 흐름은 후지노와 쿄모토가 함께 만화를 그리는 후지노의 방 안에서부터 바깥으로 점차 넓어지면서 서사의 범주를 자연스레 키운다. 시공간의 정취를 인물의 감정 사이에 묻혀내는 연출자의 터치가 눈에 띈다. 특히 어떠한 상실 이후에 찾아온 적막의 순간을 몽환적인 동시에 사실적으로 포착하는 솜씨는 고레에다 감독의 전작 <환상의 빛> 등을 떠올리게 한다.

후지노 역을 맡은 데구치 나쓰키 배우와 쿄모토 역을 맡은 마키타 아쥬 배우의 호연도 인상적이다. 중학생부터 성인까지의 모습을 연기한 두 배우는 꽤 긴 세월의 진행을 이질감 없이 표현한다. 두 사람이 처음 만화 공모전에서 입상하여 상금을 받고 도심과 자연을 거니는 시퀀스가 청춘 서사의 백미다. 특별한 대사 없이도 만화 원작의 여백을 살려내면서 자유로이 움직이는 캐릭터들의 움직임엔 과장된 꾸며냄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칫 과잉될 수 있는 원작 만화의 감성을 적절히 눌러내며 실사영화의 톤 앤드 매너를 지켜낸 것이다. 요컨대 원작을 꽤 탁월하게 영상화한 작품이지만, 반대로 말할 때 영화만의 특징이 각인되는 대목은 많지 않다. 적극적인 각색보단 안정적인 실사화를 택하며 원작 팬이나 관객의 요구 사항을 되도록 절충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에 이어,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에서 상영된다.

CLOSE-UP

원작 만화와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룩백>의 명장면을 꼽으라면 꼭 들어갈 장면이 있다. 후지노와 쿄모토가 처음 만난 초등학교 졸업식 날, 후지노는 쿄모토가 자신의 팬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거리를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시퀀스를 마치 <괴물>의 마지막처럼 속도감 있는 수평 트래킹숏으로 촬영했다. 영화 <룩백>이 지닌 고유의 영화적 감각이 있다면 바로 이곳에서 발견될 것이다.

CHECK THIS MOVIE

<바쿠만> 감독 오네 히토시, 2015

만화 원작의 실사영화 중 한 만화 콤비의 서사를 그린 작품으로 <바쿠만>을 빼놓을 순 없다. 각각 스토리텔링과 작화에 천부적인 능력을 타고난 타카기, 마시로가 합심하여 일본의 대표적 만화잡지 에 도전하는 이야기로, 더 극적이고 과장된 톤으로 원작의 결을 살린 작품이다. <룩백>보다 더 상세한 만화 그리기의 작법, 출판 세계의 냉혹한 서바이벌 구도를 알 수 있다.